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오 / 뉴스앤거제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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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신부들의 대통령 퇴임 요구는 정치적 태풍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박창신(朴昌信.71) 신부의 ‘천안함 ․ 연평도 강론(講論)’까지 더해져 파장은 일파만파(一波萬波)입니다. 여야와 시민사회, 개신교와 불교로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정치종교의 너울’이 밀려오는 계절로 바뀌었습니다.

지난달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소속 일부 사제들이 전북 군산 수송동 성당에서 연 시국미사엔 제대(祭臺) 옆에 ‘불법 부정선거를 규탄한다. 대통령은 사퇴하라!’는 현수막이 내걸였으며, 성당 입구에선 외부단체 인사 10여명이 ‘불법 부정선거 당선범 박근혜는 귀태니까 자진 사퇴‘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촛불 퍼포먼스를 펼쳤다고 합니다.

더욱이 박창신 신부의 강론은 ‘정치 종교’의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이날 강론에서“부정선거로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유신시대로 복귀하고 있다”며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하게 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또 “(현 집권세력은) 노동자 농민을 잘살게 해주자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으면서 북한을 적으로 만드는 종북(從北)논리를 선거에 이용해 집권을 연장해 왔다”며 “천안함 사건도 북한이 어뢰를 쏴 일어났다는 게 이해가 되느냐. NLL은 휴전협정에도 없고, 군사분계선도 해상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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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이란 원래 천주교에서는 신자에게 교리를 설명하며 가르치는 일을 이르는 말입니다. 박 신부가 설령 이날 강론에서 박근혜 정부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사제(司祭)의 신분을 악용해 정치행위를 한 것입니다. 종교인도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최소한 로만 칼라(Roman Collar)는 풀고 종교의식에 편승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종을 자처하는 성직자들이 ‘예수의 복음’을 기호 1번이냐, 2번이냐의 수준으로 전락시켜서야 되겠습니까? 가톨릭교회 교리서(2442항)는 “정치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司牧者)들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사제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한 헌법(제20조)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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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은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와 인권의 보루로서 민중의 십자가를 대신 짐으로써 이 나라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 존경받던 김수환 추기경의 존재와 함께 천주교를 빛낸 신뢰의 아우라(Aura. 후광, 광채:그리스어)를 쌓은 주역 중 하나였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 모두가 침묵해 제 구실을 못한 때 종교인이 사회의 목탁을 자처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명성은 1980년대 들어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 진상규명 운동을 통해 더욱 높아졌습니다. 특히 1987년 5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조작을 폭로해 6.10항쟁의 도화선을 당겨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정의구현사제단은 87년 이후 차츰 한국사회의 진화(進化)와 어긋나는 길을 걸었습니다. ‘독재와의 대치’구도를 벗어난 ‘다원(多元)사회의 출현’이 일부 사제의 원리(原理)주의 신앙과 부딪치기 시작한 것이라고 윤평중 교수(정치철학․한신대)는 진단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천주교의 공식 지도기구인 주교회의로부터 인준 받지 못한 임의단체여서인지, 천주교 지도부의 입장과 전혀 다른 친북(親北).반미(反美) 활동으로 민주화 투쟁에서 쌓은 명망을 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 KAL 858기 폭파조차 북의 소행이 아니라고 하고, 평택 미군기지․한미 FTA ․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위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의 주민 폭압 참상에 대해선 계속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 밀양 송전탑 건립 반대에 이르기까지 세속의 모든 현안에 개입해, 갈등을 증폭하는 걸 사명처럼 여겨왔습니다. 이는 성직자가 신앙의 이름으로 각종 사회현안에 대하여 최종 판관(判官) 역할을 스스로 자기의 임무로 여길 때 ‘정치 종교’가 태어난다는 분석입니다.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는 “종교인은 신(神)이 자기편이기에 전적으로 자신이 옳다는 오류, 절대선(善)의 오판에 빠질 가능성이 늘 있다”며 “이는 사제단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인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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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종교’는 현실 세계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난폭하게 재단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곧 ‘정치적 진리’라고 선포합니다. 그 결과는 실체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히는 독선이며, 미망(迷妄)입니다. ‘정치 종교’냄새를 불씬 풍기는 박창신 신부의 ‘천안함․연평도 강론’은 사실과도 맞지 않고 사회 공동체의 바탕조차 거부하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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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일부 대학생들은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신(神)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갖은 교설과 기만을 일삼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사죄하십시오’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의 김계춘 지도신부(82)는 “어쩌다 신부들이 양식 있는 신자들로부터 배척받고 국민에게 욕을 먹는 존재가 됐는지 한탄스럽다”고 자탄했습니다. 그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없어지기 전까지 성당 안 다니겠다. 정치 강론 듣기 싫어 성당 나가기가 싫다는 신자들의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며 “극히 일부 사제들 언행 때문에 천주교 전체가 ‘반(反)대한민국 집단’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라고 한숨지었습니다.

지난달 28일 한 조간신문에 실린 광고의 한 구절이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전략- 추기경님, 대주교님, 교구장님들, 천주교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저들의 눈치만 보시렵니까? -중략- 그동안 설득도 하고 간청도 해보았지만 저들은 들은 척도하지 않고, 낳아주고 길러준 조국을 해치는 배은망덕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제 평신도의 이름으로 이들을 교회로부터 추방하겠습니다. -후략-
이제라도 가이사(Caesar.로마황제)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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