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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奢侈)와 국치(國恥)손영민 /새거제신문 이사

   
▲ 손영민 /새거제신문 이사
‘사치는 망국의 근원이요 사치를 하는 사람이 국가정책을 논하는 사람이거나 관계자라면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한 우리 선조들과 현군들이 적지않다.
영조 때는 상류부인들 사이에 머리다리를 한 자 이상 높이는 가계가 유명하였는데 그 다리 값만 해도 중인 열 집의 소출보다 많다 했으니 대단한 사치가 아닐 수 없다.

벼슬아치들은 쓰고 다니는 갓을 한 뼘에서 두 뼘으로 높이고 넓혀 나갔으며 갓끈을 길게 하여 그 마디에 다는 옥사치를 하는데, 갓 하나에 논 다섯 마지기 값을 들인 사람까지 있었다. 이 역시 대단한 사치였다.
영조는 금(禁)사치의 윤음을 내린 가운데 “대체 근래의 풍속이란, 한사람이 사치하면 백사람이 이를 본받고 또한 본받으면 시체(時體)라는 미명으로 나라 안이 모두 이를 따르니 근면하게 사는 백성이 못살게 되고 국체가 흔들려 망국하는 사례가 적지않도다”면서 사치를 법으로 금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경제를 부흥시킨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남학생들이 장발을 하거나 여학생들이 무릎 위 5cm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다른 학생들도 이를 본받아 무분별한 사회기강이 조성된다하여 강제로 머리를 깎거나 훈계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실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식한 국가정책이지만 여하튼 그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고 경제와 국방면에서 현재까지 대다수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침실 화장실에는 물을 아끼기 위해 화장실 물통 속에 벽돌을 집어넣었으며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청와대 내 에어컨 가동을 중지시켰고 그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후 청와대를 조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대통령이 기거하는 방으로서는 너무도 검소한 생활용품들만이 눈에 들어와 놀랐다고 했다.

성종 때의 일이다.
성종 외척 한사람이 값비싼 자단향나무로 집안에 별채를 지었다는 소문을 듣고 내시로 하여금 확인시켰다.
평소 상류층의 사치에 민감했던 성종은 백성에게 민망하여 일대 결심을 했다. 성종은 병을 핑계대고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옮겨간 다음 명을 내려 사치를 한 외척을 베어죽이고 나서 환궁했다.
굳이 궁을 옮기면서까지 하여 하명한 뜻은 당시 대비가 살아있었으므로 대비와 동기간인 그 외척을 용서해 주기를 청할 것이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금사치에 관한 고사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태조 이성계는 총사령관인 상장군 김인찬이 채단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하여 파직 구속시켰으며 세종은 맏형인 양녕대군의 첩이 ‘자다비’라는 외래패션의 옷을 입었다 하여 처벌했고 인조는 사치풍조를 다잡기 위해 손수 무명옷과 삼베옷을 입고 살았는데 그나마도 여느 백성이 입는 것만 못한 거친 무명삼베였다고 이조실록에 쓰여 있다.

역대 최고수준을 기록한 올여름 성수기 해외여행 출국추세가 추석 연휴까지 이어지면서 올해 추석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이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해에 이어 지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1910년 한일합방이 ‘국치의 날’이라 한다면 자력으로 한국경제를 일으키지 못해 외세에 의존한 1997년 IMF구제금융 신청일도 ‘국치의 날’이라 필자는 말하고 싶다.

올해가 IMF구제금융 신청 13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모두 일어서서 과거 땀 흘리고 고생했던 그날을 상기하고 더욱 화합된 마음으로 검소한 생활을 신조삼아 힘든 일을 극복하는 슬기를 갖자.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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