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거제시위원회 하준명 상무위원. 박근혜 하야를 쓴 손 팻말을 들고 35일째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그를 1일 저녁 뉴스앤거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담대했다. 열정 이상의 강건한 역사의식과 소신으로 무장돼 있었다.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문장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거제시위원회 하준명(43) 상무위원. ‘최순실 게이트’ 출발선에서 그는 주저 없이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대우·삼성 출입문에서, 버스터미널에서, 거제시청 앞에서…. 새벽같이 일어났고 거리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시작된 1인 시위가 오늘로 35일째다. 이른바 ‘혼이 비정상’인 혼돈의 시대에서 개·돼지가 되지 않겠다는 그만의 포효(咆哮)는, 어느새 거제시민 대다수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다.

그는 본시 지금 같은 강골(强骨)이 아니었다. 시대적 소명도 몰랐다. 풍비박살 난 집안의 장남으로 살아야 하는 철저한 생활인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공사장 인부로, 우유 배달부로, 오징어 장사꾼 등으로 힘겹게 살았다. 집안형편상 중도포기(충남대 3년 중퇴) 했던 대학을 31살에 다시 진학(진주교대)했고 평생의 반려자(중곡초 교사)도 그때 만났다. 그는 그렇게 ‘저녁이 있는 삶’을 살던 우리시대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를 시대전선의 맨 앞줄로 불러낸 건 지난 4.13총선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고 자당 후보를 도우면서 중대한 의식 변화를 겪었다. 때마침 찾아온 조선경기 악화도 그의 의식변화에 기름을 부었다. 정의가 바로서지 못하면, 모든 게 무너진다는 걸 스스로 체득했다. 그는 그렇게 늦었지만 가장 빠르게, 시대적 소명 의식으로 무장한 강골로 변해 갔다. 최순실 게이트 발화지점에서 모두가 고개만 걋웃거릴 때, 그는 곧바로 ‘박근혜 하야’라는 손 팻말을 만들어 거리로 뛰쳐나갔다.

1일 저녁 거리시위를 접고 달려온 그를 뉴스앤거제 사무실에서 만났다. 듬직한 체구의 그는 35일간의 강행군에도 결코 지쳐 보이지 않았다. 추운데 괜찮으냐는 인사에 그는 “체력하나는 타고 났어요. 저보다도 대통령이 먼저 지칠걸요. 두고 보세요”라며 되받았다. 듣던 대로 강골이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인터뷰 말미쯤 그는 자신의 발언내용을 검증하고자 했다. 필자가 가로막았다. 그러면서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는 게 필자의 전문”이라고 일러줬다.

▲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거제집회 현장에서.

-말씨를 보니 거제가 고향이 아닌 것 같은데.
“백령도에서 태어났어요. 거제와는 극과 극이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전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쭉 살았어요. 거제에 온지는 한 10년쯤 됩니다.”

-1인 시위는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요. 행여 누군가가 등 떠밀지는 안았나요.
“제 덩치를 보세요. 누가 등 떠민다고 앞으로 꼬꾸라지나(웃음). 그런 건 없고요. 1인 시위는 10월28일부터 시작했습니다. JTBC가 최순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에 담긴 내용을 특종보도한지 이틀 뒤쯤 될 겁니다. 다음날 바로 손 팻말 제작에 들어갔고 익일 새벽부터 거리로 나갔으니까. 그러니깐 오늘로써 꼭 35일째입니다.”

-손 팻말 문구는 뭐였나요. 한 가지만 쓰는 건 아닌 것 같던데.
"팻말 문구는 지금까지 4~5번 바꿨어요. 광장의 촛불여론과 정치권의 행태를 봐 가면서 그때그때 바꿉니다. 맨 처음엔 ‘박근혜는 하야하라’였고, 두 번째가 ‘대우조선 말아먹은 새누리당 해체’였습니다. 최근엔 ‘박근혜 구속, 새누리당 해체’라고 적힌 팻말을 주로 사용합니다. 최근 촛불시위 현장을 보니 ‘박근혜 즉시 구속’이라는 팻말을 많이 사용하더군요. 그래서 시대조류(?)에 맞게 그 팻말을 새로 제작할까 합니다.”

