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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용득] '세관의 숨결 스민 지심도'부산세관박물관장

하늘에서 바라보면 섬 모양이 한문 마음 心자와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섬, 지심도(只心島).

섬 여기저기에 동백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일명 동백섬으로도 불린다. 그러다보니 사시사철 푸름에 싸여있어 생동감이 넘쳐나는 섬이다. 여기에 천연기념물 팔색조마저 날아들어 긴 여름동안 동백 숲에서 노닐다가 무지개 색 자태를 뽐낼 때면 이곳은 자연생태의 보고지로서도 이름을 날린다. 이처럼 지심도는 원시림과 같은 이미지로 신비스럽고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장승포 앞 동남해상에 외롭게 떠 있다.

   
 
이 지심도가 세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1960년대 중반이다. 이 섬의 정상에 마산세관 장승포출장소 지심도감시초소를 설치하고 부터다. 당시는 대마도 이즈하라(嚴原)항에 거점을 둔 해상특공대 밀수가 막바지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다 대일활선어선에 의한 밀수까지 겹치면서 남해안일대는 그야말로 밀수황금지역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일본으로 출항할 때는 활어를 싣고 나간 대일수출선이 돌아올 적에는 전자제품을 비롯한 생필품을 실은 밀수선으로 둔갑하여 들어 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밀수선들의 항로를 추적하기 위해 지심도 정상에 반경 48Mile 레이다를 설치하고 24시간 이들 선박의 동태를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심도와 대마도 북단과의 거리는 불과 36Mile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이들 선박의 항로를 지정하게 되면 일반선박과 쉽게 판별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지심도감시초소가 가장 능력을 발휘할 때는 지난 1979년 5월 11일 마산세관 장승포출장소에 남해안감시선단이 설치되면서였다.
   
 레이다 감시상황판
남해안의 해상밀수를 근절하기 위해서 부산·마산·여수·목포세관에서 차출된 정예감시선 9척과 감시요원 40여명이 24시간 군대 내무반과 같은 합숙생활을 하면서 밀수와의 전쟁을 벌였다. 그 당시도 밀수기법도 예전의 특공대밀수 못지않게 대범하고 조직적이었다. 주로 귀국 때 야음을 틈타 항로를 이탈해 가면서 밀수품을 다른 선박에 옮겨 싣거나 무인도와 같은 섬에 양륙, 또는 바다 속에 투하하는 방식으로 밀수가 이뤄졌다.

이 같은 불법양륙 등을 단속하기 위해 입항지를 장승포·부산·목포·군산·제주·포항항으로 한정, 직항토록 함으로써 항로규제가 뒤따랐다. 특히 남해안 중심에 있는 매물도감시서와 장승포항 앞에 있는 지심도감시초소가 이들의 항로를 감시하는 방범초소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레이다를 통한 남해안의 밀수감시 전진기지역할을 해 왔던 감시초소들은 해상밀수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지난 1986년 12월에 지심도감시초소가 폐쇄된데 이어 그 다음해에 매물도감시서도 문을 닫았다. 지금은 매물도감시서는 관세국방군 시절의 세관밀수감시현장의 관세역사관으로 탈바꿈을 하였고, 반면에 지심도감시초소는 해군에 관리전환이 되어 활용되었다.
   
 지심도감시초소를 오르는 김재현관세청장과 수행원(79.2).
지심도는 멀리서 보면 섬모양이 마치 군함이 한 척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섬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1개 중대가 주둔하던 해군기지로 유명했다. 섬 정상으로 오르기 위해 선착장에서부터 폭 2미터 정도의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당시 일본군이 자리했던 막사, 포대(砲臺), 포진지, 탄약 창고 등이 섬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예전부터 지심도가 국방부소유지로서 해군이 관할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년 묵은 동백고목이 원시림처럼 보존이 되고 다양한 수목들로 숲을 이루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해 11월 말경 모처럼 부산세관역사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지심도를 찾았다. 마을주민들에 의하면 조선시대 현종 때 주민 15세대가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세대수는 더 이상 불어나지도 않고 그대로 15세대가 살고 있단다. 세월이 얼마나 변했는데 아직까지 그대로 있다니 정말 놀랍고 흥미로운 섬이다. 그렇지만 섬의 속살은 많이 변해 있었다.

한마디로 이제는 사람을 유혹하는 섬으로 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대의 흐름을 탈 줄 아는 섬이라고나 할까. 섬 여기저기로 숲 산책로가 산뜻하게 만들어져 있는데다 예전의 민가들은 대부분이 펜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장승포항에서 20분 정도면 유람선과 같은 여객선이 수시로 다니고 있는데다 선착장과 관광안내소도 갖추어져 있어 하나의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많은 외지사람들이 찾아들어 섬이 마치 잔치 집처럼 소란스럽기까지 한다. 앞으로는 지심도 전체가 거제시에 관리전환이 되어 관광지로서 개발이 된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된다.
   
 지심도감시초소에서 업무보고 장면(79.2).
그래서 이제는 한 번쯤 지심도를 찾아 낚시를 한다거나 아니면 지인들과 함께 주말휴가를 보내도 이상이 없을 것 같다. 여기에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바라보며 동백 숲길의 산책코스는 최고의 힐링 공간이 되겠기에 말이다. 그리고 1936년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일본인들이 구축해 놓은 포진지 등은 아픔의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네들의 욱일기가 펄럭였던 깃대에는 우리의 태극기가 걸려서 대한해협 푸른 바다를 향해 365일 휘날리고 있다. 역사는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임에는 틀림없다.(관우지 2016년 8월호)

 

 

 

 


 

박춘광  nngpa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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