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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마 바둑 고수의 안타까운 죽음…진성진 /변호사, 뉴스앤거제 칼럼위원

   

▲ 진성진 변호사

얼마 전 거제 아마 바둑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던 고수(高手) 한분이 월세 여관방에서 수건으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는 고아로 출발한 고단한 삶의 여정을 생활고에 지친 나머지 스스로 마감한 것이다. 피붙이로 딸이 하나 있었으나 공부(公簿)상 드러나지 않아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시의 지원과 바둑 동호인들의 도움으로 시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그의 기재(棋才)와 요절(夭折)을 안타까워 한 동호인들이 그렇게 쓸쓸히 떠난 그를 기리는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줄 요량이라는 소식을 접한다.

아마 바둑 5급 정도의 실력이지만 바둑에 대한 열정과 기개(氣槪)만은 프로 9단 이상인 동호인의 한사람으로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가 만일 보다 나은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우리 바둑계는 '콧털'이라는 애칭을 지닌 프로 바둑기사 한명을 더 보유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 일명 '콧털'로 통하던 故 박동석(호적상 이름은 박종식으로 밝혀짐)씨의 유해가 묻힌 충해공원묘지. 고아로 태어나 평생을 힘겹게 살다 간 고인을 위해 거제기우회 회원 등 주변인들이 거제시의 도움을 받아 충해공원 내 양지바른 곳에 고인을 안장했다.

우리는 종종 언론을 통하여 유명인사의 자살소식을 접한다. 작년에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박연차 비자금 수사 도중 고향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했고, 재작년에는 국민여배우 최진실이 탈렌트 안재환의 자살과 관련된 루머와 악플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아파트 목욕탕에서 압박붕대로 목을 매어 생을 마감했다. 며칠 전에는 세계제일의 IT기업 삼성전자 부사장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는 한때 삼성전자를 이끌어 갈 인재를 의미하는 '삼성전자 펠로우'로 선정되었는데 최근 두 번의 인사에서 연이어 소외되었다고 한다. 그의 연봉은 10억이 넘고 60억원 어치 이상의 삼성전자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자살하는 사람은 한마디로 불행한 사람이다. 현재의 삶이 너무 비참하고 불행해서 그 고통을 피하는 극단적이 선택이 자살일 터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행복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자살은 현재의 불행에 대한 도피이자 행복추구를 향한 피맺힌 절규(絶叫)다!

   
▲ 거제기우회 소속 송호암씨가 고인의 가묘에서 절을 하며 먼 길 떠나는 고인을 배웅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다. 그 비교대상은 가까운 주변이며 그보다도 더 자기 자신이다. 역경 중에 겪는 가장 큰 불행은 과거 한때의 행복이라 했던가!

그러한 관점에서 전직 대통령, 국민여배우, 연봉 10억원에 100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대기업 임원 등 누가 보아도 성공적인 삶을 영위한 이들의 자살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편 대자연의 섭리로 잠시 이 세상에 머무르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운명이라면 굳이 그 끝을 스스로 재촉할 필요야 있겠느냐 하는 상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삶은 고통이며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태어남도 죽음도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그 막간을 즐기는 것 뿐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삶은 본래 고달픈데도 마냥 걸어 가야 하는 여정(旅程)과도 같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 있다면, 지식의 우물에서 목을 축이고 지혜의 그늘에서 땀을 식히는 잠깐의 휴식이, 다시 발걸음을 재촉할 힘을 우리에게 안겨준다는 것뿐’이라는 스페인의 문필가 그라시안의 갈파(喝破)는 우리에게 많은 위안을 준다.

통영에서 오전 재판을 마치고 넘어오다가 휴게소에서 점심을 때울 때가 종종 있다. 펄펄 끓어 넘치는 6,000원짜리 굴국밥 한 그릇에 작취미성(昨醉未醒)으로 보깨던 속이 확 풀린다. 등짝과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말 그대로 등따시고 배부르다! 행복감이 솟아난다. 불과 10여분 전 법정에서 보았던 구속피고인들의 모습이 뚝배기 위로 솟아오르는 더운 김에 오버랩되면서!

점심시간 막간을 이용하여 사무실 한층 아래 부동산에서 동생 청일이와 500원짜리 내기 바둑을 둔다. '돈보다 명예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치며 바둑 삼매경에 빠져 짧은 실력으로 수(手)를 내보려고 용을 써는 순간, '변호사님!' 하고 부르는 정양의 외침에 퍼뜩 정신이 든다. 뭐꼬? 상담 손님들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 좋은 수가 떠오를라 쿠는데, 바둑도 못 뜨건네! 졌다! 하고 자리를 털며 계단을 올라가면서 '아! 나를 만나러 원근불문하고 찾아와서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구나'하는 존재감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행복인가!

   
▲ 콧털 박동석씨 장례를 위해 회사출근도 미룬채 시간을 낸 거제기우회원들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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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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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팡이짚고으랏챠차 2010-02-12 14:15:58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글을 읽는 동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네요. 맑은 장국이 좋을 때도 있지만 구수한 우거지된장국이 좋을 때가 더 많은 게 거제사람인가 봅니다. 전문적 지식을 갖춘 글보다 사람냄새, 땀냄새 나는 글이 개인적으로 더 좋네요. 재미나는 입담을 사석에서만 과시하지 말고, 종종 이런 지면으로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삭제

    • 독자 2010-02-12 10:57:50

      고인의 명복을 빌며
      진변호사님은 구수하고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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