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이슈
이기는 선거 "문상모가 가장 적임자다"
'조폭사주설' 터진 뒤 거제시장 출마 결심
[기획-거제시장 후보에게 듣는다 4]더불어민주당 문상모 예비후보

6.13지방선거가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화 됐다. 거제시장 출마를 선언한 인사도 제법 된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후보를 확정한 상태다. 조선경기 침체로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거제에서 차기 거제시정을 이끌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뉴스앤거제는 시장출마를 공식선언 한 유력 주자를 상대로 릴레이인터뷰를 벌여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그 네 번째 대상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상모 예비후보를 24일 오후 문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만나 두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눴다. 문 예비후보는 ‘이기는 선거를 할 때 누가 가장 적임자인지 시민들이 판단해 달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정리는 화자의 본심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그의 ‘입말’을 최대한 살렸다. /편집자

-사무실(고현~장평 삼거리 돛단배 조각공원 인근)이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다.
“고현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봐 달라. 거제의 관문이다. 좋은 자리 몇 곳을 둘러보고 예약까지 해 놨는데, 건물주가 현수막을 못 걸게 해, 부득이 이곳으로 옮겼다. 비워있던 곳이라 쓰레기 청소하는데만 제법 많은 돈이 들었다. 정리를 하고보니 선거사무실 용도로 딱이다”

-나이와 고향은?
“호적상 69년생(실제는 68년생)이니 올해 50살이고, 고향은 거제면 오수리 선창마을이다. 거제면에서 동부 가는 길 우측 주유소 자리가 원래 본가였다. 도로가 나면서 집터가 수용돼 선창마을로 들어갔다. 그곳에 어머니와 큰 형이 지금도 살고 계신다. 작은형은 하청에 사신다”

-아버님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거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고 들었는데.
“거제초교, 거제제일중을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 바로가지 못하고 1년간 멸치 배를 탄 뒤 이듬해 진학했다”

-어린 나이에 멸치 배까지…. 그렇게 힘들었나. 지척에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스토리가 길다. 지독스런 가난 탈피가 발등의 불이었다. 인생이란 걸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어떡하든 힘을 좀 보태 가족끼리 밥 먹고 산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중2) 전까지는 논도 조금 있었지만, 병환 치료비로 다 팔아야 했다. 빚만 있었을 뿐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가 7남매를 키워 냈으니 그 고생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나.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내리 고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목장이었다. 가축을 키워 집안 살림을 일으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사천농고를 택했다. 당시 7명이 지원했는데 나도 당당히 합격했다. 1월 달에 등록금 통지서를 받고 형에게 내밀었다. 큰 형은 나를 조용히 불러 앉히더니 이런저런 집안사정을 얘기하며 ‘등록금은 어찌 해서라도 맞출 수 있지만, 객지생활에 필요한 생활비까지 뒷바라지 할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하고 같이 멸치 배를 타자’고 했다. 집안사정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아무런 항변도 못했다. 그래서 (고교진학을)접었다. 그 길로 멸치 배를 타러 갔다”

-큰 형과 나이 차가 얼마나 나기에, 그 나이에 멸치 배를 타자는 말에 쉽게 순종했나.
“큰 형과는 8살 차이다. 큰 형은 거제에서 신동이라고 소문났던 분이다. 공부를 아주 잘했다. 굉장한 노력파였다. 큰 형은 군대 갔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 부양을 위해 의가사 제대를 했다. 제대 후 어머니와 농사를 지으며 가족을 부양했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가난의 최대 피해자는 우리 큰형이었다.
멸치 배를 타다보니 ‘어로장’ 한 사람의 보수가 선원 50명 보수보다 더 많더라. 그래서 나도 ‘어로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난이 뼈에 사무치다 보니 단무지(단순 무식한) 같은 그런 생각밖에 안 들더라. 그래서 이듬해 거제수고로 진학했다”

-수고 졸업하고 난 뒤 바로 배를 탔는가?
“배를 타기는 탔다. 부산선적 권착선(고등어잡이 어선)을 8개월 정도 탔다. 그러나 고등하교 생활과정에서 또다시 많은 심적 변화를 겪었다. 고2 무렵 불교경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범어를 현대판으로 바꾼 내용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삶에 대해 눈을 떴다. 과정은 이랬다. 고2때 학교도서관 도서관리위원장을 했다. 도서관리위원장을 하면 학자금을 보전 받을 수 있었다. 평생의 은사로 모시는 김상출 선생님이 저의 딱한 사정을 고려한 배려였다.
그때 많은 책을 읽었지만, 유독 불교경전이 와 닿았다. 경전을 읽으면서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반문하는 등 인생에 대한 철학적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배를 타서 돈을 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졸업 후 해양경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해양경찰 특례조건이 있었는데, 내가 졸업할 무렵 그게 없어졌다. 고교졸업 후, 어쩔 수 없이 고등어잡이 배를 탈 수 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늦은 가을 결국 군대를 가야했다. 집안형편이 어렵다 보니 군대를 가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많이 찾았다. HID나 해군 지원도 생각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결국 스물두 살에 군에 갔고, 수도방위사령부로 배치 받았다. 수방사는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최정예부대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은 군에서 사귄 친구들 덕분이었다. 이곳에서 사귄 친한 친구 두 명과는 후일 의형제를 맺었다. 한 사람은 지금 청와대 경호실에 있고, 또 한 사람은 참여정부 시절 행정관으로 있다가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한다.
내가 군을 제대한 것이 92년 5월14일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친구가 전역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서 같이 살자고 했다. 전역 이틀 뒤인 5월16일, 돈 3만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이를 두고 사석에서 ‘3만원의 행복’이라고 자주 내뱉는다”

