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의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 조선업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해운업의 장기침체로 인한 ‘조선 불황’이 원인이다.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3-4년분 일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며 여유를 부리던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세계 해운업의 회복이 요원한 가운데 2월 들어 세계 금융가를 강타한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조선업계의 위기의식은 더 고조되고 있다.

특히 그리스의 재정상태가 심각한 그리스는 전 세계 상선의 15% 가량을 보유한 세계 1위의 해운강국으로 매년 600척 안팎의 선박 건조를 발주하는 최대 선박 고객이다. 이들은 금액 기준으로 50~60%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에 선발을 발주해 놓은 상태이다.

여기에 지난해 세계 3위의 프랑스 해운회사 CMA-CGM의 파산위기로 선박 인도와 대금결제가 지연된 데 이어 2월 16일에는 독일의 선박금융업체 로이드폰즈는 한진중공업에 대해 실시했던 3억1,500만달러(약3,620억원) 규모의 1만2,800TEU급 컨테이너선 두 척에 대한 발주를 취소한다는 소식까지 겹쳤다.

지난해 연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고통이 한국 조선소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까지 고용감소와 재정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저주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은 한국 수출업종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중대형 조선업체 직접 고용인원만도 13만명이나 된다. 따라서 이번 ‘조선 불황’은 예사롭지 않다.

지금 국내 조선업체들이 만들고 있는 선박들은 지난 2006-2007년도에 수주 계약한 물량이다. 2005년 세계 해운업 활황에 힘입은 수주한 물량이다. 2005년 당시 세계 교역증대로 해운사가 보유한 세계의 여유 선박은 0.7%에 불과해 해운업체들은 선박에 대한 ‘패닉 바잉’에 빠져들기 조차 했다. 그러나 3-4년이 지난 지금 해운업체들의 선박은 남아돌고 있다.

대형업체는 현금확보와 구조조정에 나서

이러한 선박수주환경에 국내 조선업계들은 비상경영체제 모드에 진입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최근 1조 원에 달하는 현금 유동성을 확보했다. 고가 선박 위주의 삼성중공업도 7년 만에 처음으로 7천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불황이 내년 말까지 지속될 경우 버틸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업체들은 인력 구조조정에도 나서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이미 2월까지 국내 조선부문 생산직 인력을 현재 2500명 중 75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서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고 있다. 대형조선사들은 이미 사내 하청이란 형태를 확대했다. 현대중공업 1만 9,800명, 삼성중공업 1만 5,320명, 대우조선해양 1만 4,000명 등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분포돼 있다. 여차하면 이들 비정규직을 언제라도 감축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상하반기에 걸쳐 수주가 확대되지 않을 경우 내년부터 4단계에 걸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며 “최종 4단계는 인력 구조조정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 1위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도 불황에 대비 인원에 대한 직무 재배치에 들어갔다.

그리고 생산시설 투자도 중단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들 조선사들은 대형 도크 또는 새로운 조선 부지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섰었다. 현대중공업은 일감이 소진되는 울산조선소 내 제4도크의 생산을 잠정 중단키로 했고 3월에 준공식을 열고 생산을 본격 시작하기로 한 군산조선소의 건설작업도 늦추고 있다.

우리나라 대형조선업체들은 ‘조선 불황’에 대응해 2011년까지 버티기와 구조조정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업체 ‘부도 도미노’...거제와 울산 지역경제에 타격

그러나 중소 조선사들은 빈사상태이다. 특히 전남 목포 등 서남권의 중소형 조선산업단지는 조선 불황으로 수주 급감，발주 취소，선가 하락 등의 삼중고 속에 버틸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들 중소조선업체들은 계약조건상 선지급금을 못받고 제작에 들어간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선주들이 배의 인수를 미루면서 자금경색에 몰리면서 임금체불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중소조선사들의 중국의 저가 공세에도 밀려 생존기반이 헐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업체들은 “최근 저가를 앞세워 수주가 활발한 중국 다롄，웨이하이 등지도 빠져나간다”며 하소연 하고 있다. 이들 중소형조선업체들도 저가경쟁에 나서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수주조촤 안되고 있다.

이미 작년 C&중공업이 파산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조선업체들도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형편이다. 또한 한때 국내 최대 규모 조선기자재단지로 면모를 일신했던 영암 대불산단 내 조선기자재 업체 220곳 중 일부라도 가동하고 있는 곳은 겨우 100곳 정도로 ‘부도 도미노’에 시달리고 있다.

울산과 거제 또한 조선 불황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대우해양조선과 삼성중공업이 입지한 거제시는 조선으로 유지되는 도시이다. 그러나 조선 불황으로 선박건조 물량 감소로 본격화되면서 이미 잔업과 특근은 없어졌고 지역상권은 이로 인한 불경기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주요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과 거제 앞바다에 주인을 기다리는 선박이 둥둥 떠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한 지 오래됐다”며 “접안해 둘 곳이 없어서 바다 위에 띄워 놓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가 대부분인 울산 지역의 중소조선업체나 조선기자재 업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 조선수주 1위에 등극...한국 지위 넘봐

이러한 국내 조선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중국의 거센 도전이다. 이미 조선업체 실적 기준 중 하나인 수주량과 수주잔량 부문에서 2009년에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칫 이 위기를 잘못 관리할 경우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조선 1위 자리를 내준 것과 비슷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조선 및 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체들의 지난해 연간 수주량은 315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점유율 40.1%)로, 349만CGT(44.4%)를 기록한 중국에 추월당했다. 올 1월 기준 수주잔량에서 우리나라는 5283만CGT(34.7%)를 기록해 5322만CGT(34.9%)의 잔량을 보유한 중국에 밀렸다.

2000년 2월 일본을 추월한 이후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지켜온 세계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준 것이다. 다는 우리나라는 건조량에서 작년에 중국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였을 뿐이다.

이처럼 지난해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 배경은 무엇보다 중국 내 해운사들의 발주가 중국 정부의 조선업 지원정책으로 우리나라 등에서 중국으로 발걸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공격적인 저가 공세까지 겹치면서 벌크선 위주의 물량을 대량으로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력인 컨테이너선 수주는 참담한 형편이다. 클락슨 발표한 지난해 선박 발주 최종 집계에 따르면 수주가 완료된 컨테이너선은 7척에 불과하다. 전년도인 2008년 금융위기 중에도 총 209척이 수주된 것과는 비교하기 조차 어렵다.

비록 중국이 부가가치가 낮은 선박 위주로 수주하고 있어 국내 조선업계와 단순 비교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조선 불황’이 2011년 까지 이어질 경우 우리의 조선경쟁력은 중국에게 계속 밀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올 하반기 선박가격이 저점인 시점에서 저가공세를 펼칠 경우 컨테이너 선박 수주 조차도 중국에 뺏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해운사 특성상 선박가격이 저점이라고 판단되는 시기에 몰아서 주문할 것으로 본다. 이에 대비한 가격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조선업은 내부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통과 외부적으로 중국의 공세를 맞아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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