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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박정희 누가 더 애국적인가?국민희망포럼 경남지부 부대표 황영석

   
 
독재자라 함은 자신의 권력을 절대적 경지에서 나타내려 했던 왕권도 일종의 독재 권력이었으며 그 중 위, 오, 촉이 이루지 못했던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문자와 사상의 통일을 이루려고 분서갱유를 단행하였고, 불로장생을 염원했던 진의 시황제나 공산주의 사상으로 독재로 일관했던 구소련의 레닌과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등소평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으로 철권독재를 휘둘렀던 독일의 히틀러 등을 연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독재자라의 공통적인 특징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 이집트의 무라바크, 리비아의 가다피, 필리핀의 마르코스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의 일족에게서 볼 수 있듯이 국민을 무자비하게 장기적인 철권통치로 억압하고 살해하고, 족벌정치로 권력을 사유화하며, 국가의 경제를 도탄에 빠뜨린다.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무장한 부르조아(뛰어난 능력을 가진 평민)가 귀족과의 사움에서 이긴 것이 1789년 프랑스혁명이다.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었고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한 때 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나 그 유명한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군에게 패전하고 연이은 러시아 침공의 패배를 계기로 결국 엘바섬, 헬레나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면서 그의 생은 마감된다.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나폴레옹은 엄청난 국민들의 희생으로 유럽을 정복하여 국가적인 자존감을 심어주었고 법전을 만들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과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 농노제의 폐지, 종교 선택의 자유, 양심의 자유, 재산권의 보장 등을 실시하여 대부분의 나라들의 모범이 된 것은 공과이나 한 때 위대한 프랑스를 수립했으나 결국 자국을 망하게 하여 엄청난 시련을 안겼다. 그러므로 수많은 전쟁에 참전시켜 전 국민들을 고생시킨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프랑스 국민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박정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5.16 군사혁명을 통해서 정치참여가 제한된 인권탄압을 한 독재라는 비판과 더불어 언론의 부자유와 군의 정치개입이라는 부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1960년대의 자국의 경제와 비슷했던 국가 중 유일하게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바라보는 위업의 기초를 쌓았고, 자주국방과 아울러 북한의 공산주의로부터 사상적 혼란을 막고 오늘날의 튼튼한 민주주의의(경제적 자본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의 터를 닦았다는 평가이다.

우리나라의 현대화의 과정을 살펴보면 국제정세에 문을 닫아버린 것을 잘하는 것으로 판단한 쇄국주의의 흐름 속에서 패망할 수밖에 없는 이씨조선의 왕국은 36년의 일제식민지를 거치고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망하면서 일본제국이 물러간 후 3년 동안의 미군정을 거친 후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남한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초대내각이 1948년 8월 15일 출범하였고, 마침내 1948년 12월 5일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UN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5월 10일 국회의원 총선을 실시해서 국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해서 동년 7월 17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고, 동년 7월 20일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 박사를 선출하고 동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 선포식을 함으로써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미군정은 끝났으나 미국의 민주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가 각각 남한과 북한을 신탁통치 하려던 시기에 마침내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함에 따라 이를 계기로 중국의 모텍동은 1949년 중국대륙을 통일 한 이후에 김일성을 지원하여, 1950년 6월 25일의 종전이후에 이승만 대통령의 수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연장에 안주하여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부패와 독재 그리고 탄압과 1960년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일어난 4.19의거로 이승만 정권은 물러났으나 조직화된 지도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승만 정권의 붕괴 후에 4.19의거 정신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4.19의거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장면정권은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정치싸움에 날을 보냈고, 국민소득도 100달러 이하의 최빈국으로 국민들의 삶은 열악했으며, 치안상태는 매우 불안했고, 북한에 비하여 경제력과 국방력이 뒤처진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은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또한 절정에 달한 국정의 문란, 고질화한 부패, 마비상태에 빠진 사회적 기강 등 누란의 위기에서 민족적 활로를 타개하기 위하여 최후 수단으로 일어난 것이 다름 아닌 5.16혁명이다. 라고 5.16의 원인을 고 장준하 선생은 1961년 사상계 6월호에서 밝히고 있다.

사회혼란을 바로잡겠다고 일어선 5.16군사 혁명은 전쟁과 독재에 시달렸던 저 개발 국가의 무질서에 대처하고자 정치참여가 제한된 상태에서 1963년 2년 7개월의 군정을 끝내고 민정으로 돌아가 1963년 10월 3일에 실시한 총선거에서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박정희는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제3공화국이 탄생시켰고, 이 과정에서 유신이 태동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박정희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시대적인 배경이 기존의 정치권력으로는 국정의 문란한 질서를 유지하고 고질화된 부패 그리고 마비상태에 빠진 사회적 기강을 바로잡을 수 없는 누란의 위기를 맞은 것이 공통점이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대다수의 국가와 1960년 당시에 경제적인 수준이 비슷했던 국가들이 박정희의 단독작품인 새마을 운동을 배우려고 쇄도하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보다도 더 경제적인 우위를 누렸던 미얀마 테인 세빈 대통령도 2박3일의 짧은 방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새마을 운동을 통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실상을 바라보며 새마을 운동 역사관을 둘러보고 어떻게 미얀마에 적용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종교적 신앙의 자유를 금지하지 않았던 독재자이며 군인이며 정치가였던 나폴레옹과 박정희는 과연 누가 더 자국에 참된 자긍심과 자존심 그리고 자립심을 주었으며, 누가 더 애국적인가? 그리고 과연 누가 더 자국의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가?

고 장준하 선생의 박정희 군정에 대한 염려와 당부에서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은 혁명과업을 완수하고, 최 단 시일 내에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전권을 이양하지 못한 일이다.

군정의 힘으로 세계사를 정복하려했던 정복가인 나폴레옹과 황폐한 땅에서 자국의 경제를 이루고 산림녹화사업 이룬 밀가루 대통령인 박정희에 대해서 누가 더 진정한 영웅인지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나라를 지킨 충신이었음에도 중상모략에 휩싸여 옥고를 치른 이순신 장군을 통해서 이 나라의 국민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어느 국적전환자의 말에서 보듯이 당분간은 올바른 역사적 평가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1960년 당시의 세계 언론은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보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장미를 기대하기보다도 더 어려울 것이라고 예단했다. 그러나 그 대한민국은 지금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있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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