-단돈 3만원을 들고 서울 가서 뭘 했나?
“학창시절 육상 200m 선수였고, 태권도도 선수 급 유단자였다. 키가 182㎝에 몸무게 68㎏으로 꽤 날렵했다. 슬립 했지만 뼈속에 근육이 있는 스타일이었다. 나를 서울로 불러올린 친구가 정동영 국회의원 집안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의 경호업무를 같이 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때 김대중 총재와 이기택 총재가 민주당을 통합하고 본격적인 대선준비를 하던 때였다. 상경 다음날인 5월17일 김대중 선거캠프의 청년위원으로 명함을 올리고 후보 수행팀에 합류했다. 말이 수행 팀이지 당시에는 대선후보를 따라다니며 잔심부름 하는 정도였다.
폼 나는 수행팀 생활이었지만, 나와는 너무 안 맞는 생활이었다. 63빌딩 꼭대기에서 밥을 먹거나 호텔에서 잠을 자는 등 가난한 시골촌놈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생활이었다. 대선이 끝난 후 고민 끝에 수행 팀 생활을 그만뒀다. 처음 서울로 갈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돈을 버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죽염장사도 하고, 리어카에 악세사리와 꽃을 싣고 길거리에서 팔기도 하는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였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히 강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정치권 생활이 맞지 않아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는 게,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도 들고.
“생활전선에서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고교시절 은사님(김상출 선생)의 충고 덕분이다. 은사님은 객지에 있는 내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늘 일러주었다.
97년도에 유도대학에 다니던 친구가 찾아와 정당생활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97년께 거제로 잠시 왔다가 올라갔는데 이 친구가 후배(후일 6대 서울시의원이 됨)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정치를 하던 후배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같이 하자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 설득에 못 이겨 결국 당료로 들어갔다.
97년 대선 때도 청년위원회에 소속돼 김대중 후보 측근 수행 팀에 들어갔다. 수행 팀에는 외모도 반듯하고 운동도 잘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았다. 나는 당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됐다. 청와대 경호실 0순위로 내가 거론됐다. 그렇지만 나는 그 자리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 좋은 기회를, 왜 포기했나.
“몸으로 때우는 일을 과연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국정원에 가고자 했다. 그렇지만 국정원엔 내가 원하던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정당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98년 5월 새정치국민회의 공채 1기로 들어갔다.
처음 정당에 들어갔을 때 내 직급은 차장이었다. 정당생활 2년까지 정치한다는 생각은 안했다. 그런데 정당생활에 몰입됐던 어느 날 국가 대소사를 논의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농림해양수산 분야 당직자로서 해수부 국장들이 제 파트너였고, 그들과 함께 농림해양수산 정책을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고1 무렵, 동네에서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 조복래 라는 형이었다. 그 형은 선창마을 청년회장을 맡아 동네 대소사를 다 처리했다. 그 때는 그 형이 너무 부럽고 멋져 보였다. 그런데 나이 30살이 되도록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던 내가, 어느 날 보니 동네 대소사가 아닌 국가정책을 손대고 있다는 생각에 대단한 자부심이 들더라.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어 갔다.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민원인을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다. 대면도 극히 형식적이었다. 그걸 보고 난 ‘저건 아니다. 내가 정치를 하면 절대 저렇게 하지 않고 민원인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치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게 싹틀 무렵이던 34~35살 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나는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생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노무현 정부 탄생에 어떤 역할을 했나.
“당시 민주당 경남지역 조직팀장을 맡았다. 대통령 경선 때는 공명선거 감시단 팀장을 했다. 당시 중앙 당직자 250명중 7~8명을 제외하곤 거의가 이인재 후보 편이었다. 국회의원도 노무현 깃발을 든 사람은 천정배 의원 한 사람뿐이었다. 제주에 이어 울산에서 두 번째 순회경선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인재 후보 측이 돈을 뿌리는 걸 직접 적발했다. 그걸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가 보도했다. 난리가 났다. 이인재 후보를 지지하던 국회의원들이 당으로 찾아와 거칠게 항의했다. 나는 기죽지 않았다. 공명선거 감시단 팀장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는데 왜 난리를 치느냐며 그들을 밀쳐 냈다. 며칠 뒤 광주에서 세 번째 순회경선이 열렸고, 노무현 후보가 이변을 연출하며 대세를 잡을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에 계실 때, 노 대통령과 그런 무용담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당직자로 있을 때 직급은.
“처음엔 차장으로 들어갔다. 공모자들 대다수가 박사에다 명문대 출신이었다. 고졸 학력에다 경상도 출신이란 핸디캡까지 있었지만, 97년 대선후보 수행 공로를 인정받아 총무국 차장으로 발령받았다. 당직생활은 2008년 10월 그만 뒀는데, 당시 직급은 부국장이었다. 중앙부처 조직으로 치면 3급 정도에 해당하는 자리다”

