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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三岐洞) 구천동(九川洞)[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삼기동(三岐洞, 삼거리)과 구천동(九川洞)은 구름과 안개가 자주 머무르며, 신선이 노닐던 무성한 숲과 계곡이 있으니, '옥산운림구천(玉山雲林九川)'이라 칭한다. 울창한 산길을 오르고 내리며 구름 속을 헤집는 동안엔 섬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한다. 안개라기보다는 구름 속이라는 표현이 옳은 듯하다. 봄에는 갈맷빛 운림(雲林)으로 인해 몽환의 숲이 되어 주고 가을에는 누릇불긋 단풍 빛의 매력에 빠져든다. 아름다운 산, 미인의 자태, 신선이 노니는 "옥산(玉山)"이 구름 산자락으로 점철되어, 열두 폭 산수화 병풍에 둘러 쌓인듯하다.

정황(丁熿)은 1548년~1560년까지 거제시 고현동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당시 고현동 유배자인 선생과 서로 의지하며, 먼 변방 타향에서 교분을 나눈 분 중에는, 기골이 장대한 조덕원(趙德源,1522년∼1582년) 경상우평사(慶尙右評事, 정6품 외반직)가 있었다. 그는 거제시 구천동 구천점마소(九川點馬所)에서 1554년~1556년까지 약 3년간 근무하며, 거제도 7목장을 점마했고 수군진영의 상황도 견제했다. 그리고 뒤이어 파견된 경상우평사 유지숙(兪止叔)과도 정황선생은 교분이 두터웠다. 이즈음 선생이 구천동계곡과 삼기동(상문동 삼거리), 영등포, 오양역, 칠천도 등지로 다닐 수가 있었던 것은 모두 경상우평사 덕분이었다. 정황선생의 한시를 살펴보면, 상문동 삼거리는 '삼기동(三岐洞)', 남부면 다대포는 '용종포(龍種浦)'가 옛 지명임을 알 수 있다.

1). 유삼기동(遊三岐洞) 삼거리에서 노닐며.

喧耳澗聲不惡來 시끄러운 계곡물소리 싫지 않게 들리고
顚風橫日興方開 석양에 거센 바람 불어 사방으로 흥취 열구나.
夏陰已老迎秋色 여름그늘 이미 지나가고 가을 색을 맞는데
飯鉢當辭繼酒盃 밥그릇은 사양하고 술잔만 연거푸 들이키네.
席地幕天何不足 땅을 자리로 삼고 하늘을 천막 삼으니 무엇이 부족하랴
有星無月莫須催 별빛에 달빛 없어 모름지기 재촉할 것도 없구나.
他年水石森然記 옛날 어느 해에 바위와 물을 무성히 조성한,
且作玉山累累頹 신선 사는 옥산이었다가 누누이 무너졌다지.

2). 삼기동(三岐洞) 상문동 삼거리.

五年堅坐一茅堂 오년간을 한 띠 집에서 붙어 있다가
今日爲君所挽强 오늘 그대 위해 강궁(强弓)을 당기리라
西風吹盡山窮處 서풍이 산의 궁벽한 곳에서 몰아치니
赤帝威張草樹蒼 남쪽 여름 신이 위엄을 펼치어 초목이 무성하네.

3). 구천동 숙소의 조덕원에게(寄趙德源九川宿所).

東洋定是三山境 동해는 바로 삼신산(三神山)의 지경인데
縹緲仙踨孰得尋 아득한 신선의 자취 어디에서 찾으랴.
多大盛稱龍種浦 다대포는 용종포라 널리 부르고
加羅全與道人岑 가라산은 도인봉보다 온전하다.
有時樵牧聞鷄犬 때마다 나무꾼과 목동들, 닭과 개 소리 들을 뿐,
無路塵凡寄信音 속세로 보낼 서신과 소식 전할 길이 없다네.
學士九川今玉履 학사가 구천동에서 이제 귀한 걸음 하였더니
縣知風骨佇雲林 운림에서 강건한 풍골이 나타났다고 고을이 떠들썩.

[주1] 풍골(風骨) : 풍채와 골격을 아울러 이르는 말, 웅건하고 힘 있는 풍격, 불굴의 기개.
[주2] 운림(雲林) : 구름이 걸쳐 있는 숲, 구름이 자주 머무는 숲.
[주3] 도인봉(道人岑) : 도인이 도를 닦는 산, 신선이 노니는 봉우리.
[주4] 용종(龍種) : 뛰어나게 좋은 말[馬] 준마로, 재능이 걸출한 사람을 일컫는다. 또는 고려시대 왕족(王族)을 이르던 말.

4). 구천동 점마소 유평사(지숙)에게(寄兪評事(止叔)九川點馬所).

多大本稱龍種浦 다대포는 본디 용종포라 불렀는데
年年驅點風交雨 해마다 바람과 비를 주고받으며 말을 점검한다.
寄語雲孫莫自閟 먼 후손들에게 당부하노니 "스스로 문을 닫지 말라"
終令天廐無奇致 결국엔 천자 마구간도 특이한 풍취 없다네.
絶嶼誰知汗血足 누가 거제도에 준마가 있음을 알리오?
周行庶見調良策 좋은 채찍으로 살펴서 두루 다녀 보고 싶어라.
學士如今必得之 학사께서 바로 지금 반드시 얻게 되리니
檜杉林下住淸儀 회나무 삼나무 아래 맑은 거동으로 머물라.

5). 보 조덕원(報趙德源)(景混경혼), 조덕원에게 알리다.

精金溫玉容姿美 인품은 순량하고 온화하며 용모와 자태는 아름답고
淵水巍山性度貞 깊은 못과 장대한 산처럼 성품과 도량은 곧바르다.
此心許國非他變 이 마음 나라 위해 흔들리지 않으니
到老如今見至誠 늙어버린 오늘에도 지극 정성 보인다네.

[주] 조덕원(趙德源) : 1522년(중종 17)∼1582년(선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경혼(景混). 아버지는 여산군수 헌(憲)이며, 어머니는 성균학록 오윤(吳潤)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를 거쳐 경상우평사(慶尙右評事)· 성균관전적, 1558년 영광군수, 1560년 다시 전적, 다음해 예빈시판관·헌납·사간·수찬·교리·응교를 역임하였다. 1563년 이량(李樑)의 당으로 몰려 관직에서 물러나, 양근에서 여생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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