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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의 개(犬)·박쥐(蝙蝠)·모기(蚊)·파리(蠅)[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1). 강아지(狗兒) / 정황(丁熿) 1556년 고현동.
정황선생은 거제도의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개를 키웠다. 거제 개는 주인에게 충직하고 때론 바보스럽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왜구의 침략이 잦았던 거제도는 해안방위의 절대적 필요성에 의해 수군 경계를 맡은 군견(軍犬, 水軍犬)이 일찍부터 필요했는데 영리한 거제개가 이를 도맡았다. 또한 거제도는 고려시대부터 목장지였다. 소나 말의 몰이꾼의 역할과 함께 이를 지키는 임무는 거제개가 맡았다 전한다. 다음 한시는 몇 천리 떨어진 고향집에 가서 안부편지를 전해주고 온 육기(陸機)의 애견(愛犬) ‘황이(黃耳)’를 떠올리면서 집 떠나 돌아오지 않는 개를 정황 선생은 기다린다.

狗兒畜已見生兒 강아지를 길러 새끼가 태어났는데
主是知從犬是知 주인을 따를 것을 알았고 개도 알았다.
不願韓盧逐狡塊 한로가 흙덩이를 쫓기를 원하지 않았었지.
只憐黃耳報書遲 다만 어여쁜 황이의 답장이 더딜 뿐.

[주1] 한로(韓盧) : 전국시대 韓나라에서 산출되는 좋은 검은색 사냥개. 한로축괴 사자교인(韓盧逐塊 獅子咬人)란 "사람이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문다" 는 말이다.
[주2] 견토지쟁(犬兔之爭) : 개가 토끼를 쫓아 산을 돌고 돌다가 둘이다 지쳐 죽었으므로 농부가 주워 갔다는 말. 제3자가 이익을 봄. 漁夫之利, 蚌鷸之爭, 鷸蚌之爭.
[주3] 황이(黃耳) : 진(晋) 육기(陸機)의 애견(愛犬) 이름. 대통[竹筩]에 넣은 주인의 편지를 목에 걸고 몇 천리를 뛰어 육기의 고향 오도(吳都)에 전하고, 답장을 받아 가지고 낙양(洛陽)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한다.

◯ 고려시대 학자 이제현(李齊賢)은 익재난고 구잠(狗箴)편에서 개(犬)를 이렇게 묘사했다. “꼬리로는 아첨을 부리고 혀(舌)로는 핥아 빤다. 싸우거나 장난치지 말라, 울타리 망가진다”[而尾之媚 而舌之䑛 毋鬪毋戲 惟藩之毁]. 이제현(李齊賢)의 제자 이색(李穡)선생은 말 타고 사냥하러 가는 사냥개의 모습을 보고, 7언 절구 한편의 한시를 전한다. “평산에 눈 그치고 사방이 온통 새하얀 빛, 사냥개 끌고 몇 사람이 말을 타고 오는구나. 어디에서 새벽부터 교활한 토끼를 쫓으려나.. 많이 잡기 내기하며 얼근히 취해서 돌아오리.”[平山雪霽白皚皚 牽狗時看數騎來 何處凌晨逐狡兔 競誇多獲半酣廻]

   
 
2). 풍구를 떠올리며(憶豊狗) / 정황(丁熿) 고현동 1550년대.
自歸豊狗我心同 스스로 풍구가 내 마음과 같이 돌아온다면
豊狗爾今侍我公 풍구 너를 이제 받들어 모시리라.
我公憐爾非憐爾 우리 공이 너를 가련히 여기는지 아닌지..
歸自孤臣碧海東 돌아가고픈 푸른 바다 동쪽의 외로운 신하.

◯ 털이 풍성한 삽살개의 일종인 풍구(豊狗)는 옛 거제도 일대에 살았던 토종개인데, 이 외에도 날씬하고 털이 별로 없는 사냥개도 있었다한다. 예로부터 거제에서 전해오는 말, “삽사리가 귀신을 쫓는다” 그 만큼 영리하고 사나웠다고 전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거제 개이지만 약 460년 전의 정황선생도 외로운 귀양살이 10년째, 집 떠나간 풍구를 몹시도 그리워한다.