-결혼은 언제 했고 가족관계는.
“99년도 당직자 생활하면서 동갑내기와 사내연애 끝에 결혼했다. 큰 딸이 대학신입생이고, 아들이 고3, 둘째딸이 중3이다”

-오랜 객지생활에서 돈은 좀 벌었나.
“돈을 탐했으면 많이 벌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았으면 정치도 안했을 것이다. 고2 때 돈과 인간의 행복과는 다르다는 걸 이미 파악했다. 작년에 겨우 집 한 채를 장만했다. 고생한 부인을 위해 주방시설은 최고급에 최신식으로 꾸몄다”

-서울시의원 도전 계기는?
“당직을 그만둔 게 2008년 10월이다. 대선 직전이었는데, 정동영 후보가 정권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개의 당직자는 그런 흐름쯤은 판단할 줄 안다. 그래서 여당일 때 스스로 그만두고, 이제는 내 정치를 해 보자고 결실했다. 물론 대선 때는 당 후보를 도왔다.
정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당장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순 없었다. 서울 시의원부터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치도 스펙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2009년 서울산업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MB 집권초기 민주당 지지율은 10% 안팎에 머물렀다. 그 해 10월쯤 학과 수업 중 교수님께서 ‘지금은 야당이 어렵지만 내년 지방선거 때는 정치 환경이 지금과 달리질 수 있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당시 당의 직능부회장을 맡고 있던 터라 꽤 솔깃했다. 한번은 수업 중 MPR심리테스트(우호적 관계 활동 평가)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은 테스트 결과를 보고 날더러 맨 왼쪽 끝에 가라고 했다. 맨 왼쪽 끝자리는 정치인 직업군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교수님은 저보고 ‘자네는 분명히 정치를 할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현실정치를 하는 사람도 평가결과가 나만큼 강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일러줬다. 정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좋은 계기였다”

-삶의 굴곡기마다 판단이 빠르다는 느낌이다. 첫 출마에 바로 당선됐나.
“노원구에서 출마해 바로 당선됐다. 선천적으로 사람에 대한 흡입력이 좋은 편이다”

-시의원을 재선했는데. 서울에서 재선 확률은 얼마쯤 되나.
“대게 40% 정도는 물갈이 된다. 처음엔 시의원 한 번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대선에서 지고, 애들도 아직 어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재도전했다. 서울시의원의 역할은 생각보다 빡세다. 공부안하고 일 못하면 바로 떨어진다. 재선 때는 선거운동을 거의 안했다. 지역행사에 얼굴 내미는 일도 일체 안했다. 대신 임기 중 일로써 승부했다. 문제가 있으면 마주앉아 현안을 풀고 시스템도 바꿔 나갔다. 그런데 거제에 와 보니 정치인들이 일보다는 세 과시에 집중하더라.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치행태였다”

-시의원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지역구 내에 대학교 4곳이 있다. 육군사관학교, 서울과기대, 서울여대, 삼육대다. 이 대학들의 철옹성 같은 벽을 허물어 지역사회와 연결시킨 일이다. 육사는 엄청난 땅들을 갖고 있다. 나대지로 방치된 곳도 많다. 이 땅들을 무상임대 받아 서울시 재원을 투입해 야구장을 짓는 등 주민생활 공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삼육대 유휴지에도 서울시 재원을 투입해 등산코스를 만들고 호수주변도 주민휴식공간으로 재단장 했다. 과기대 주변에도 마을버스를 연결시켜 주민공동체에 포함시킨 것 등이다. 말하자면 공동체 부활을 통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만드는 일에 8년을 매달렸다.

