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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향교(巨濟鄕校)의 역사와 기록물 1[연재]고영화의 거제산책

   
▲ 고영화
1). 거제의 학교 기원과 거제향교(巨濟鄕校) 역사.
거제의 학교 기원은 고려시대(서당)를 거쳐 조선초기 고현동에 관학교육기관인 거제향교가 1453년 건립되면서 시작되었다. 現 거제면 서정리에 위치한 거제향교는 조선시대 지방교육을 담당하던 관학교육 기관이다. 현재 중·고교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시설로 당시 양반자제들을 대상으로 사서삼경을 비롯해 학령, 사목, 절목 등을 가르쳤다. 소재지는 거제면 서정리 626번지로 1982년 8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거제 구전에 의하면, 조선 초기 1432년 수양동 수월리에 거제향교가 처음 세워졌다고 하나 사료가 전하지 않는다. 사료(史料)에 따르면, 1449년(세종 31년) 거제현령 이호성이 부임하여 1451년 가을부터 1453년까지 고현성(古縣城) 축조를 완성했다. 이때 관청과 객사, 고현동 서문골 향교가 함께 건립되었다. 당시 현령 이호성(李好誠)은 현장을 진두지휘하였고, 관찰사 하연(河演)은 경상도 6읍의 장정들을 소집하여 지원했으며, 더불어 고현성 및 각종 성문, 관청, 객사, 향교의 위치와 방향을 풍수지리설(음양)로 장소를 잡은 분은 도제찰사 정분(鄭苯)이었다.

이행(李荇)이 1506년 유배왔다가 복권 후, 그가 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거제현'편에 의하면, 거제향교는 고현성 서문 1리(약400m) 서편 골짜기(서문골)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제현령의 임무중 하나인, 인재육성을 위하여 공립교육기관인 향교에 훈도(訓導)가 파견되어 공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이 후부터는 유배자들에 의해 향교에서 공교육이 이루어져, 1470년대 거제 유생 고이녕(高以寧), 1500년 초 거제선비 이맹전(李孟全), 이백완(李伯完), 이악(李鶚)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1506년 고현 상문동 이행(李荇)은, 거제 관리 이수간(李守幹), 수위(守威), 수인(守訒), 수심(守諶) 형제들과 시문을 함께 읊었다고 전한다. 거제 유배자 중, 교육에 가장 기여를 하신 분은 1548년에 귀양 온 정황(丁熿)선생이다. 약 13년 동안 고현동 거제향교에서 후학에 전념하시었고, 경남 전 지역에서 학생들이 몰려와, 거제향교는 처음으로 부흥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향교에서 수학한 인물로 이정(李楨, 李龜巖), 이준민(李俊民), 이로(李魯), 정염(丁焰), 김급희(金伋希), 박오(朴旿,太曦) 등은 널리 알려진 학자들이다. 정황(丁熿)선생은 당시 불모지였던 거제민초에게 유교와 학문을 전파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후 조선 현종 5년(1664)에 현 거제면 서정리에 당시 현령 이동구(李東耉)의 발의에 의하여 재창건을 보게 되었고, 학문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거제향교 현판문에 의하면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고현 향교가 잿더미가 됨으로써 그 이전의 사실을 밝힐 수 없다고 지적되어 있고, 『경남교육사』(1980년판)에는, 거제향교의 설치 시대가 임란 전에는 세종조로 되어 있으며, 임란 후에는 광해군으로 되어 있어 역사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1592년 5월 12일 임진왜란 時 고현성이 함락되고 거제향교도 소실되었다는 현판문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후 누추하게 중건하여 고현동 거제향교의 명맥을 이어 갔다고, 17세기 초기 조임도(趙任道)의 거제향교 동서 곁채에 다섯 분 봉안을 고하는 대성문(巨濟鄕校東西廡奉安五賢時告大聖文)에서 전한다.

1885년(철종 6) 을축년(乙丑年), 상한 시임(上澣時任) 신재봉(辛在鳳)의 <향교이건기(鄕校移建記)>에 따르면, 갑진년(甲辰年) 1664년(현종 5) 거제 동헌이 거제면으로 옮겨올 때, 현 서정리로 함께 옮겨와 복원했다가 52년 후 1715년 을미년(乙未年)에 거제의 동쪽 기슭 도륜동(道淪洞) 좌(左)편으로 이건(移建)했다. 이후 75년이 지난, 경술년(庚戌年) 1790년 정조14년에 계룡산(龍山) 아래로 이건(移建)했다가 다시 72년 후 1862년 임술년(壬戌年)에 서정리 현(現)터, 구기(舊基)로 재이건(再移建)했다고 적고 있다.

