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붓을 놓은 적이 없었다. 세월의 무게도 필치를 꺾지 못했다. 아호(雅號)에서 비롯된 ‘국정체’는 한국을 넘어 중국, 일본, 대만 등 한자문화권의 여러 나라에서 호평 받았다. 새해에도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국정(菊井) 김현봉(金顯奉 · 97 · 장목 출신) 선생을 고향 장목면 자택에서 만났다.

“아무래도 고령이다 보니 제약이 있지요. 예전만큼은 아니라도 글을 계속 쓰고 있어요. 관련 단체들로부터 연락도 자주 오고.. 지난 연말부터는 연하장을 써주느라 바빴지요.”

95세까진 바깥 출타가 빈번했는데 96세를 넘기고 나서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그래도 끊임 없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단다. 눈 수술로 인해 입원 치료를 했을 때도 그의 손가락은 허공에서 필치를 번득였다. 처음엔 의아해 했던 주변 환자들도 서예가라는 사실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교육자로서 43년 동안 재직(장목초 교장 정년퇴임)했던 그는 7세때부터 붓을 잡았다고 회고한다. 만 90년의 연륜을 붓에 녹여낸 셈이다.

국정 김현봉 선생이 국제적인 ‘서예 대가’로 명성이 높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지난 98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직접 받았다. KBS 진품명품 서화감정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 “깊고 맑아서 봉황이 날으는 듯, 범이 뛰는 듯 하다”며 극찬했고, 중국 하남성 정주시의 세계적 관광지이자 서예 대가들의 작품만 엄선해 비를 세워놓은 ‘황하비림’에도 그의 작품이 새겨졌다.

‘국제중국해협양안 저명서화가 선회전’에서도 대작으로 평가돼 ‘국제서화예술명인’으로 선정됐었다. 서예사에 큰 획을 그은걸로 평가받는 이유다. 지난해는 서울 인사동에서 그의 작품들로만 구성된 전시가 열려 화제를 모았고, 새해에도 7일부터 열리고 있는 ‘남북코리아미술대전’에 작품이 올려졌다. 북한과 남한에서 명인 반열에 오른 작가 120명만이 초청된 전시다.

시력과 청력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붓사위는 경쾌하다. 마치 초절정 무림고수가 초식을 펼치듯 말이다. 고희를 넘겼을 때부터 글은 재주로 쓰는 게 아니라 삶의 경륜과 덕으로 쓰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묵향(墨香)이 기수(期壽 · 100세)를 넘겨서도 계속되길 소망한다.  
<새거제신문 전의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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