-10월말부터 ‘박근혜 하야’라고 적힌 손 팻말을 들고 나홀로 거리시위에 나섰다는 건, 일반인이 쉽사리 실천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 시점에선 조금 앞서간 구호였기도 하고요. 나름대로의 명확한 시국진단과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같은데.
“그렇습니다. 오늘의 촛불은 지난 수십년간 누적돼 온 적폐들에 대한 민심의 폭발입니다. 친일과 독재, 기득권의 부패, 이런 누적된 적폐를 두고 국민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형국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민심폭발에 불을 댕긴 셈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적시해 놨습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며, 국가가 국민에 의해 지배되는 체제를 말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일제시대 친일로 부역한 자들이 해방이후 반공 이데올로기 우산아래 숨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부와 권력을 독점하며 기득권을 더 공고히 한 채, 수십년 간 이 나라를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부정과 부패는 만연했고, 나라는 위로부터 썩어 들어갔습니다. 그 종착점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있었습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해괴망측한 행태를 보십시오. 권력의 사유화, 비선득세에 따른 공조직 무력화, 권력을 이용한 기업 금품찬탈, 창조경제로 포장한 이권개입, 부정입학,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의약품에다 비아그라까지…. 정말이지 수치를 넘어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분노해야합니다. 썩은 환부는 과감히 도려내야합니다. 그 시작이 촛불입니다. 저는 그 촛불민심에 작은 힘 하나 보탤 뿐입니다.”

-1인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모르긴 해도 최근에는 제법 반향이 좋을 것 같은데.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썰렁했습니다. ‘박근혜 하야’라는 쎈 구호가 적힌 손 팻말을 들고 거리에 서 있으니. 대부분 ‘별 미친놈 다 보네’라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박근혜 하야’ 보다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여론의 초점이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엔 ‘일당 얼마를 받고 이러느냐’고 시비까지 걸어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같이 싸우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줬습니다.

그러다 한 1주일쯤 지나니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싸늘한 시선보다는 우호적이 반응이,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보다 격려해 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요즘엔 어떤 줄 아십니까. 지나가는 차에서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거나 경적을 울리고, 중·고등학생이 초콜릿이나 사탕을 건네줍니다. 학생들 하교시간엔 한 시간만 서 있어도 주머니가 과자로 가득해요. 가끔씩 엄마 손을 잡은 꼬맹이들이 음료수도 건넵니다. 어떤 조선소 노동자는 손이 시릴 것이라며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빼 줍니다. 행인들과 수시로 나누는 하이파이브는 기본이고요.”

-시위 초반에 겪었던 마찰이나 시비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한번은 버스터미널 인근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경찰이 오더군요. 그러면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뭐 잘 못한게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그런 것 없다. 1인시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했죠. 그러자 경찰이 '자신들도 잘 안다'며 '대신 도로로 내려가면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 인도에서만 하라'고 하더군요. 경찰은 돌아서면서 맞은편에 있는 한 사람을 살짝 가리키며 '저 사람이 신고한 것 같다'고 귀띔해 줬어요. 

앞서 언급했듯이 어떤 사람은 다짜고짜 '돈을 얼마받고 이러느냐'고 시비를 걸거나 '박근혜가 뭘 잘못했는데 하야를 외치느냐'고 따지기도 하지요. 같이 언쟁하면 싸움이 될 것 같아 웬만하면 참아 버립니다. 말이 통할 것 같으면 차분히 설명해주기도 하고요. 50대 중반이 넘어보이는 어떤 아주머니는 시위를 하는 제게 꼬치꼬치 따지다, 자식(대우조선에 근무한다고 함)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함께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고 설명했더니 결국 '맞는 말'이라며 제 생각에 동화돼 가기도 했지요."

-1인 시위는 참으로 고독한 투쟁입니다. 한 달 넘게 1인 시위를 하는 동안 같이 동참한 시민은 없었나요.
“있습니다. 삼성중공업 협력사에 다니는 오귀택(46)이라는 분이 있는데, 일과를 마치고 야근이 없을 경우 꼭 동참해줍니다. 당원들도 간간히 동참해 주고 있고요. 대우조선소 앞에서 할 때도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서 줍니다. 최근엔 어떤 분이 전화를 해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오기도 했어요.”

-생업도 돌봐야 할 텐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이 일에 매달리면 어떻게 하나요.
“새벽에는 조선소 앞에 나가고 아침 출근시간에는 시청 앞에 갑니다. 낮 시간대는 시내 주요 길목에 서서 1인 시위를 벌입니다. 그러다보니 생업은 사실상 전폐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집사람이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이 하야해야 저도 생업전선에 뛰어들 텐데…. ”

-정말 대통령이 하야 할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할 겁니까.
“계속할 겁니다. 날이 추워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체력하나는 타고났다 했지 않습니까. 1인 시위 사실을 당 홈페이지나 밴드에 종종 올리다보니 소문이 퍼져 전국 지자체별로 1인 시위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타지에서 직접 문의해 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고요. 욕심이 있다면 저의 1인 시위가 거제를 넘어 전국적으로 더 많이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시민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고 있지만,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은 다소 불편하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인 시위는 집회신고 없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입니다. 일부 시민들이 시비를 걸거나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정말이지 대략 난감입니다. 행여 저의 행동을 불편하게 보신 분들은, 나라의 미래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벌이는 작은 몸부림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덧붙여 최근 1인 시위 동참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제 전화(010-6439-1397)로 연락주시면 언제든 참여 가능합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하겠습니다.”

신기방 기자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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