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이 사상 처음 수주잔량(앞으로 남은 일감)에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한국이 2000년 일본을 추월한 지 만 9년 만이다. 수주잔량은 조선업체의 역량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척도이다. 올해 우리 조선업계의 세계 수주량 점유율은 이미 중국에 크게 뒤져 있다.

세계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우리 조선업체들이 극심한 '수주 가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세계 1위인 한국 조선업의 위상이 흔들리고 '한·중 조선업 역전'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사상 처음 수주잔량·수주량 중국에 1위 내줘

6일 세계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현재 중국의 수주잔량은 5496만CGT(점유율·34.7%)로 5363만CGT(33.8%)를 기록한 한국을 추월했다. 한국 조선업은 수주잔량에서 2000년 2월 일본을 추월한 후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세계 1위를 지켜왔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업계가 수주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이 중국은 중저가 상선(商船)들을 잇달아 수주했다"며 "우리가 주력하는 초대형유조선·LNG선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의 발주가 재개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규 수주 부문에서는 중국이 지난달 23만3265CGT를 수주, 한국(21만4825CGT)을 앞서면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중국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71만CGT로 수주 점유율 52.3%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164만CGT로 31.8%의 점유율에 머물렀다. 지난해 수주량 점유율(한국 41.1%·중국 35.1%)이 완전 뒤바뀐 것이다.

업계는 올해 남은 기간 한국 조선업체가 수주 가능한 물량이 얼마되지 않아 결국 연말 수주잔량과 신규 수주량에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줄 것으로 보고 있다.

■ 대형·중소형 조선소 역할 분담 등 대책 필요

일각에선 수주량과 수주잔량에서 중국에 뒤졌지만 1위 자리가 흔들린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올해는 세계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비상 상황인 점과 중국이 올린 수주 실적의 상당수는 자국 내 발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계 수치만 갖고 중국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정부는 '국수국조(國需國造·우리가 필요한 배는 우리가 만든다)'의 기치 아래 조선업을 성장동력으로 밀어붙이면서 발주물량의 70~80%를 자국 내 조선소에 '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수주량이 중국에 뒤진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조선업계가 고부가가치 선박과 고가의 해양 플랜트 중심 전략을 짜고 있지만,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 것 역시 중저가 선박을 중심으로 조금씩 물량을 확보해나간 결과인 만큼 바짝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KEIT)의 홍성인 연구위원은 "우리 조선소가 건조하는 고부가가치 선박에 필요한 핵심 기술의 국산화 비율이 높은 편이 아닌데,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 조선업계의 경쟁력 유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형과 중소형 조선소의 역할 분담 등을 통한 국내 조선업계의 포트폴리오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대형 조선소는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운영하고, 중소형 조선소는 대형 조선소가 취급하지 않는 선박을 중심으로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초까지 조선업 호황을 타고 중소형 조선소들이 너도나도 투자에 나서면서 원자재·인력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 이 기사는 조선일보 10월7일자 경제섹션 보도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신기방 기자  sgb@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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