-선거전 슬로건이 거제부활이다. 거제부활의 의미는.
“정치를 왜 하느냐는 물음에 청소년 교육문제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청소년을 건강하고 바르게 키우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다. 서울시의원 재선 출마 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민지아빠 문상모’라는 슬로건을 썼다. 정치철학이 청소년의 미래라고 믿기 때문에 아이 이름을 내걸었다. 8년간의 의정생활에서 지역사회 공동체 복원을 위해 일했고, 그런 정치철학을 기반으로 ‘거제의 부활’을 내세웠다.
내가 말한 부활은 특정종교와 무관하다. 정신의 부활 개념으로 보면 된다. 우리 거제는 정신력이 죽었다고 본다. 50년 전 토착인구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포로수용소 군인 및 피난민)이 거제로 왔을 때, 거제 토착민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이들을 보듬고 가진 것도 나눠줬다. 그러나 오늘의 거제는 조선호황 덕분에 쌓인 돈으로 모든 문제에 접근한다. 그러다 보니 정신문화가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변하면서 엉망이 돼 버렸다. 경제는 어느 정도 사이클이 있다. 지금 조선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망한 게 아니다. 조선 사이클은 때가 되면 다시 올라간다. 중요한 건 예전의 그 정신문화를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이른바 공동체 복원이다. 경제도 관광도 똑 같은 문제다. 그것이 거제의 부활이다”

-거제시장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04년 거제시장이 되겠다는 생각에 8개월 정도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다. 그때 불현 듯 머릿속으로 찬바람이 스쳐갔다. 당시 내 나이가 30대 초반. 내게 거제시장 자리가 주어줬을 때, 과연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 들었다. 어설프게 단체장을 맡았다가 수모를 당하는 선배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몸집을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3년 국회기능(행정부 견제)이 작동하지 않는 걸 보고, 경기도 남양주 시장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제는 거제에 있는 분들이 정치적 성장을 통해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던 중 조선경기가 나빠지면서 거제가 어렵다는 소식을 자주 접했다. 공직비리 등 안 좋은 소식도 언론에서 종종 보도됐다. 너무 안타까웠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9월 ‘조폭사주를 통한 정적 제거설’이 불거졌다. 집권당의 유력주자 두 사람이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도되면서 한 달 이상 떠들었다. 그때부터 사방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거제에서도 중앙당에서도 똑 같았다. ‘시의원 3선하면 뭐하느냐. 고향이 이렇게 쑥대밭인데, 자네가 가서 정리를 해야 하지 않나’라는 말이 주 요지였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초쯤 집사람과 거제를 둘러봤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지역위원회 기능도 유명무실화 돼 있고, 리더십도 이미 깨져 있었다”

-결국 조폭사주설이 문 후보를 거제로 오게 만든 스모킹 건이 됐다는 건가?
“유력후보 두 사람이 사건에 연루되자 대안고민이 많아졌다. 제가 먼저 말한 게 아니라, 당에서 먼저 얘기하고 고민하더라. 한 달을 기다려도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하더라. 당시 중앙당 주변에선 ‘현재 거제에 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로서는 답이 없다. 외부에서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말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가자, 내가 거제로!!”

-유력후보 두 사람이 조폭사건에 연루되면서 내려올 환경이 조성됐고, 그래서 결심해 내려왔다 이 말인가?
“그렇다”

-일설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재선이상 서울시의원들은 3선 공천을 안 한다. 재선 이상은 각자 제 갈길 알아서 찾으라고 했고, 이에 따라 문 후보가 거제로 왔다는 말도 있던데.
“전혀 사실무근이다. 정당 조직에 그런 허무맹랑한 방침은 없다. 나는 흠결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 지역구(서울) 시민들은 왜 3선 도전을 하지 않고, 사서 고생하느냐고 나무란다”

-공약에 ‘베리어 프리’ 거제가 있더라.
“베리어 프리는 장애인들이 어느 곳이나 쉽게 오갈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서울에서 장애인 문화정책연구소장을 9년간 했다. 장애인 배려 정책은 관광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장애인 중 90% 이상이 후천적 장애를 가진 분들이다. 고령자도 장애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시대다. 때문에 장애인이 어느 곳을 가든 장애를 겪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다. 특히 거제는 기후가 따뜻해 장애인 배려정책을 관광을 겸한 산업으로 키울 수도 있다”

-장애인 배려정책을 통해 장애인 휴양관광산업으로 키운다는 것인가.
“비슷하다. 장애인을 혐오인으로 보는 게 비장애인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이를 바꿔야 한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고령이 되면 필연적으로 장애인이 된다. 나에 대한 문제로 인식해야지, 너에 대한 문제로 인식하는 빈약한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세상이 불합리할수록 약한 사람 중심의 정책을 펼쳐야만 따듯한 사회가 된다. 정치를 왜 누구 때문에 하는가. 가진자들을 위한 정치가 필요한 게 아니라 중간 이하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고 국가가 필요하다”

