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문화
문 재인 후보의 현대사 인식유진오 / 뉴스앤거제 명예회장

   
 
S형!
문 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본적지가 거제라는 동향(同鄕)의식 때문만은 아닙니다. 노 무현 정부 5년 동안 비서실장·수석비서관으로 국정을 경험했으나 드러난 부패 스캔들이 없고, 겸손하며 성실한 이웃집 아저씨 같이 정겹고 소탈한 이미지를 지녔습니다. 그런데 문 후보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중요한 의문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후보로 선출된 다음날 아침, 국립 현충원을 찾아 김 대중 대통령 묘역만 참배하고 이 승만 대통령과 박 정희 대통령 참배는 거부했습니다. 다음날 그는 전직 대통령 두 분의 묘역을 왜 찾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피해자가 잊는다고 해서 (통합이)되겠느냐. 군부 독재 권력을 뒷받침했던 공화당·민정당이 이름을 바꿔 지금의 새누리당이 아니냐”라고 큰 소리쳤다는 보도를 보곤 씁쓸했습니다.

다 알다시피 DJ는 ‘유신(維新)본당’인 JP(김종필)와 손잡고 1997년 15대 대통령에 당선, 임기 5년의 대부분인 4년4개월간, JP와 박 정희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박 태준, 그리고 민정당 출신 이 한동씨에게 제31대, 제32대, 제33대 총리직을 맡겼습니다. 문 후보는 5.16 쿠데타의 주역인 박정희는 안 되고 2인자 JP는 괜찮다는 인식입니다.

S형!
문 후보는 1953년 1월 거제에서 출생했습니다. 6.25 동란의 흥남철수작전 때 미군 수송선을 타고 월남한 실향민의 아들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韓美)동맹으로 공산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면 문씨가 어떻게 오늘의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를 정치 공세에 이용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문 후보가 보여주었던 차분하고 합리적인 언행과도 맞지 않습니다.

문 후보 측은 같은 이유에서 고향 거제의 대선배이고 경남고 선배인 김 영삼 전 대통령도 찾아갈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문 후보는 노 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노 무현씨를 정계에 입문시킨 사부(師父)가 바로 YS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상도동으로 YS를 예방, 손목시계를 내보이며 ‘YS가 국회의원 당선 축하 선물로 주신 것’이라며 고마워했던 모습은 TV를 보던 많은 국민들을 감동케 했습니다.

YS가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1998년 2월, 일본 언론은 ‘YS의 3대 치적’은 △군정(軍政)종식 △금융실명제 실시 △지방자치 전면 실시라고 크게 보도했습니다. YS는 대통령 취임 직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군벌(軍閥)의 삯인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해체하고 군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세력화를 제도적으로 차단했으며, 군사독재에 항거한 23일간의 초인적 단식투쟁은 YS의 민주화 투쟁 훈장으로 역사에 남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문 후보의 전직 대통령 예방 여부는 일반 시민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의 ‘어두운 역사관’을 엿보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 대중 정권이 없었으면 노 무현정권도, 문 재인 청와대 비서실장도, 문 재인 후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현충원 참배때 이승만·박정희 묘역을 외면한 것은 ‘조상의 묘를 골라 참배하는 격’이라는 비난을 사는 것입니다.

S형!
문 후보는 ‘5.16과 유신’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그는 ‘유신치하’에서 출세한 사람입니다. 그가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22회 사법시험에 합격(1980년 6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신(維新)헌법을 밤을 지새우며 달달 외어 헌법 점수가 높아 사시에 합격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자서전 ‘운명’의 2부 ‘인생’편 △<유치장에서 맞은 사시합격>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전략- 2차시험 합격도 운이 좋았다. -중략- 시험전 마지막 두 세 달을 공부에서 손을 뗐기 때문에 전형적인 시험문제가 출제됐으면 합격은 불가능 했다. 그러나 헌법 과목은 마지막 두 세달의 집중 공부가 아무 소용이 없는, 뜻 밖에 문제가 출제됐다. -중략- 나는 헌법 과목에서 거의 최고점을 얻었다. 그것으로 나머지 과목의 낮은 점수를 만회해 간신히 합격할 수 있었다. - (P186)

흔히 일제 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검사, 변호사를 지낸 사람들을 도매금으로 ‘친일파’라 매도하는 ‘얼치기 좌파’들의 논리라면 문 후보도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를 일입니다.

S형!
김 대중 대통령은 박 정희 대통령에 대해 “근대화가 꿈만 같았을 때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공로가 지대했고 그것을 이룩했다”고 평가했습니다. DJ는 박 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명예회장도 맡았습니다. DJ는 또 박 대통령에 대해 “이해할 건 이해하고 평가할 건 평가하되 특히 이 세상에 안계신 분에 대해선 예의를 갖고 평가해야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문 재인씨가 대중에게 강력하게 각인된 건 2009년 5월 ‘노 무현의 서거’때 였습니다. 그 충격적인 죽음을 담담히 발표할 때와 노 대통령 국장(國葬)때 그가 보여준 절제된 모습이었습니다. 1년 전 정치에 입문한 문 재인은 지난 4월 부산에서 총선에 당선되고 지난 6월 대선 출마를 선언, 60여년 전통 제1야당의 후보 경선에서 13 연승을 기록하며 대통령 후보가 됐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정치인 문제인은 크게 성공한 셈입니다.

그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힐링(healing)대통령’이 되어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며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부정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왜곡하는 대결적인 시각은 적잖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고통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그가 말한 힐링(치유)이 킬링(killing·악화)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는 문재인 대선 후보. 사진 연합뉴스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앤거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