   
 
◯ 하지홍 교수의 ‘거제개 이야기‘에 따르면, “1971년 거제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순수 혈통이 상당히 유지되어 왔다는 거제개는, 우수한 사냥개로서 사냥꾼들 사이에서 꽤 알려 졌었다고 한다. 다른 사냥개들과는 달리 가축과 야생 짐승에 대한 분별력이 뛰어 날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온순하지만 사냥에 나설 때는 목표물을 끝까지 추적하는 지구력이 뛰어나며 민첩성과 용맹성도 진돗개나 풍산개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외지 개와의 교잡에 의해 거의 잡종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둔덕, 남부면 일부 지역에 옛 모습을 지닌 거제개가 극소수 남아 있었다고 한다.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몇몇 거제 현지인들에 의해 거제견 보존 육성회가 결성되어 거제견 탐색 작업이 추진된 바 있으나 지속적인 보존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였는데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3). 박쥐(蝙蝠) / 정황(丁熿). 거제시 계룡산 아래 고현동 배소에서.. 거제의 특이한 박쥐로는 큰귀박쥐와 안주애기박쥐가 있다.
莊形白日中 한낮에는 장엄한 모습으로 있지만
廁鼠畏人同 측간의 쥐처럼 사람을 두려워한다.
舒翼空山夜 빈산의 밤에만 날개를 펴고
聊乘一陳風 한바탕 부는 바람을 타고 다니네.

[주1] 측서(廁鼠) : 뒷간의 쥐란 뜻으로, 지위를 얻지 못한 사람을 조롱(嘲弄)하여 이르는 말.
[주2] 일진광풍(一陳狂風) : 한바탕 부는 사나운 바람.

◯ 조선초기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徐居正,1420~1488년)은 박쥐를 이렇게 표현했다. “몸은 쥐이고 날개는 새이거니 왜 그리 형질이 괴기하여 형용키 어려운고 낮엔 가만있다 밤이면 움직이니 왜 그리 종적이 어둡고도 희미한고? 또 아침 햇살을 보고는 들어가 숨었다가 밤만 되면 만족해하는 걸 어디에 쓰리요. 고기는 제기에 오르지 못함이여~ 맛이 어찌 살진 고기에 합치하랴 장식에 쓰일 만한 깃털도 없음이여~ 어찌 발톱이나 엄니인들 기용에 알맞으랴만, 천지는 만물을 빠짐없이 포용하여 너 같은 미물도 살아남게 해주었도다. 뭇 동물을 피해서 도망가 숨음이여~ 큰 집을 찾아서 가만히 의탁하나니 이 형적의 궤괴하고도 비밀함이여 소인과 동류되기를 달게 여기도다.” [身鼠而翼鳥兮 何形質之怪奇而難狀也 不晝而卽夜兮 何蹤跡之暗昧而惝恍也 又何用夫見朝陽而乃伏兮 隨大陰而自得也哉 肉不登於俎豆兮 味豈合於肥臄 無羽毛藻飾之可用兮 豈爪牙器用之可適也哉 儘天地之包容兮 於汝微物而見貸也] [避群動而逃藏兮 尋廈屋而潛依 曰玆形跡之詭祕兮 甘與小人而同歸]

조선후기 실학자 홍만선(洪萬選,1643~1715년)은 “박쥐 똥을 야명사(夜明砂)라 하고, 박쥐를 복익(伏翼) 또는 편복(蝙蝠)”이라고 그의 저서 <산림경제(山林經濟)>에다 적고 있다. “그 똥은 눈을 밝게 하고 내외장(內外障)을 치료한다. 그리고 볶아서 먹으면 누력(瘻癧 연주창 등속의 부스럼)을 치료할 수 있다. 박쥐가 유석굴(乳石窟 석회동굴) 속에 살면서 그 정즙(精汁 깨끗한 즙)을 먹는다. 빛깔이 하얗고 비둘기와 까치처럼 큰 것은 모두 1천세를 산다. 이것이 선경(仙經)에 이른바 육지(肉芝)라는 것이다. 그것을 먹으면 사람이 살찌고 건장해지며 오래 살 수 있다. 지금은 편복이 고옥(古屋)에서 많이 산다. 그중에 빛깔이 하얗고 큰 것은 대개 드물게 있는데, 석회동굴 속에서 나오는 것을 헤아려 보면 이와 같다.”《증류본초》.