-선거자금 펀드를 개설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직업이 정치인이다 보니 돈이 남들처럼 많지 않다. 서울에서 가지고 있던 돈과 지인들이 십시일반 보태준 돈을 갖고 선거를 준비하는데, 이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편드를 만들었다”

-자금은 좀 모이나.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어저께 아들과 막내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용돈을 쪼개 아빠 펀드에 넣었다고 하더라.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밴드를 보다 아빠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기에 한참을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고 눈물 날 일인데.
“무엇보다 투명한 선거를 하고 싶다. 사실 거제지역 선거가 너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정치를 할 사람인데. 돈 문제에 걸려버리면 정치 손 털어야 하지 않나”

-거제정치가 두렵다는 건 무슨 의미냐.
“선거전에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세 과시도 심하더라. 여기에다 조폭이 등장하고 녹취가 횡행하는 등 방식도 너무 거칠게 느껴졌다”

-그래서 재정적 투명성을 기하고, 돈도 부족해서 펀드를 개설했다. 목표가 얼마인가?
“1억이다”

-항간에 나도는 전략공천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 후보께서 전략공천을 받아 나왔다는 얘기를 퍼뜨리고 있다는 얘기를 다른 후보 측에서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저의 전략에 말린 것이다. 전략공천은 당에서 하는 것이지 제가 어떻게 전략공천을 하나. 유력주자로 거론되는 분들이 능력이 안 되고 도덕적 흠결도 있다 보니, 그 틈을 보고 제가 결심해 내려온 것이지, 당의 오더를 받고 온 게 아니다. 오니깐 그런 애기들이 돌더라. 내가 그런 얘기에 대꾸할 필요가 뭐있나. 내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기본적으로 전략공천은 부작용이 만만찮다. 그런 부작용을 당이 안고 내가 안을 필요가 없지 않나. 나는 내 경쟁력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내 스스로 전략공천을 얘기한 적이 없고, 오히려 상대 후보 측에서 퍼뜨리는 말들이다 이 말인가.
“그렇다. 오니깐 그런 얘기들이 파다하더라”

-지난 2월23일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았나. 그때 1000명가량이 모였다. 이제 막 거제로 내려온 사람의 행사에 1000명이 모였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현역 국회의원도 다수 참석했고, 그래서 더 확산된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
“당시 안민석·김두관·박용진 국회의원이 오셨다. 그런데 중요한 건 사람이 많이 모이고 국회의원이 참석했다고 해서 전략공천이 되는 건 아니다. 당료생활 경험자로서 중앙당에선 본 선거를 놓고 상대후보 대비 누가 적임자인지를 먼저 본다. 현재의 후보군으로는 답이 없고 이길 수도 없다고 보면 전략공천을 하기도 한다. 제 판단으로는 생각 있는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가정해 얘기했을 것이다.
거제는 문재인 대통령 고향으로서 중요한 전략지역이다. 당에서도 PK지역 중 양산 김해 거제를 상징성 있는 중요한 축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징성 강한 지역이 무너지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차질이 온다. 최소한 이 지역만큼은 사수하자는 게 당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나의 선거도 너의 선거도 아닌 우리(문재인 정부)의 선거로 인식해야 한다. 개인이 욕심을 내고 달려들 일이 아니다”

-출마 기자회견 당시 거제시 예산분석 결과 정부교부금을 너무 적게 받고 있었다고 했는데.
“행정자치부가 거제시와 시세규모가 비슷한 도시 21개를 비교한 자료를 낸 적이 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지난 3년간의 재정을 분석했더니 거제시는 적게는 1000억원, 많게는 2000억원 가량의 정부교부금을 가져오지 못하더라. 세외수입도 다른 도시들에 비해 803억 정도를 못 벌었다. 세외수입은 사업을 벌여야 하니 당장 만들 수는 없지만, 정부교부금은 노력해 더 가져와야 한다. 시장이라면 미래청사진을 제시하고 거제가 먹고살 수 있는 돈이 있다면 그걸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임시방편으로 가지고 온 돈 먹고 쓰는 것 누가 못하겠는가. 최소 1000억만 더 가져와도 시민들에게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교부금을 적게 가져왔다고 전임자들이 열심히 안했다는 건 아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에 그분들이 열심히 일을 안 해 가난했겠나. 열심히 살았지만 돈을 벌고 자식교육을 시키는 컨텐츠가 부족했고, 그래서 주어진 여건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교부금을 더 가져올 복안이 있나.
“저는 이미 시의원 8년 동안 그런 일들에 집중해 왔다. 동료의원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봤다. 당직자 시절 농림해양수산위 정책을 만들면서 그런 일들을 제대로 경험했다. 저의 리더십은 강압적이지 않은 포용력에 있다. 문제가 있으면 나의 책임이요 하고 끌고 간다. 공무원들에게 일할 환경은 만들어 준다. 나는 시의원 하면서 줄곧 문화체육관광위에 있었다. 정치도 전문성을 가져야 하기에 한 우물을 팠다. 그래야만 예산집행 내역을 훤히 꿰뚫고,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확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야당에 속하면 예산 가져오기가 쉽지 않다. 여당이라고 다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예산을 가져오는 길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이면 보좌관을 통해 일할 수 있지만, 시장은 당장 행정실무를 진두지휘해야 하는데, 그런 실무경험도 없이, 공무원 다뤄본 경험도 없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거제가 그 정도로 여유있는 동네가 아니지 않나”

