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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바닷가 풍경(風景)[연재] 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끝없이 펼쳐진 짙푸른 거제하늘가, 이내 몸이 흡사 뜬 구름 같아 어디에 머무는지 따질 필요 있으랴. 백년 인생 한 순간인데 거제 바닷가 역시 내 품속의 오랜 내음에 젖는구려. 하릴 없이 떠나고 머무는 구름에 멀고 가까움 따질 수 있으리오. 뭇 봉우리에서 나올 때도 본래 무심이요, 다시 돌아옴도 우연일 뿐이려니 남녘 가에 몸 붙이고 사는 것도 모두 하늘의 이치로세.

사람이 이곳에 산지는 태곳적부터인데 하늘은 봉래산 저 너머로 툭 트여 서복(徐福)도 여기에서 불로초를 찾아간 곳이라오. 잔잔한 바닷물에 노 젓는 일도 느릿느릿, 너무 좋은 경치에 창해바다 건너다 멈추는 거제도는, 남동해 바닷가에 승천을 준비하는 용이 깃든 신선의 땅이라네.

쌍돛대 뱃간에 기대면 듣지 못했던 새소리요, 그물을 올리면 입맛 당기는 생선이라, 고색창연한 암벽 위에 높이 치솟은 고목들, 어긋버긋 섬들이 온통 눈에 들어오니 자꾸 돌아볼 수밖에.. 이만하면 그림 속의 풍경임을 알겠노니, 관현악(管絃樂)과 시어(詩語)를 따로 준비치 않으리라.

땅은 신령스러워 샘이 마르지 않고 바닷물은 언제나 오고가니 바닷새와 조개는 어부의 횡재꺼리요, 대나무 사이 이상한 새들도 많아, 맑은 낮 시간엔 울지 않고 고요하다가 달빛 차가운 밤에 조잘대는 소리 들리누나. 수평선이 한눈에 보이는, 부상이 멀리 있다 그 누가 말하는가?

해변마다 부유하는 소금 굽는 연기요, 높은 언덕에는 파수하는 망대의 불빛이네. 만 리 길에 외딴 배를 타고 가는 나그네, 푸른 파도 어쩜 그리 아득도 한고?

먼 갯벌에 흰 안개 깔려 있고 줄그은 물굽이에 황금빛 태양 솟는다. 파도는 백설 같은 바닷물 몰아와서 아침저녁으로 푸른 연기 이누나. 하얀 포말은 겹겹이 연이어 해안가로 밀려오니 맨 정신에 취한 어지러움 즐겨 황홀하네.

중국 소동파만 특별히 굴(石花) 즐긴 건 아니라, 거제의 싱싱한 굴이 천지 아래 한결 높다구나. 만 리 부는 바람이 아지랑이 뒤흔드는, 비 개인 날에는, 복어가 모여들고 내일 아침이면 닻줄을 풀어 천리만리 달린다네. 빙 두른 바닷가엔 탱자 꽃이 피었는데 포구의 조수 빛이 새파랗기 술잔이라, 그 누가 저 바닷물을 끌어와서 나의 마른 입술을 축여 줄까나?

1). 거제해변(巨濟海邊) / 고영화(高永和)

萬雲眼中過 온갖 구름이 눈앞에 지나가고
炊烟海岸斜 밥 짓는 연기가 해안을 덮었구나.
聯巖鳴水獺 잇닿은 바위에는 수달이 우니
灣頭舞金沙 포구 머리 황금모래 춤을 춘다네.
簷明海潮上 밀려오는 바닷물, 처마 지붕 불그스름,
輕紅海岸花 연분홍 고운 빛은 해안에 핀 꽃이로다.
海淸時流影 맑은 바닷물 때마다 달그림자 흘러가니
海顔響鳴沙 웃음 띤 모래 소리 울려 퍼지네.

2). 거제 가을풍경(右岐城詠) / 이범(李範,1535~?)

烟花開千戶 연화(煙火)는 온 마을에 피어나고,
桑麻蓋四鄰 상마(桑麻)는 사방을 덮었네.
海山秋色秀 바다와 산에 가을 색이 빼어나고,
洲橘晩香新 물가에 열린 유자는 늦게까지 향기 새롭네.

조선초기 학자이자 문신인 이범(李範)선생은 거제도 순행 길에 나선다. 어둑한 저녁나절에 배를 타고가면서 창문을 통해 거제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변화무상한 바다 물결과 수평선, 그리고 줄 이은 섬, 허상이 가득 찬 하늘과 땅, 시시각각 달빛에 교차되는 바다, 배를 따라오는 풍경이 장관이었으리라. 바닷바람이 돛대를 치는 소리가 마치 바다를 다스리는 늙은 거제용이 괜찮다고 일러주는 언질로 비유하며 바닷길의 안전을 확신한다.

3). 거제도 저물녘(岐城 晩詠) / 이범(李範)

群山揷海淺還深 여러 산이 바다에 꽂힌 듯 얕았다가 깊었다가
頃刻能晴又易陰 잠깐 사이 개였다가 또 쉽게 그늘지네.
誰倚船窓夜吹笛 누군가 밤에 선창(船窓)에 기대어 피리 부는지,
滿船風雨老龍吟 배에 가득한 비바람에 늙은 용이 읊조리는 듯.
[右岐城 晩詠 縣令 鄭以吾] 경상우수영 기성(거제)에서 저물녘에 읊조린다. 현령 정이오.

4). 거제 해촌(巨濟 海村) / 이유원(李裕元) 1881년.

水雲石氣上簾凉 물구름 돌 기운이 발 위에 서늘하고
古墨輕斫滿几香 옛 먹을 가벼이 때리니 책상에 향기 가득하다
李花村落絲絲雨 오얏꽃 마을에 보슬비 내리는데
偏惹詩人午睡長 시인(詩人)에게 이끌러 낮잠만 길어지네.

5). 거제해변(巨濟海邊) / 이정(李楨).

擧頭惟白日 머리를 드니 밝은 해 뿐이고
開眼只滄波 눈을 뜨니 오직 푸른 물결 밖에 없구나.
一棹分南北 노(棹) 젖는 바닷물 남북으로 갈라지고
靑山隔海多 청산에 가로막힌 바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위 시는 이정(李楨)선생이 견내량에서 사등 앞바다를 거쳐 고현만으로 배를 타고 친구를 만나려 가는 길이다. 배 멀미에 잠시 주춤하다 머리를 드니 하늘에 밝게 떠 있는 태양으로 순간 아찔한 빈혈 증상이 생겨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오로지 푸른 바다 물결뿐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배 사이로 남북으로 갈라지는 바다물결을 한참이나 즐긴 이곳은, 가조도와 성포 사이를 지난 후 10리쯤, 사등면 앞바다였으리라. 그리고 연초면과 칠천도, 고현만이 바다를 턱하니 막고 있는 장면에 감동한 선생은 붓을 들어, 위 시(詩)를 한편 남기게 되었다.

이정(李楨)선생은 호는 구암(龜巖)이고 본관은 사천(泗川)으로 이숭효(李崇孝)의 아들이다. 1558년 두류산을 유람하다 돌아온 후, 거제에 귀양 온 친구 정황(丁煌)을 찾아갔다. 이때 선생이 배를 타고 가서 거제 해변에 있는 수양동 수월사 절에서 정황을 만나 사흘 밤을 같이 지내고 다시 남해로 건너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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