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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에 울려 퍼진 차분한 절규[칼럼]강돈묵/거제대 교수

   
▲ 강돈묵 교수
그곳은 분명 허허벌판이었다. 인가도 보이지 않는 목장지대, 사람보다도 더 많은 소와 사슴과 알파카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벌판, 그곳의 주인은 진정 사람이 아니었다. 오로지 인간은 가축들에게 먹이 시중이나 들어야 하는 시녀에 지나지 않았다. 두 손 안에 먹이를 들고 알파카에게 다가서면 당연한 듯이 와서 먹어치웠다.
사람 수보다 가축의 수가 훨씬 많다고 해도 그것들마저도 쓸쓸해 보였다. 너무나 광활한 땅이라서 그들의 존재마저 미미하게 느껴졌다.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도 서로의 영역을 고집하며 싸울 일도 없었다. 굳이 내 것이라고 탐낼 이유가 하나도 없는 그곳은 무소유라는 의미조차도 필요 없었다. 이곳에서는 땅 한 평 소유를 갈망하는 인간들만이 머릿속으로 아파트를 옮기고 있었다.

뉴질랜드 로토루아의 목장지대를 돌아보면서 먹먹해진 우리는 오후 시간이 깊어서 한 숍에 부려졌다. 허허로운 벌판의 어디쯤이었다. 너무나 광활하여서 방향마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냥 조그마한 돌멩이처럼 그 숍은 길가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숍은 지금까지 만난 목장지대의 사육사보다도 더 외롭게 앉아서 우리를 맞았다. 가이드는 한국인이 자수성가하여 모피 생산을 하는 곳이라며 끌고 들어간다.

언제나 그렇듯 해외여행에서는 가이드의 호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한 쇼핑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유혹에 빠지지 말자 다짐하며 들어섰다. 공장 안에서는 털로 솜을 틀고, 이불을 만들고, 양탄자도 지어내고 있었다. 제품이 제법 고급스럽고, 값이 나가 보였다. 한국인이 나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그의 이야기가 차분히 시작되었다.

여기서 나는 용기를 내어 그의 이름을 거명해야겠다. 노광국씨. 상호는 참기로 한다. 그는 분명 한국인이었다. 흔한 상품 소개에 열을 올릴 것이라는 나의 심드렁한 태도를 그는 일순간에 모두 내쫓았다. 자신이 타국에서 버텨온 경험을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그의 말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외국에 살면서 제 나라 민족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한국인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와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조용한 웅변이었고, 차분한 절규였다.

그는 ‘호텔에 가면 프런트에 한국어로 서비스 요청을 해 달라’는 주문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하여 한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한국인의 채용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는 것이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관광 와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풍토도 쇄신하고, 한국인의 일자리와 한국어의 보급에도 일익을 담당하자는 생각이 분명했다.

이것마저 모국인을 홀리는 상술이라고 단정한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여기서 야박하게 보고 싶지 않다. 그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어쩌면 내가 평상시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고, 그런 글을 몇 차례 쓴 기억이 있어서 더 귀에 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싶다.

비단 상술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한번쯤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최대한 활용하는 슬기는 필요하다. 어떻게든 한국인의 긍지를 키우고 일자리를 마련하는 길이라면 같이 동참해서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 단 한번이라도 외국에 나갈 기회가 생긴다면 한국어를 고집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광산업에 임하는 자세도 한번쯤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학에서 신입생들에게 이웃 나라의 문화체험을 시키기 위해 일본에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때마다 느낀 것이 있다. 그 호텔에는 거의 한국인 손님들뿐이었다. 그런데도 호텔 측은 굳이 한국어를 사용하거나 한국인을 채용하지 않았다. 얄미운 생각이 들어 끝까지 한국어를 사용해 보았으나 그들은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았고,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다.

우리와는 너무도 달랐다. 우리 같으면 외국 손님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외국어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한 일일까. 조금은 이런 일본의 콧대를 꺾어줄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일본의 호텔에는 한국어 가이드가 가능한 곳만 골라서 투숙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이다. 또 다른 나라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꼭 한국어를 고집함으로써 한국인의 긍지도 살리고, 민족의 정기도 멀리 뻗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 로토루아의 허허벌판에서 조국을 향해 외치던 노광국씨의 절규가 귀국한 후에도 오래 가슴에 남는다. 비록 외국 땅에서 외롭게 혼자서 외쳤지만은 그 소리는 내 몸에 묻어 한국 땅에까지 들어왔다. 광활한 벌판에서 은은히 들리는 임팔라의 절규처럼 그의 목소리는 오늘도 차분히 뉴질랜드를 찾은 한국인을 향해 울려 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방문객의 귀에 묻어 귀국할 것이 분명하다.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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