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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회서영천 /거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일선에서 범죄업무를 다루다 보니 매일 출근하면 밤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챙겨보는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어떤 날은 각종 사건으로 뒤범벅이 되어 당직형사들이 파김치가 되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쥐죽은 듯 거제 전역이 조용한 날도 있다. 간밤에 살인이나 강도같은 강력사건이 있을 때는 아침부터 괜히 긴장되고 무겁게 하루가 시작된다. 가벼운 폭력같은 흔한 범죄에는 무덤덤할 때도 있지만, 오랫동안 용의주도하게 형사들과 숨바꼭질 하던 범인이 잡힌 날은 한결 마음이 가볍고 후련하다.

엊그제는 아침부터 우울했다. 시내 모 중학교 선배인 고교생이 후배 중학생을 밤에 불러내 훈계 한답시고 주먹으로 가슴을 때려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다. 평소 후배인 피해자가 자신의 충고를 무시했다는 하잖은 이유였다. 졸지에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더러 밖에 나가 나쁜 짓하라고 시키겠는가만, 아이들간에 어줍잖은 이유로 채 피지도 못하고 이승을 떠난 어린 영혼이 너무 가여웠다.

수사 파트에 오래 근무하면 퇴직후에 철학관 차리면 성공할 것이라는 우스개 말이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각종 사건으로 조사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다. 물론, 꼴불견인 사람들도 종종 있다.

사이버범죄를 함께 취급하다보니 자녀가 연루된 일로 경찰서에 오는 부모들을 가끔 만난다. 이런 부모들은 자초지종 보다 대개 자식의 입장에서 사건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지금껏 부모로서 자기가 자식에게 가르쳐 온 대로 사건을 이해할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만약 자식이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을 저질렀을 때 그 충격은 클수 밖에 없다. 가령, 초등생이 부모의 인적사항으로 성인음란물을 퍼 나르거나, 업로드 했을 경우다. 믿을수 없는 현실을 받아 들이고 부모와 자식간의 간극을 좁힐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현명한 부모들이 대부분이지만,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조사경찰관 앞에서 사정없이 애를 두들겨 패는 부모도 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다. 자식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말없이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피가 나도록 때려 귀감을 삼도록 했다는 선인(先人)들의 지혜를 너나없이 되새겼으면 좋겠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높은 사람 이름부터 들먹이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런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매우 사회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주체성이 형편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사회의 잘못된 속성을 가장 매끄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아뭏든 시절만 제대로 만났다면 그 잘난 "빽"으로 크게 출세했을 법한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알고보면 자신의 못남만 돋보이게 할뿐, 이름 판 사람의 체면까지 구겨진다는 걸 알기나 할까.

흥분하여 다짜고짜 큰소리 치는 사람들 또한 피곤하다. 이런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다. 남의 말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소리 좀 낮추라고 간섭하면 "내 목소리가 원래 큰데 어쩌란 말이요"라고 더 큰소리 친다. 떠들든지 말든지 가만히 내버려 두거나, 아니면 완전히 무안을 주는게 효과적이다. 이 사람들의 말은 대개 알맹이가 없고 진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고소장 단골 손님은 모두가 진저리를 친다. 그중에 60대부터 고소장 들고 경찰서 찾아오더니 80이 훨씬 넘어 백발이 성성한 지금도 경찰서를 찾는 노인이 있다. 정확히 헤아려 보지 않았지만 제출한 고소장이 족히 100건은 됨직 하다.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는가 하지만 전혀 그렇지도 않다. 내용도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그렇다. 바뀐 건 사건접수번호와 담당조사관 이름뿐이라고 할 정도다. 여차하면 담당경찰관은 물론, 앞으로 담당검사, 판사는 다음 고소 대상자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는 격이다. 무고죄로 한두번 입건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다. 나이가 많아 구속대상도 안된다. 해결책은 단 하나 ! 대단히 미안하지만 가급적 빨리, 조용히 돌아가시기를 학수고대할 뿐이다.

벌써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보잘것 없는 일상에 뒤엉켜 목숨 거는 인간사를 뒤로 한채 세월은 묵묵히 저 홀로 잘도 간다.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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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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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천최고 2010-11-14 21:01:16

    컬럼뿐만 아니라 거제서에서 가장 일을 열심히 공정히 최선을 다하는 경찰관이라는 칭송이 거제에 자~~~자~~~하다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꾸벅   삭제

    • 독자 2010-10-26 15:51:46

      예리하다. 근데 철학관은 좀 안 어울리는데 ㅋ. 늘 유익한 글 감사 !   삭제

      • 삼화취정 2010-10-26 09:03:47

        수사를 오래 하셨으니 척보면 이사람은 어떻고 저사람은 어떻겠다고 판단이 되시겠네요.
        보잘것없는 일상에 뒤엉켜 목숨 거는 인간사라.. 옳으신 말씀.ㅎㅎ
        잘 읽었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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