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 땀내, 눈물내... 시인 문병란은 젓갈시장에서 풍겨오는 짠 내를 그렇게 표현했다.

거제도 동북단에 있는 외포는 기장과 더불어 국내에서 손꼽히는 멸치젓갈 생산지 가운데 하나다. 거가대교 대계IC에서 나와 외포를 찾아가는 길목에는 포구와 멀리 떨어진 길의 초입부터 멸치젓갈 상회 간판이 지방도로를 따라 이어져 멸치의 고장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젓갈도 산지에 따라 조금씩 맛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외포 멸치젓갈은 특히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외포항이 이처럼 멸치젓갈로 명성을 얻고 품질 면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외포항은 멸치산지이기도 하지만 젓갈의 재료가 되는 싱싱한 각종 해물들이 들어오고 또 한편으로는 해산물을 발효시키는데 필요한 소금을 100% 천일염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도 젓갈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대구축제준비가 한창인 외포 항을 찾았다. 외포항의 바다 물빛은 꼭 찍어 말할 수가 없다. 수평선이 아른거리는 먼 바다와 어선이 정박한 가까운 바다 빛이 달랐고 흐르는 구름사이로 비친 햇빛에 따라 해안 섬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의해서도 시시각각 달라졌다.

등대 쪽으로 늘어선 횟집들을 지나 수협공판장에 들어서니 장을 보기엔 이른 시각인지 안은 한가롭다. 건조를 위해 묶어 장대에 걸어놓은 풀치(갈치새끼)와 배를 쫙 벌린 채 그물위에서 해풍을 쐬는 대구와 물메기 등은 전형적인 어촌풍경을 연출했다.

낯선 어구장비에 눈을 빼앗겼지만 코를 자극하는 풍미가 있었다. 비릿하면서 짭짜름한, 그러나 김장철마다 각 가정에서 다려내던 그 익숙한 냄새를 쫓아 발길을 옮겼다.

거제시 장목면 외포 항에 들어서면 겨울진객인 대구 말고도 눈에 띄는 게 젓갈 직거래장터. 넓은 주차장을 중심으로 10여 곳의 젓갈가게가 있다.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주변을 비롯한 장목면 전체에는 50여 곳의 젓갈전문 가게가 있으니 편리한 유통을 위해 외포항 입구에 젓갈 직거래장터를 설치했다.

맛 좋기로 소문난 외포 멸치젓갈은 짠 내가 물씬 풍기면서도 곰삭은 생선특유의 단백함과 끝 맛이 달기로 유명해 매년 11월~12월에 접어들면 멸치젓갈을 구입하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판매하는 젓갈류만 해도 멸치액젓, 까나리젓, 새우젓 등 김장용부터 대구 알젓, 아가미젓, 멍게젓, 오징어젓, 조개젓 등 반찬용 까지 10가지가 넘는다.  김장철인 요즘은 가게마다 약 200여 명의 외지 손님들이 시식 후 멸치젓갈을 구매해 가고 있다.

상인 김복순(60)씨는 “외포멸치젓갈은 갓 잡은 멸치를 즉석에서 소금에 절여 자연 숙성시키기 때문에 그 맛이 깊고 영양이 풍부해 진다”며 잘 삭은 젓갈 한 점을 떼어 먹어 보란다.

무턱대고 받아먹다 몸이 자지러지지만 끝은 은은한 단맛이 들었다. 점심전이라 입안 가득 침이 고이며 시장기가 찾아왔다. 하얀 쌀밥에 요놈의 젓갈 한 점 얹어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을 듯 했다.

김장용 젓갈을 구입하러온 김선화(52.부산시 남구 대연동)씨는 “젓갈이 맛있어야 김치도 맛있다” 며 “김장은 겨울준비에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인데 아무 젓갈이나 살 수 없어 수년째 외포 멸치젓갈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럼 왜 외포멸치젓갈이 맛이 좋을까? 상인들은 한결 같이 소금이 맛있기 때문이란다. 한 상인은 “솔직히 젓갈 담는 생선은 우리나라의 어획량감소로 중국산을 안 쓰더라도 소금만은 해남에서 나는 소금을 쓰고 있다”고 귀띔한다.

