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는 매화꽃이 피어나기 시작을 하고 새 봄을 알리고 있다는데 남녘에는 움트는 냉이와 참쑥의 봄맛을 보고 있으면 내가 있는 이곳 둔덕 골에 어느 틈새 상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네요. 그래도 흐름속의 세월은 내 발길을 묶어 놓았던 마음속의 하얀 눈들을 소리 없이 녹여 내리게 할 것입니다. 이런 날 나는 새 봄을 기다리면서 가슴 뛰는 나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양지바른 산야에도 봄은 오는데 나의 마음에도 벌써 새 봄이 와서 이럴 때 내가 사랑하는 벗이라도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도 싶다가 이내 찾아오는 산새들과 노닥거리다보면 또 하루가 지내가네요. 기다림... 머지않아 활짝 피어나는 산야의 꽃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추운 겨울 내내 움 추렸던 내 어깨에도 함께 기지개를 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런 기다림이 있기에 기꺼이 한파속의 찬바람을 맞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은 것 같았던 잔가지에도 하얀 매화꽃이 피어나고 이 꽃이 피어 날 무렵 나는 어김없이 농기구를 들고 밭으로 나갈 것입니다. 실바람 타고 내려오는 곱디고운 흙 한웅큼 손에 쥐고 흙냄새 맡아보고 그 향기에 취해서 하루해가 서산에 걸치는 것도 모른 체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밭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밭에서 노닥거리다 보면 새봄도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을 할 것입니다.

아내는 밭에 주저앉아 잡초를 뽑고 나는 텃밭에서 씨앗을 뿌리고 산새도 풀벌레도 아내도 나도 모두가 자신의 할 일을 하면서 침묵을 합니다. 이렇게 봄날의 하루를 보내다 보면 간사한 내 마음은 지겨웠던 겨울을 또 다시 생각을 하면서 첫눈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살뿐이 내 가슴을 살짝 내려놓습니다.

봄비가 내리고 새 봄의 꽃들을 조금씩 소리 없이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겨울 내내 움추려 기다렸던 벚꽃, 매화,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산방산 삼월삼짇날 행사가 기다려지네요. 이런 날 두 눈을 크게 뜨고 파란하늘을 바라보면서 내 삶의 수채화를 그려봅니다. 힘들고 무거웠던 내 어깨의 멍에를 내려놓고 이렇게 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숨 쉬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자연의 깊은 뜻을 생각해 보자. 매일같이 이 날만 같아라, 매일같이 티만큼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기뻐하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매년 한결같은데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그 봄을 그리워하면서 오늘도 가슴조려 봅니다. 살아가는데 너무 내 앞에 있는 것들만 바라보지 마시고, 잠시만이라도 내려놓는 여유를 갖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한번쯤은 찾아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마음 조급해 하고 서두른다고 고통 받고 괴로워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으니 그 또한 기쁨으로 받아 슬기롭게 생활하는 지혜가 더욱 절실한 요즘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어느 친구는 또 한자리하려고, 이웃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면 무엇이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숨 쉬지 않으면 다 버리고 갈 것인데 공기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아등바등 하면서 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추, 고구마 농사지어서 판매도 하고 나를 아는 분들께 보시(布施)도 하게 될 것입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그리운 벗님들, 그리고 이웃님들에게 다가오는 새 봄과 함께 기쁨을 전해 드릴 수만 있다면 나는 오늘도 즐거움 가득 하루가 될 것만 같습니다.

지난 2월 27일 10시에 아내와 같이 겨울에 가보지 못한 산방산 등산을 갔습니다. 오랜 만에 하는 등산이라 처음은 몸이 무거웠지만 차츰 걸으니 회복되어서 정상을 오르면서 벌써 양지바른 곳에는 꽃망울이 터트려 지는 것을 보았으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둔덕의 모습과 저 멀리 제승당 한산도 미륵산 거제면 동부면 계룡산이 눈앞에 약간의 운무를 품고서 그 자리에 서있는 모습은 초봄의 장관이었습니다. 임도산길을 따라 내 고향 옥동 마을을 거쳐 주민들을 만나서 대화도 나누며 하둔 까지 내려오는 동안에 마장 밭에 갔더니 냉이와 쑥들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었어요. 봄날의 따스한 향기가 밀려오면서 나는 그 향기에 취해서 한동안 쉼터에서 호흡을 가다듬어 봅니다. 나뭇가지 가지마다 작은 움을 만들어 내고 머지않아 그 움이 싹틀 때 산모퉁이를 돌아 봄맞이꽃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새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비속의 향기가 상큼합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슬러 농사에 전념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새싹이 돋아나고 아픔을 치유하여 건강한 생활을 하여 즐거움이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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