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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도기념비 철거’ 신중해야[데스크 눈]신기방 /대표 겸 편집국장
신기방 국장

사등면 가조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취도(吹島). 한자로 풀어 쓰면 「불타는 섬」이다. 지명 치고는 고약한 이름이다.

이 섬의 본래이름은 「불타는 섬(吹島)」이 아닌 「독수리 섬(鷲島)」이었다. 이 취도(鷲島)가 취도(吹島)로 바뀐 것은 순전히 일본군 때문이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들이 이 섬을 표적삼아 밤낮없는 함포사격 연습을 해 댔다. 한·일강제합방(1910년) 이후에도 일본군들의 함포사격 연습은 그치지 않았다.

1935년 진해만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한 일본군 중장(小林省三郞)이 이 섬을 향해 함포사격 연습을 하던 젊은시절(?)을 회상하며 높이 4m, 둘레 2m의 기념비를 세웠다. 이른바「취도기념(吹島記念)」 비(碑)다.

당시 굳이 비를 세워야 했다면 취도기념(鷲島記念)으로 해야 하거늘, 이곳이 그들의 함포사격에 의해 불바다가 됐음을 회상하듯, 불 취(吹)를 쓴 취도기념(吹島記念)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70년이 흐른 지금, 옛 취도(鷲島)보다 취도(吹島)가 일반화 돼 버렸다.

취도는 현재 약50평 남짓한 그야말로 작은 무인도다. 그러나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거쳐 대정7년(1918년) 3월21일 지적부에 등재할 당시 총 면적은 5백70평이었다. 오늘날의 지적부상 면적도 등재 당시와 똑 같은 5백70평이다.

러일전쟁 이전 일본군의 함포사격이 없었을 때 취도는 어땠을까. 거제시지에 나타난 기록과 인근주민들의 증언 등을 종합하면 당시 취도의 총면적은 3천평 안팎의 꽤 큰 섬이었다고 한다. 섬의 규모로 볼 때, 어쩌면 지금같은 무인도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3천평 안팎의 큰 섬인 취도는 1905년~1918년 사이 일제의 함포사격에 의해 80%가 사라져 버렸고, 기념비가 세워진 1935년까진 남은 섬 80%가 또 사라졌다. 말하자면 지금의 취도는 원형당시의 98%가 일본군의 포탄에 부숴져 버렸고, 단지 2%만 남아 「그 당시에 이런 섬이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취도는 일본의 대한제국 강탈현장에서 피멍(?)으로 범벅 되면서도 원형의 극히 일부를 지켜 내며, 2~3세대가 지난 우리들에게 당시상황을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들어 시민단체 일부 사람들의 주도하에 취도에 남은 이 피멍 흔적(기념탑)을 지우자고 난리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 흉물스런 일제잔재를 들어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어떤 형태의 여론수렴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나, 이달 말까지 여론수렴을 거쳐 내달엔 철거한다는 구체적 일정까지 잡고 있다.

일제잔제 청산차원에서 무인도에 남아있는 이 기념비를 철거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필자는 단연코 반대다. 시민단체의 주장이 틀려서가 아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취도는 기념탑뿐만 아니라 취도 그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앞서 취도의 발자취를 장황하게 설명한 것도 이같은 인과관계를 말하기 위해서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봐야 한다. 승자의 시각에서 사실을 우격다짐하지도, 패자의 시각에서 과장하지도 말아야 한다.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흔적을 보존하는 프랑스인들의 지혜가 그렇다. 현장을 몽땅 떼어 내 박물관속에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현장 그 자체를 박물관으로 꾸민 것이다.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비를 철거해 역사박물관을 만들고, 이를 전시해 후세교육에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약한 논리다. 아픈 역사로서 후세교육에 활용할 것이라면 굳이 박물관을 만들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 자리에 아픈역사를 기억하는 표지판을 새로 세우고, 그 비(碑)와 함게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활용하면 될 것을.

무엇보다 3천평 규모의 큰 섬 취도(鷲島)가 50평 남짓한 작은 섬 취도(吹島)로 전락한 것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으로 볼 수 있다.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전시할 박물관이 지금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높이 4m, 둘레 2m에 이르는 거대한 기념탑을 철거해 당장 어디에 둘 것인가. 박물관은 또 무슨 돈을 어떻게 마련해 언제 짓는다는 것인가. 무인도에 있는 흔적(기념비)을 떼어 내 있지도 않은 인공박물관에 전시하겠다는 발상자체가 시대흐름에 편승한 한건(?)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반증한다.   

취도가 포탄사격연습장이 되면서 당시 인근 가조도나 사등지역 주민들이 겪었을 엄청난 공포와 위협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도 철거론자들은 인근 주민들과 한마디 상의없이 그들만의 논리를 앞세우며 철거수순에 들어갔다. 최근 가조도 주민들이 시민단체의 무조건 철거주장에 반대하며 조직적 반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픈역사도 역사다. 단지 기념비를 철거한다고 치욕의 역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일본이 침략역사를 미화시키고자 교과서를 왜곡하고 삭제하는데 대해,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역사를 그네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우리가 냉소하고 항의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취도는 섬 자체가 역사의 현장이다. 그 현장을 증언하고 있는 게 지금의 기념탑이다. 그것을 들어내고 깨부순다고 그 아픈 역사가 치유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후세교육도 현장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며 현장을 통해 깨닫도록 해야 한다. 편협된 역사인식으로 「철거, 철거, 철거」만을 외칠 게 아니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우리지역과 후손에게 도움이 되고, 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길인지를 신중히 따져 봐야 한다.

어쩌면 먼 후일 취도일대가 역사박물관으로 거듭 나, 당시 선조들이 겪었던 불안과 공포의 아픔을 후손들이 대신 보상(?)받을 수 있는 날이 올수도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필자가 새거제신문 편집국장 재직당시 썼던 글입니다.

신기방 기자  sgb@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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