-민주당 후보군이 현재 5명이다. 경선은 자신하나.
“늘 본선을 염두에 두고 뛴다. 예선은 그다지 걱정 안 한다. 이유는 당원과 시민들의 풍향에서 승리의 자신감이 읽히기 때문이다. 상대(한국당 후보)는 30년간 관료생활을 했고, 출마를 위해 몇 년을 준비했던 백전노장이다. 싸우려면 그런 사람과 대척점에 있어야 한다. 민주당에서 그런 대척점에 있는 후보가 과연 누구겠는가.
거제는 여당이지만, 전통적인 보수지역이다. 지역 색도 강한 곳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당을 지켜내고 거제발전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건 아름다운 이야기다. 거제는 지금 전시체제다. 그 아름다움만으로 전장에서 이길 수 없다. 상대후보를 꺾을 최적의 장수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뒷받침하고 위기의 조선산업을 구하며, 수 십 년간 이어져 온 보수독점 시대를 종식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성숙한 시민들은 이런 상황을 훨씬 더 전략적으로 볼 것이라 확신 한다”

-일반 시민들은 그런 의지를 가진 문 후보를 잘 모르지 않나.
“많이 알려지고 있다. 작년 11월에 거제에 온 뒤, 거제가 안고 있는 문제가 뭔지를 우선 공부했다. 예산도 분석해 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2월23일 출판기념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첫 출발은 거점을 찍었다. 그리고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지금은 1주일 단위로 엄청난 변화가 온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거점 간 선도 연결되고 있다. 이정도 속도라면 늦어도 4월 중순엔 대세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저는 선거를 많이 경험한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흡입력도 좋은 편이다. 정치를 하려면 뚜렷한 정치철학이 있어야 한다. 정치철학이 없으면 정책도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다. 시장이 되고나서 어떻게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나는 상대후보(한국당)를 이기려고 하지, 당내 경선을 이기려고 나오지 않았다. 경선에 자신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안했다”

-자유한국당 서일준 후보를 잘 아는가.
“4~5년 전 향우회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다. 거제로 내려오기 전 서울시청 국장들로부터 귀동냥도 더러 했다. 지난해 8월 휴가차 거제로 왔는데, 그때 시청에서 또 만나 이런저런 덕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거제로 온다는 생각을 안 했던 터라, 서 부시장에게 민주당 후보로 시장출마 하시는 게 어떠냐는 농반진반 권유도 했다. 당신이 안하면 내가 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빈말처럼 했던 그 말이 현실이 돼 버렸다”

-무소속 윤영 후보가 선거전에 가세했다. 어떻게 보나.
“윤영 후보도 훌륭한 분이지만, 보수진영으로 분류되지 않나. 당연히 보수표가 분산될 것이고, 민주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 한다”

-문재인 대통령 생가 주인 아들(배영철씨)이 출마 기자회견장에 배석했던데,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
“같은 고향이다 보니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다. 작은형과 절친 이기도 하다. 말이 나온 김에 대통령 생가 문제를 언급해야겠다. 현재 생가에는 주인 아들이 살고 있다. 대통령 당선 후 방문객들이 많아지다 보니 거주 인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 문제는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시장이 되면 적절한 보상을 통해 생가를 매입하고, 대통령생가복원단체를 만들어 이들이 주도해 주변을 꾸미도록 할 작정이다”