   
 
4). 모기(蚊). / 용재(容齋) 이행(李荇) 1506년 상문동.
조승모문(朝蠅暮蚊)이란? 아침에는 파리, 저녁에는 모기가 떼를 이룬다는 뜻으로, 소인배(小人輩)가 발호함을 이르는 말이다. 1506년 상문동 유배객 이행(李荇)선생은 더운 여름날 파리와 모기떼를 보고, 잠을 설치게 하는 모기와 파리의 형태가, 현재 조정에서 권력을 잡은 소인배와 다름없다하시며, 난초와 혜초를 군자와 현인에 비유해 혹여라도 한번 더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며, 봉황이 소인배들을 몰아내어 "청명(淸明)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속내를 표현한 작품이다.

七月猶蒸溽 칠월에도 찌는 듯이 무더워
群蚊日暮廻 모기 떼가 날 저물면 찾아든다.
噆膚攢利棘 날카로운 가시처럼 살갗을 물고
亂耳殷輕雷 가벼운 우레인 양 귓전을 맴돈다.
欲起燈還盡 일어나려니 등잔불 외려 다하고
無眠枕屢推 잠이 없어 목침을 자주 밀치노라
嚴霜雖不遠 된서리 내릴 때가 멀지 않지만
蘭蕙恐先摧 난초 혜초 먼저 꺾일까 걱정일세.

[주] 난초 혜초 먼저 꺾일까 : 일반적으로 재사(才士)나 재녀(才女)의 요절을 뜻한다. 여기서는 모기를 소인에, 난초와 지초를 군자에 비겼다.

5). 파리(蠅). / 용재(容齋) 이행(李荇) 1506년 상문동.
造物偏多忌 조물주는 몹시 시기심이 많나 봐
翻令惡類滋 되레 이런 악한 무리 번성케 하다니
赤頭徵宋賦 적두는 송나라 부에서 징험했고
止棘譬周詩 지극은 주나라 시에서 비유하였지
誰賴蒼刀逐 누가 푸른 칼 휘둘러 쫓아내리요
空嗟白玉疵 속절없이 백옥 흠 끼친다 탄식한다.
願投天地外 바라보니 천지 밖으로 던져 버려
更見鳳來儀 봉황이 와 춤추는 것 다시 보았으면

[주1] 적두(赤頭) :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쇠파리를 소인에 비겨 미워한다는 뜻을 담은 〈증창승부(憎蒼蠅賦)〉에, “더욱 꺼림칙한 놈은 붉은 머리[赤頭]를 한 놈으로, 경적(景迹)이라 부르는데, 이놈이 한번 더럽혀 놓은 음식은 사람들이 아무도 먹을 수 없다.” 하였다.
[주2] 지극(止棘) : 《시경》 소아(小雅) 청승(靑蠅)에, “앵앵거리는 파리여, 가시나무에 앉아 있도다. 참소하는 사람이 끝없어, 사국을 교란시키도다.[營營靑蠅 止于棘 讒人罔極 交亂四國]” 하여, 파리를 소인들에 비겼다.
[주3] 봉황이 와 춤추다(鳳來儀) : 소인배들을 몰아내어 청명(淸明)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서경》 익직(益稷)에 “소소(簫韶)를 아홉 번 연주하자 봉황이 와서 춤을 춘다.[簫韶九成 鳳凰來儀]” 하였다. 소소는 순(舜) 임금의 음악이다.

◯ 당송 8대가의 한명인 한퇴지(韓退之) 한유는 뛰어난 산문이 일품이지만 시인으로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잡시(雜詩)에서 풍자하길, "파리와 모기가 귀찮게 굴어도 쫓지 않고 두들기지 않겠다고 했고, 때가 되면 단숨에 쓸려 버릴 것"이라고 했다. 한퇴지의 시에서 유래하여 '조승모문(朝蠅暮蚊)'은 소인배를 가리키는 성어가 되었다. 위 이행의 시 속에서도 은근히 한퇴지(韓退之)의 심정에 동조하며 유배지 거제도에서 다시 우뚝 일어나, 조정에 복귀하여 뜻한 바를 펼치고 싶은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 이익을 취하기에 급급한 소인배로 인해 고충을 겪는 심정은 누구나 비슷했으리라.
 