일운면 망치마을도 멸치액젓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지난 1998년 마을주민 김권수(70)씨가 실험삼아 멸치액젓을 5년 동안 숙성시켰다. 그런데 숙성결과 맛과 품질이 훨씬 뛰어난 멸치액젓과 국내최초의 특허상품인 멸치간장이 탄생 된 것. 이에 따라 토굴이 아닌 텃밭에서 전문적으로 멸치액젓을 숙성시키기 시작했다. 현재 망치마을회관 뒷동산에는 멸치젓을 저장하는 저온창고만 백여 평에 이를 정도로 향토전문기업(거제향기 055-681-3350)으로 성장했다.

거제향기에서 생산되는 멸치액젓은 노을빛을 닮은 발그레한 색상이 보기 좋고 감칠맛도 뛰어나다. 이 같은 맛의 비결에 대해 김씨는 “멸치젓국에 완전용해되는 봄 소금으로 간을 맞추며 멸치젓 숙성에 가장 적합한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장철을 앞두고 포구나들이를 겸해 산지에서 젓갈을 구입하려고 찾아온 여행객들이 포구 곳곳에서 흥정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상회마다 투명유리로 뒤덮힌 냉장실에 멸치젓 외에도 대구, 새우, 멍게, 오징어, 아가미 젓 등 각양각색의 젓갈을 전시해놓고 판매하고 있다.

그중에서 김장용으로 가장 인기 있는 젓갈은 봄에 잡힌 멸치로 담근 멸치액젓. 품질별로는 10Kg들이 한통이 3만원에서 3만5000 원에 거래되고 있다. 멸치젓갈도 많이 찾는데 35kg들이 한 통에 4만5000 원 정도 한다. 대구젓갈 중에서도 귀한손님을 대접할 때 반찬용으로 쓰이는 알젓은 1kg에 1만원을 호가한다. 젓갈상회마다 천일염도 함께 판매하며 20kg들이 한포대가 3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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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젓갈 이야기(거제수협 제공, 682-4170)
젓갈로 담그는 멸치는 8cm내외의 중형멸치가 좋다고 한다. 중형멸치가 육질이 충실하고 신선도가 뛰어나다. 멸치젓이 들어있는 각종 성분 중에서 아미노산은 젓갈특유의 맛과 향기를 갖게 하고 품질과 영양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젓갈로 담가진 원료는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유리마미노산의 함량이 증가한다. 특히 2~3개월 정도 숙성한 멸치젓의 유리암노산은 원료멸치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멸치젓 특유의 감칠맛은 유리아미노산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성분으로 알려진 핵산과 어울림으로써 유지되는 것 이라한다. 이렇듯 영양은 물론이고 맛과 향에서도 가장 손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효식품왕국인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품이다.

멸치액젓은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짠맛을 피하려는 요즘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나왔다. 흔히 강원도. 제주도. 경상도를 멸치젓 문화권이라 하는데 멸치액젓의 개발로 이런구분은 의미가 별로 없어졌다.

*제8회대구수산물축제(문의:거제시 관광과, 639-3000)
지난해 열리지 못했던 대구축제가 20~21양일간 장목면 외포항 일원에서 열린다.

▲ 글·사진: 손영민

‘속까지 확 풀어주는 거제대구. 억수로 재미있는 외포바다 체험’ 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축제는 공식행사, 공연행사, 먹거리 행사, 참여행사, 체험행사, 특별 이벤트 등으로 나눠 진행되며 참가자들을 위한 대형주차장도 마련된다.

주요행사로는 풍어 및 만선기원 희망의 합창, 영상물 상영, 개막식, 대구떡국나누기, 맨손으로 대구 잡아라, 직장인 밴드 페스티발, 중국 기예단 서커스, 초청가수 공연, 대구수산물 현장경매, 어린이 페달보트 체험, 불꽃축제 등이 열린다.

글·사진: 손영민 /‘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여행’ 저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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