-사곡 국가산단 추진과 관련, 기자회견 때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 같은데.
“부정적인 게 아니고 환경단체에서 전화로 YES냐 NO를 묻기에 검토가 필요하다는 정도로 얘기했다. 일을 하는데 찬성과 반대가 어디 있느냐. 인간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환경침해가 불가피하다. 다만, 그 침해정도가 어디까지냐가 중요하다. 거제지역 환경단체들의 반대논리도 설득력이 약하고, 거제시의 산단추진 당위성도 떨어진다.
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을 얘기하는데, 해양플랜트가 박살난 상황에서 시민들의 동의를 얻겠는가. 찬성이나 반대를 떠나 훨씬 더 디테일하게 봐야 한다. 산단추진 공무원들도 만났지만, 정책에 대한 고민이 많이 약하더라.
사곡산단 논쟁은 거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먼저 봐야 한다. 거제부활의 핵심은 경제다. 양대조선의 불을 밝히는 일이다. 거제시장이 그 일을 하기 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여건변화를 먼저 살펴야 한다. 거제시 여건변화의 핵심은 가덕신공항과 KTX다. 거제시 주도로 사곡산단에 해양플랜트를 채운다는 건 처음부터 잘못된 발상이다. 양대조선에서 박살나 없는 내용을 어떻게 채운다는 말인가. 때문에 이건 국가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국가에서 조선산업 부흥을 위해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 산업을 육성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양대조선을 설득해 다시 거제시에 역제안 해야만 성사가능한 일이다. 외지에 흩어져 있는 기자재 공장들도 전부 거제로 끌어 모으는 작업도 시급하다.
산단목적을 해양플랜트 산단으로 국한한 것도 문제다. 100만평이 넘는 광활한 부지에 다른 미래 먹거리 산업도 집어넣어야 한다. 가덕 신공항이 성사되면 물동량의 엄청난 변화가 뒤따른다. 이곳을 배후 물류기지로 활용할 수도 있다. KTX가 들어올 때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더 중요한 건 외부에서 내부(거제)로 들어오는 내용물에 대해 쉽게 안착할 수 있는 최고의 컨디션을 줘야 하는데, 평당 190만원이나 되는 땅에 누가 들어오려고 하겠는가. 그 컨디션 조성을 굳이 사곡산단으로 고집할 이유도 없다. 지가를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곡산단이 되면 곧바로 번영이 온다는 휘황찬란한 상상만 하고 있는데, 매우 잘못됐고 위험한 착각이다. 이런 현실을 언론에서 짚어주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얘기해야 하는데 왜 못하겠는가. 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다.

-거제시장으로서의 입장이 아닌 시민 입장에서 묻겠다. 조선산업 악화이후 거제경제가 너무 어렵다.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만들려면 시간도 꽤 필요하다. 무리를 해서라도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의 발등의 불은 꺼야 되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새로운 계획을 잡는 것 보다 이미 가시화돼 있는 사곡산단에 속도를 붙이면 최소한 지가보상에 따른 많은 돈이 풀리지 않나. 어떤 생각인가.
“공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힘을 받아야 한다. 곧 고시가 떨어질 텐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다만, 미래 비젼을 위해서는 시장이 중장기발전계획에 대한 확고한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그런 것 없이 밀어붙이면 난개발로 이어진다. 거대담론을 갖고 추진한다면 절대 난개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산단 목적 외 다른 용도전환은 안되지 않나.
“꼭 그렇지는 않다. 용도변경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산단 명칭을 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이라고 하니 범위가 좁아진다. 그래서 명칭을 바꿔 추진할 필요가 있다. 목적사업 옆에는 얼마든지 성격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다. 산자부를 통해 역제안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출마 기자회견 당시 ‘자연에 대한 노크’라는 표현을 썼다. 의미가 남달랐다. 평소 환경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인가.
“많이 생각한다. 사람이 방문을 열 때도 노크는 기본 아닌가. 자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로 개발사업을 하는데, 당신(자연)의 영역을 일정부분 침해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는 양해해 달라는 뜻, 이게 노크다. 이런 최소한의 규제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면 바로 난개발이 된다”

-상동~거제 간 명진터널은 이미 착공식을 했다. 그런데도 예산이 없다보니 하 세월이다.
“전임 시장이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행위였다. 절대 시 재원으로 할 수 없다. 국도 5호선을 거제까지 끌고 와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지원을 받아 완성할 수 있다. 시장이 되면 충분히 해결해 낼 자신이 있다”

-주택공동화 현상에 대한 대응은.
“외부로 나간 사람들이 다시 오기위해서는 조선산업이 부흥해야 한다. 단기간에 안 올 것이다. 다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참을 수 있다. 희망이 없다고 느낄때가 가장 힘들다. 그래서 희망을 심어주는 거제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로부터 거제를 수술할 비용을 가져오겠다. 지켜봐 달라. 양대조선관계자도 만나 임원을 사퇴하면 다른 지역에서 업을 차리지 말고 반드시 거제에서 업을 차리라고 강력히 권고할 작정이다. 외지에 있는 기자재공장 유입정책에도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 사곡산단의 지가를 낮추는 방법도 정부와 협의해 면밀히 추진하겠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다시 모이고, 주택공동화라는 당면 과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거제시 예산규모가 한해 약 7000억원 정도다. 적정한가.
“거제시세 규모로 볼 때 매우 적은 편이다. 경북 울주군은 인구 20만인데도 한해 예산이 1조원이다. 정부교부금을 더 가져와야 한다. 1500억만 더 가져와도 거제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관광인프라 구축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위해서라도 그런 일들을 해내야 한다”