조선초기 김안국(金安國)은 소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소학〉을 한글로 번역한 〈소학언해〉를 발간하여 민간에 보급했고 소학을 기초하여 후학을 계도하고 성리학을 가르쳤다. 당시 사대부의 제자들은 8세가 되면 유학의 초보로 배웠고 조선시대의 충효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 윤리관을 보급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517년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각 향교에 〈소학 小學〉을 나누어 가르치게 하고, 〈이륜행실도언해 二倫行實圖諺解〉·〈정속언해 正俗諺解〉 등의 교화서(敎化書)를 간행·보급했다. 아래 시는 경상도관찰사로 재직 중에 거제향교의 훈도(訓導 종9품)에게 보낸 글이다.

◯ 거제학자에게 주는 시(勸示 巨濟學者). 
소학교육과 성리학 보급을 장려하며 / 모재집(慕齋集), 김안국(金安國) 1517년.

聖朝治敎極休明 어진 임금의 조정이 정치와 교육을 아름답고 밝게 이르게 하니
海島欣聞講誦聲 바다 가운데 섬에 글을 강독하여 외우는 소리가 즐거이 들리는구나.
正雜途殊宜早辨 정도와 잡도가 다르니 마땅히 먼저 분별해야 하며
須將小學日修行 모름지기 소학을 공부하고 날마다 학문을 닦아라.  
[주1] 정도(正途) : 과거를 통해 신사가 된 사람들.
[주2] 잡도(雜途) : 돈이나 그 외로..   

   
 
2). 거제향교의 건축물과 유품
거제향교의 건축물을 살펴보면, 교학 공간인 명륜당, 외삼문, 배향 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문, 내삼문 등이 설치되어져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이는 두리기둥 위에 주두를 놓고 익공을 짠 이익공(二翼工)양식으로 행공첨자를 두어 외일출목(外一出目) 도리의 장혀를 받치고 있고 주간에는 화반을 둔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 성현 4명, 신라2명, 고려 2명 등을 모시고 매년 춘.추향제를 올렸으며, 양옆의 동무(행각). 서무는 조선시대 성현 16인을 모신 곳으로 같은 날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일주문(一柱門)은 기둥을 한 개씩 받쳐 집을 지었다 하여 일주문이라 하고, 문이 세 곳에 있다고 삼문이라 한다. 명륜당(明倫堂)은 유학을 하고, 인륜을 밝히는 전당이며, 동재는 동쪽에 있는 재실로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이고, 풍화루(風化樓)는 백성들을 풍습에 맞추어 교육하는 곳으로 향교의 정문에 세워졌다.

향교에는 전교(典校)가 총 책임을 맡고 그 밑에 장의(掌議)가 있고 그 외에는 학생으로 칭한다. 그리고 거제유도회가 후세의 인륜교육에 힘쓰고 있는 곳이다. 1942년 세계2차 대전 때 일본의 놋그릇 공출제도에도 굴하지 않고 거제유림들의 항거로 간직하고 있음은 국내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거제향교 제기에는 강희 9년 8월에 감관을 유학 김순이 하고 색술은 심순일이가 하였으며, 주조하기는 장인 박천룡이가 하였다는 조각(1670년 현종11년 강희 9년)이 있으며 그 수량은 90점이다. 또한 명륜당에서 유생은 강의를 위하여 지식과 학문을 익히며, 삼강오륜을 심어주기 위하여 수많은 서적을 비치하고 교육시켰다. 거제향교 명륜당에 소장되고 있는 옛 서적은 400여 년간 교육용으로 활용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한 고현성 함락과 당시 향교의 소진으로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논어, 주역, 송자, 대전, 절약통편, 명신언행, 속수삼강론, 맹자, 소학, 시전등 총 27종 185권은 보관중이다.

   
 
거제향교는 문묘인 대성전 중심으로 하여 동,서문과 일주문이 있고 그 앞에 명륜당, 고자실, 풍화루를 건립하였다. 풍화루(風化樓)는 풍습에 맞게 백성들을 교육하는 곳이며 또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감화되어 선하게 되는 교육의 장이라는 뜻으로 정문에 세워진 건물이다.

