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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말과 글’장영주 / 국학원 원장

   
 

1592년,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하여 자행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이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잉태한다. 결국 40여년 만에 한반도에 연속적인 희대의 피바람을 불러오니 그 참담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말’이란 무슨 뜻일까? ‘마음의 알’ 이다. 그 ‘마음의 알’을 씀이 ‘말씀’이다. 글이란 그림이고, 그림이란 그리운 마음이다. 말과 글의 근원인 마음은 무엇일까? '마(ma)'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입으로 터져 나오는 생리적인 발음이다. 엄마, 마마, 맘마, 마더,...다음에 파열음 ‘바, 파, 빠’를 익힌다. 그래서 파파, 파더, 아바이, 아버지, 아파치...로 엄마를 먼저 찾고 다음에 아버지를 찾는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섭섭하지만 자신들도 그렇게 자라왔다. ‘마음’의 ‘음’은 ‘음직음직(옴직옴직)’‘움찔움찔’처럼‘움’직임(運動)을 뜻하며 우주의 원초음인 ‘옴(om)'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마음’이란 ‘근원적인 움직임’이다. 마음이 바다라면 생각은 파도이다.

최근의 뇌 과학자들은 ‘생각도 (내부)운동’이라고 규정한다. 생각(生覺)이란 근원적인 마음에서 일어난 감각과 감각이 움직이면서 부딪쳐(觸) 새로운 감각이 생긴 것이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과 음식을 보고 느끼는 감각이 더해져서 먹고자 하는 행위로 현실화되기 직전까지가 구체적인 생각이라는 움직임의 진행 과정이다. ‘먹겠다.’는 마음(心)이 바탕이 되어 감각과 감각으로 순차적으로 떠오르면서 ‘(밥, 라면, 떡, 빵, 국)등의 식단과 장소, 인원, 가격, 분위기 등등이 ’내부운동‘에 의하여 경우의 수가 조합되고 선별 되어 결국 먹는다는 ’외부적(육체적) 운동’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러니 말은 곧 ‘마음이라는 바다의 파도’로써 ‘말’을 듣는 다는 것은 곧 파도를 보고 바다의 상태를 아는 것과 같다.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 말로써 정확하게 판독 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의 힘’은 곧 ‘마음의 힘’이고 그 마음의 기운이 그대로 전달되므로 진정성 있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고 하고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도 한다.

최근에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보고 받는 자리에서 모든 문서에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일본어 표현 대신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말을 쓰라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위안부’는 영어로 옮기면 자발적으로 일본군을 위안한 여성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강요된 성노예’와는 다른 ‘말’이 되니, 곧 다른 ‘마음’이 된다.

그러므로 클린턴 장관의 지적은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저지른 전시(戰時) 성범죄에 대해 인류 보편적 인권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미국의 마음’이요, 미국의 국무장관으로써, 여성으로써, 사람으로 써 ‘힐러리 클린턴’의 마음이다. 참으로 귀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여성들에게 성노예를 강요한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는 결의안을 2007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는 미 하원, 네덜란드 하원, 캐나다 의회, 유럽 의회, 유엔 인권이사회의 ‘마음’도 고귀하다.

   
 

한편,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은 “미 국무장관이 성적 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이는 틀린 표현이라고 말하겠다.”고 말하여 ‘위안부라는 말’을 계속 쓸 생각임을 밝혔다. ‘위안부’란 1931년 일본의 만주침략 이래 일본군 ‘위안소’에서 감금된 채 성노예 노릇을 강요당한 여성들을 일컫는다. 일본군은 최대 20만 명의 점령지 여성들을 성(性) 노리개로 삼았다. 수많은 한국 여성을 비롯하여 중국, 아시아권, 호주의 여성들도 군수공장 등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일제의 꾐에 빠지거나 강제동원 돼 위안소로 끌려가서 ‘강요된 성노예’로 전락 되었다. ‘종군(從軍)위안부’는 ‘종군기자’처럼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다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일제가 만들어낸 용어이다. 과거엔 위안부 피해자를 ‘정신대(挺身隊)’라고 불렀지만 정신대 또한 노동인력으로 징발된 ‘근로정신대’를 뜻한다. 일본만이 세계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외면하고 있다. 이것도 ‘일부 일본인의 마음’이다.

그러나 일본의 ‘일부 정치권의 마음’이라고 하기도 차마 어려운 것이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에 말뚝을 박은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는 평범한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한 술 더 떠서 그는 일본에서 이 말뚝 모조품을 기념품처럼 팔고 있다고 한다. 당당하게 한국에 입국하여 소녀상 옆에 말뚝을 박고 동영상까지 찍어 자랑하고, 장사까지 한다니 그것은 무슨 ‘마음’일까?

일본의 조야는 일본은 성노예 동원이라는 반인륜 범죄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그리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군 성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제의한 정부 간 대화조차 수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오히려 미국 교민들이 현지에 세운 ‘위안부 기림비’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고 나선 판이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강요된 성노예’의 심각한 인권유린을 규탄하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의 마음에 생존 피해여성들은 지금도 마음이 상하여 피눈물을 흘린다.

한국 언론들은 미 국무부의 한일 과거사 보고 자리에서 클린턴 장관이 위안부 할머니들은 강제적인 성 노예였다며 위안부보다 성 노예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사자임에도 그동안 모든 우리의 언론들은 클린턴 장관과 같이 정확하게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말을 쓰지 못하고 애 둘러 ‘위안부’라고 표현하였다.

우리 정부는 클린턴 장관의 ‘마음의 말’을 듣고서야 이제 ‘위안부’라는 말을 ‘성노예’라고 바꾸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발해의 역사까지 자신의 역사라고 우기면서 역사 왜곡을 계속하는 중국의 동북공정, 홍산공정, 만리장성 부풀리기 공정, 등등에 대하여 우리나라 정부는 “예의 주시 한다.“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으니 이것도 우리의 생각이요 마음인가. 국민으로써, 여자로써 모든 것을 빼앗긴, 이제 여생마저 얼마 남지 않았건만 진정한 사과의 마음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는 ‘할머니들의 마음’이 ‘인류의 마음’일 것이다.

사)국학원 원장(대), 한민족 역사문화공원 원장 원암 장영주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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