-공무원 조직운용에 대한 복안은.
“시장이 되면 시청 입구에 ‘사고치는 공무원은 아름답다’라는 현판을 걸겠다. 일하면서 사고를 치면 페널티를 주는 게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겠다. 그래서 공직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는 공정이다. 공평하고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이 생긴다. 똑 같은 조건이면 좀 더 능력 있는 사람을 쓰고, 분야별 전문성이 필요한 곳엔 서열을 파괴해서라도 발탁하겠다. 그 평가는 시장이 아니라 공무원 툴과 외부인이 참여하는 인사위원회 툴을 통해 검증할 작정이다”

-지금까지 거제를 위해 뭘 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거제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껏 뭘 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저는 오늘의 거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적인 소양을 익혔고,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갖고 돌아왔다. 25년 전 바깥으로 나가 철저하게 성찰하고 이를 통한 지식과 지혜를 얻어 거제를 구하기 위해 왔다. 거제에 있던 분들은 이 난국을 헤쳐 나가지 못한다. 그분들이 하면 이대로 산다.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적임자는 저다”

-거제를 어떤 도시로 만들고 싶나.
“웃음이 있는 도시다. 지금 거제는 배타성이 너무 강하다. 헐벗고 굶주리던 과거에도 많은 사람과 문호를 받아들였는데, 돈이 생기다보니 배타적인 도시가 되고 이웃이 사라졌다. 말이 굉장히 전투적이다.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성숙도기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예술교욱분야에 기존 예산의 3배 이상을 투자하겠다. 그래서 거제의 공동체를 빠른 시일 내에 복원해 내겠다.
거제를 시민이 살기 편안한 관광지로 만들겠다. 영국의 게이쳐 해머라는 인구 20만의 작은 광산도시는 시민이 편안한 도시지향을 우선 추구한다. 이 소도시에 가면 시민들이 편안하게 생활하고 즐긴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유명관광지로 변했다. 우리도 시민이 편안한 도시를 만들다 보면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순식간에 는다. 시민이 편안하고 행복할 때 찾아오는 손님들도 덩달아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시장이 되면 거제를 드나드는 진출입로 두 곳 인근에 대단위 주차장을 만들 생각이다. 외지인들이 이곳에 차를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통해 구불구불한 길을 돌며 거제를 관광하게 할 수 있도록 할 참이다“

-끝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거제가 겉으로 볼 때 가진 사람이 많고 안정화돼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매일 매일을 엄청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돼 있고, 실무경험이 있고, 의지가 있고, 외부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사람이 거제의 리더가 돼야 한다. 오늘의 거제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의 시선으로 봐야만 해결 가능하다.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외부세력이 투입돼 진단하듯, 거제 역시 비상시국임을 인식해 외부의 시선으로 거제를 진단하고 수술해야 한다. 기존에 거제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고생했으니 그들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판단을 하는 순간, 거제는 영영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힘으로는 분명히 안 된다.
거제는 과거보다 훨씬 양극화가 심화됐다. 정신적 문화적 황폐화도 심하다. 사람이 주인 되는 공동체 복원은 그래서 더 시급하다. 거제부활은 이 같은 모순사회의 회복이자 복원이다. 경제를 부활시키고 관광을 부활시키며, 지역공동체를 부활시키겠다. 이길 수 있는 후보 저 문상모를 끝까지 지지해 달라“

신기방 기자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기방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6
전체보기
  • 산지기 2018-04-02 10:03:15

    거제시지라도 한번 읽어봐소..........답을주소   삭제

    • 문팔도 2018-04-01 18:24:51

      조폭 사주설 퍼트려서 변후보 깍아내리고 변후보가 대응하게 되면 조폭 사주설 더 퍼질 것이라 무대응 할 것까지 계산한 정치꾼이네 문후보... 이양반 비빔밥이나 말아먹는 국밥도 좋아하겠네 식성이 보통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삭제

      • 시민 2018-03-31 23:11:12

        시장보다는 도의원이 적격일터...시장하려면 최소 2년전에 내려와 시민과 울어주고 웃어주는 시간을 가져야 할듯...차기 시장후보로는 괜찮을 듯도 합니다.   삭제

        • 거제백년 2018-03-31 15:46:27

          기사 잘 봤습니다. 괜찮으신 후보시네요.   삭제

          • 거제민 2018-03-31 13:47:37

            정말이다 기실 당빨 받아서 선거하려는 위인쯤으로 치부하였는데 거제의 현안을 보는 혜안과 철학을 보여주네.... 거제민의 전투적 어투 .. 공감한다..   삭제

            • 독자 2018-03-30 19:48:50

              잘 몰랐는데 나름대로 철학이 있는 분이셨군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삭제

              포토 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