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장사씨름대회가 열리는 장충체육관을 찾았다. 장충체육관은 1963년 처음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체육관으로 1983년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가 열렸던 곳으로 2012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공사에 들어가 3년 만에 새 단장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외관이다. 기존의 장충체육관 돔 지붕을 살리면서도 부채춤과 강강수월래, 탈춤에서 모티브를 따온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서 역동성을 살렸다. 체육관 내부공간을 넓히고 관람석 수는 줄여서 한층 편안한 관람환경을 조성했다.

씨름경기를 보러왔다가 자연과 더불어 몸과 마음의 노곤함을 풀어줄만한 곳,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장충단공원이 떠올랐다. 장충체육관 맞은편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돌로 만들어진 수표교는 공원의 운치를 더한다. 공원 안쪽으로는 통나무계단이 있어 물가로 내려갈 수 있다. 편편한 바위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과 해맑은 표정으로 뜀박질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굳어져 있던 미간의 주름이 살살 펴진다.

공원 안쪽의 운동장에는 베트민턴를 칠 수 있는 네트가 있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 아래서 여유롭게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도 눈에 띈다. 그 유명한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라는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을 당시 우리 부모님 세대들에게 이곳은 분명 낭만의 데이트 코스였을 것이다.

장충단공원은 지금 도심의 휴식공간이 되었지만 무성한 나무의 세월만큼이나 우여곡절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처음에 꽤 넓었던 공원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유센터, 중앙공무원교육장, 재향군인회,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등에 터를 내주면서 조금씩 줄어들어 아쉽게도 장충단의 옛 모습은 사라졌다. 씨름경기장의 활기찬 기운과는 다르게 고요함이 감도는 비 앞에서 잠시 숙연함과 씁쓸한 마음이 교차한다.

장충동에서 현대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장충체육관과 장충단공원만은 아니다. 장충동 족발골목도 우리네 현대사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때 남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이 생계를 위해 팔기 시작한 음식이 바로 족발이다.

그러니까 이곳에 족발집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50여 년 전 장충체육관이 생기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이들을 상대로 선술집들도 생겨났다. 그중 평안도 출신 실향민들이 운영하는 선술집에서 궁리 끝에 개발한 것이 족발이란다. 황해도에서는 지금의 족발 비슷한 ‘돼지족조림’을 옛날부터 먹었다고 하니 족발의 기원은 확인 할 수 없지만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족발이 시작된 곳이 장충동이라는 사실은 확실한듯하다.

장충동족발골목에는 저마다 원조임을 주장하는 족발집 여러 곳이 성업 중이다.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 사이트에 원조로 소개된 ‘뚱뚱이 할머니집’의 전숙렬 할머니도 50여 년째 족발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족발집이 몰려있는 다른 집도 모두 수십 년 이상 족발 한 가지를 팔아온 집들이니 굳이 원조를 따질 것 없이 여러 군데 맛을 보고 자기 입맛에 맞는 곳을 찾아가도 좋을 듯싶다.

족발과 함께 장충동을 대표하는 평양냉면도 실향민의 음식이다. 다만 족발이 실향민이 만들어낸 음식이라면 냉면은 그들이 고향에서 즐기는 음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장충동의 평양면옥은 특히 실향민들이 더 좋아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소주 한잔에 냉면 한 그릇으로 실향의 아픔을 달래는 어르신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현대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충체육관과 장충단공원 그리고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실향민의 추억이 깃든 족발과 평양냉면까지 장충동산책은 옛 기억을 더듬으며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글․사진 손영민/ 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여행 저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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