명륜당(明倫堂)은 향교 내의 유학을 강의하는 곳이며 인륜을 밝히는 전당이다. 이 명륜당은 유생의 강의를 위하여 사용하였고 수시로 현령 혹은 태수(지방관)의 정치 자문에 응하기도 하였다.

향교의 학습 수준은 근세의 중고등학교 과정과 비슷한 교육과정이다. 그리고 향교에는 도유사(都有司)․제장(齋長)․장의(掌議)․색장(色掌) 등의 직원이 있어 현재에도 그 권위를 갖추고 있으며 향교의 대표자는 전교(典校)이다.

거제향교는 조국의 광복 후 유교의 전당으로서 유지 관리되어 왔으며 1970년에 전교 윤병재씨가 주선하여 대성전을 보수 단청하였는데 계속하여 풍화루를 보수하였고 명륜당을 확장 개선하기 위하여 전교 반희도씨가 거액의 사재를 내어 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1년에 향교 제기 10개를 동산문화재로 등록하고 1975년 8월에 문화재 위원회의 감정을 받았다. 거제향교는 조선 중엽의 웅장한 건축미와 아름드리 통나무 기둥에 우아한 단청으로 특유한 건축미를 지니고 있으며 1982년 8월 2일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거제향교가 처음 건립한 후부터 오성(五聖 :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다섯 분을 모시다 그 이후 1610년부터 동방오현종사(東方五賢從祀) 문헌공 정여창(鄭汝昌), 문경공 김굉필(金宏弼), 문정공 조광조(趙光祖), 문원공 이언적(李彦迪), 문순공 이황(李滉). 다섯 학자를 신현읍 서문골 향교 內, 양 옆 동쪽 서쪽에서 배향했으며, 신주함은 1558년에 만들었다. 조선후기부터 서울의 성균관 명현(名賢)의 배향에 따라 거제면 서정리에 16현을 모시게 되었다.

현재 대성전(大成典)에는 대성지성 문선왕(大成至聖 文宣王)인 공자(孔子)를 주벽으로 모시고 다음의 성인(聖人)을 배향하고 있다.
태국복성공 안자(兌國復聖公 顔子) 성국종성공 증자(成國宗聖公 曾子)
기국술성공 자사(沂國述聖公 子思) 추국아성공 맹자(鎚國亞聖公 孟子)
그리고 배사(配祠)에는 송조 이현(宋朝 二賢)으로 예국공 정호(豫國公 程顥), 미국공 주희(微國公 朱憙), 동국사현(東國四賢)으로 홍유후 설총(弘儒候侯 薛聰), 문창후 최치원(文昌候侯 崔致遠), 문성공 안향(文成公 安珦), 문충공 정몽주(文忠公 鄭夢周)를 모셨다.
그리고 동무(東無)에는 다음의 동국칠현(東國七賢)을 종사(從祠)하였다.
문정공 송준길(文正公 宋浚吉) 문경공 김 집(文敬公 金 集)
문원공 김장생(文元公 金長生) 문성공 이 이(文成公 李 珥)
문순공 이 황(文純公 李 滉) 문정공 조광조(文正公 趙光祖)
문경공 김굉필(文敬公 金宏弼)이다.
서무(西無)에 종사(從祠)한 동국칠현(東國七賢)은 다음과 같다.
문헌공 정여창(文獻公 鄭汝昌) 문원공 이언적(文元公 李彦迪)
문정공 김인후(文正公 金麟厚) 문간공 성 혼(文簡公 成 揮)
문열공 조 헌(文烈公 趙 憲) 문정공 송시열(文正公 宋時烈)
문순공 박세채(文純公 朴世采)

< 역주(譯註) >
[주1] 맞배지붕 : 박공지붕, 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  
[주2] 두리기둥 : 둘레를 둥그렇게 깎아 만든 기둥.  
[주3] 주두(柱頭) : 기둥머리를 장식하며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도록 짜여진 넓적하고 네모난 나무  
[주4] 이익공(二翼工) : 창방에 직교하여 보를 받치는, 쇠서를 두 겹으로 내고 화초 무늬를 새긴 공포(처마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주] 행곡첨자 : 출목도리에 위치하는 첨자(도리 방향)
[주5] 외일출목(外一出目) : 도리를 받치고 있는 공포에서, 기둥의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돌출된 첫 번째 출목.
[주6] 장혀 : 장여.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가 나 있는 나무. 
[주7] 화반(花盤) : 꽃 모양의 받침 널조각.         <이어 거제향교(巨濟鄕校)의 역사와 기록물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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