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거나 힘 빠지는 날이 있다. 이때 장터로 달려 가보자. 살 물건이 없어도 상관 없다. 주거니 받거니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어도 좋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구경이면 어떠랴. 돌아 올 땐 가슴가득 삶의 의욕이 샘솟아 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살아 있음. 이것이 장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세상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인심, 동부면이나 둔덕면, 사등면, 통영에서 찾아오는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 하나씩 보따리 손에 들고 아니면 머리에 이고 다니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사라져도 변하지 않는 그 모습 속에서 거제장터는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장날에 찾아가 보면 보리쌀, 좁쌀, 콩과 같은 곡물류들, 가자미, 게 같은 수산물, 온갖 잡화류, 뻥튀기 아저씨, 순대 국밥집 아주머니, 흥정하는 사람들의 괴성들, 산골이나 농촌에서 직접 재배한 나물과 과일 등을 볼 때 달라지지 않는 장터 분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바로 옆 건물도 몇 달 만에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올라가는 마당이다. 그래도 굳이 변함없는 무언가를 하나 꼽으라면 거제5일장을 얘기하고 싶다. 오래전 엄마 손을 잡고 구경하던 풍경과 사춘기 때 바라본 장의 모습이 최근의 모습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변한 게 있다면 이제 엄마 손에 메달린 꼬맹이가 아닌 엄마와 팔짱끼고 나란히 걷는 아가씨가 된 모습 정도.

필자는 2년 전, ‘거제시민의 날’ 축제가 열리던 날에 거제전통장터 구경을 간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거제 장을 찾았다. 오랜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기억속의 노점상들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거제시 거제면에서 매번 6번(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 열리는 거제 민속 5일장은 거제에서는 단연 최대 규모의 5일장이며 역사만 해도 100년이 넘는다. 거제라는 지명은 ‘크고 아름다운 섬’ 또는 ‘환상의 섬’ 등으로 불린다.

거제5일장은 기성관이 있는 거제 면사무소를 기점으로 복개천을 따라 들어선다. 또한 시외버스 정류장과 거제우체국 방향의 외곽도로에 난 골목을 따라서도 노점상들이 줄짓는데 판매하는 물건들은 매우 다양하다.

안타깝게도 1990년을 마지막으로 가축시장이 폐쇄됐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채소나 과일들부터 수산물, 농기구, 생활 잡화까지 없는 게 없다. 저렴한 가격에 넉살좋은 상인들의 덕담 한마디가 덤으로 딸려오니 기분 좋은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

요즘은 봄날이라 가판대마다 잘 익은 채소나 과일이 가득하다. 끝물 맞은 한라봉과 딸기, 복숭아도 한쪽에 보인다. 과일전을 조금 지나 채소전에는 취나물, 두릅, 냉이, 달래, 쑥 등 각종 봄나물이 알싸한 향을 뽐내고 있다. 콩나물이나 표고버섯이라도 한 봉지 사면 비닐봉지가 터질 정도로 채워 주시는 할머니의 인심덕에 시장에는 훈기가 돈다. 곡식을 파는 미전의 방앗간 주위에는 직접 짜낸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하고 앞마당에는 쌀, 수수, 콩, 조등의 곡류가 여럿이다. 근처에서 볶아지는 땅콩과 아몬드에서 나는 고소함도 한 몫 거든다.

거제5일장은 특히 어전이 꽤 크게 자리하는데 가까운 항에서 잡은 오징어를 비롯한 싱싱한 해물들이 가득하다. 오징어, 문어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퍽 재미있는 볼거리다. 장 구경을 하다보면 무조건 배가 고프다. 설령 장 구경을 시작하기 전 든든하게 먹고 왔다 해도 돌아다니다 보면 시후각적 자극에 공격당해 항복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맘먹으면 본격적인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된다. 다양한 먹거리 때문이다.

타지에서 거제의 작은 동네까지 여행 온 당신에게 추천할만한 음식인 고로쇠 막걸리와 해물파전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다. 그러나 언제나 욕심에 두 가지 모두 주문해 먹곤 한다. 혹시 일행이 여럿이라면 얼큰한 메밀묵 한 그릇을 추가하는 것도 괜찮겠다. 국수를 좋아 한다면 해물 칼국수를 권하는 바다. 5천원도 하지 않는 가격에 조개와 홍합, 그리고 냉이가 아낌없이 들어 있어 국물이 얼큰하다. 양이 많은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거니와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에는 몇 집 건너에 있는 왕만두와 찹쌀 도넛으로 결코 단출하지 않은 요리 마무리!

시장 곳곳에서 팔고 있는 어묵 바와 국화빵, 뻥튀기는 걸어 다니면서 간단히 먹기에도 좋아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4~5월 즈음에는 닭 강정이나 족발을 포함해서 하늘이 보이는 기성관 잔디에서 자리 잡고 먹어도 꽤 괜찮은 나들이가 될 수 있다.

봄날이라서인지 확실히 겨울보다 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인파 사이로 생선 파는 아저씨가 한손에 가자미를 들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가자미가 “한반도 반만 하다”는 아저씨의 과장된 표현에 장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묻어나는 듯하다. 그 뒤로는 한 아주머니가 “채소 값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며 볼멘소리 치고는 꽤 경쾌한 개그를 구사한다. 덕분에 지나가던 주위의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다.

모자를 파는 좌판에서는 할머니들이 모자를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다들 한손에 거울을 들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모자가 잘 어울리는지 살피느라 바쁘다. 이것저것 써 보는 다소 상기된 얼굴들이 한껏 즐거워 보인다. 이렇게 거제 장에는 사고파는 물건 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여행정보
*주변 관광지 (자료제공: 거제시 관광과 639-4165)
-거제현 관아(국가 지정 문화제 제484호)-
거제현의 관아는 배산 구조와 안산, 관아 배치와 진입로 구조가 시각적으로 뚜렷한 축을 형성하여 한양의 광화문-경복궁-백악산의 축과 매우 흡사한 시각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현존하는 관아 건물인 기성관은 거제현의 객사로 중심적 역할을 하던 곳으로 단청이 화려하고 웅대한 마루구조 건물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비록 동헌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면사무소가 들어서 있지만 부속건물이었던 질청이 남아있고 당시 고지도 등의 관련자료가 많아 당시 읍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유적이다.

▲ 손영민 /‘거제의 삶, 꿈’ 저자, 칼럼니스트

따라서 거제 읍치의 관아의 거리는 조선후기 읍치의 전형적인 경관과 구조를 보여 줄 뿐 아니라 주요건물의 객사와 부속건물이 남아 있어 역사적. 경관 적으로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고 인정되어 2007년 7월30일자로 국가지정문화제(사적)로 지정 되었다.

-거제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206호)-
1664년 조선 18대 현종 5년에 고현에서 거제로 옮겨진 것으로 지방의 공립교육기관이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 서문. 일주문. 명륜당, 고자실, 동. 서재 풍화루가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 성현 4인과 신라, 고려 성현 4인등을 추앙 매년 석전대제를 올린다.

글 및 사진: 손영민 /‘거제의 삶, 꿈’ 저자, 칼럼니스트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