6) 거제도 모기(蚊) 역사기록.
요즈음은 거제도에 방역이 잘되고 있어서인지 모기가 별로 없어 다행이다. 그러나 거제도의 산과 들, 바닷가 모기는 지금도 그 용모와 크기가 대단하다. 모기는 약 2,500종(種)이 있고, 암컷의 흡혈(吸血) 습성 때문에 공중위생상 매우 중요하며, 황열병·말라리아·사상충증(症)·뎅기열(熱) 같은 심각한 질병을 옮긴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을 몹시 괴롭히는 해로운 곤충이다.

우리 거제도 역사기록 中, 모기에 관한 글이 고려시대부터 몇 편 전해오는데, 다른 지역보다 유달리 많다. 예로부터 육지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거제도 모기가 무섭고 독하긴 독했던 모양이다.

① 옛날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1168~1241년)가 이사관(李史館)이 거제로 부임하는 길에서 전송하는 서(序)에, "내 본래 들으니, 거제는 남방 끝에 있는데 물 가운데에 집들이 있고, 사방은 모두 호호 망망한 큰 바다이다. 독한 안개가 찌는 듯하고 회오리바람이 그치지 않으며, 여름철이면 벌보다 큰 모기가 떼로 몰려들어서 사람을 깨무는데 참으로 무섭다고 한다." 하였다.  

② 그리고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내용이 있다. 1504년~1505년 교리 이장곤이 고현동 바닷가 근처에서 유배 살 때, 이교리가 마침 볼에 앉은 모기를 부채 안 쥔 왼손으로 때리면서 “지독하다.”하니, 집주인 어부가 “흉악하지요. 여기 모기가 섬모기라도 고성(固城) 모기와 혼인을 아니한다오.”했다. "예전에 말(馬)이 달리 돌기 시작하여 거제현령이 고성 가서 있었던 까닭에 고성 사람들이 지금까지 거제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일어서 나갔다". 이후 복권되어 벼슬살 때 이장곤은 "거제 모기가 하도 무섭고 독하여, 고성모기와 짝짓기도 안한다"고 했다.  

③ 정황(丁熿,1548년~1560년 거제유배)선생의 유헌집(游軒集)에 실린 계룡산시(鷄龍山詩) 내용 중에, 거제도에는 "찌는 무더위와 저지대 습기가 많아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떼를 지어 날아다녀 손뼉을 쳐도 쓸데없고 비린내와 노린내가 뒤따라 풍긴다"[蒸暑卑濕憎蚊蚋 羣飛拍空逐腥羶]고 적고 있다.  

④ 1506년 상문동 유배객 이행(李荇)선생의 '모기(蚊)'라는 시편에서 말하길, "칠월(음력)에도 찌는 듯이 무더워, 모기떼가 날 저물면 찾아든다. 날카로운 가시처럼 살갗을 물고 가벼운 우레인 양 귓전을 맴돈다"[七月猶蒸溽 群蚊日暮廻 噆膚攢利棘 亂耳殷輕雷]고 하니, 예로부터 거제도 모기가 독하긴 독했던 모양이다.
 
◯ 조선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1741년~1793년) 선생은 모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기의 모양은 날개와 다리는 가늘고 약하며 주둥이는 코끼리 코처럼 길어서 앉아 있을 때는 반드시 주둥이로 버티고 날개는 들고 다리는 뒤로 빼서 처음에는 ‘주둥이가 꽃모양 같다[花喙]’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음력 8~9월이 되면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 벽에 앉아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하나하나의 주둥이 끝이 더부룩한 것이 마치 연꽃 같았다. 이에 비로소 꽃 같은 주둥이[花喙]라 한 말이 잘된 비유임을 알았다. 그 후 양승암(楊升菴, 楊愼)의 《단연록(丹鉛錄)》을 보니, “안개가 피어날 때면 게와 자라가 살이 빠지고, 이슬이 내릴 때면 모기 주둥이가 터진다.” 한 말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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