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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패도해(一敗塗海)김형석 / 컬처 크리에이터

   

▲ 김형석
/ 前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중학교에 진학해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새가 노래한다’해 의아했다. ‘새가 운다’라는 표현에 익숙한 우리 민족의 슬프고 고난스러운 역사가 철이 들면서 이해되었기에.

한산, 거제, 고성 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에는 꽃핀 숲의 향기 속에 인육이 썩어가는 고린내가 스며 있었다... 경상 해안은 목이 잘리거나 코가 잘린 시체로 뒤덮였다. (칼의 노래. 김훈)

이 시대의 삶이 곤궁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로 답답해 장자의 깊고 넓은 바닷물에 손끝을 적시며 살다 연말에 필연처럼 만난 책이 있다. 하루 동안 단숨에 읽은 김훈 소설가의 '칼의 노래' 2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용렬한 임금, 파국적 당쟁, 도륙당하는 백성, 그리고 전공을 과장하기 위해 적과 아군, 민간인,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조선군은 목을 자르고, 왜군은 코를 베는 야만. 비록 팩션(Faction)일지라도 장군의 바다는 검붉은 핏빛으로 지옥처럼 참혹했다.

   
 ▲ 경상남도 이순신 프로젝트 역사고증자문위원회에서 세운 칠천교 입구 표석

일패도지(一敗塗地)는 '장수를 잘못 써 전쟁에 한 번 패하여 전사자의 으깨진 간과 뇌가 흙과 피범벅이 되어 땅을 물들이다'라는 뜻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증스러움은 일패도지에서 부귀영달을 위해 거래를 하는 명과 왜의 장수들.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민초들은 필사즉생(必死則生)으로 싸우는데 권력 유지와 당파싸움으로 눈이 먼 군신(君臣), 목숨을 연명하려 왜선의 노를 젓는 격군이나 밀정 노릇을 하는 조선인까지... 주검의 무의미? 조선, 일본의 지도자를 잘못 만난 죄 없는 시체더미를 쓰레기로 표현한 소설가의 가공할 비장미와 살아남은 자의 후손된 치욕을 읽었다.

‘승자는 실패를 거울로 삼지만 패자는 성공도 휴지로 삼는다’라고 했던가. 왜란이 종결된 후에도 당쟁과 쇄국으로 정신 못 차린 지도자들을 만난 나라는 결국 300년 후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경술국치를 당한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데, 이 시대는 가족을 잃은 새떼가 피 울음을 울던 그 처참한 국난을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선조들의 피로 지킨 역사 위에 세워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한미 FTA 협상,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정비사업, 공정한 사회 등 작년의 주요 이슈들을 되돌아보면 답답한 적막(寂寞)의 풍요다. 오른손과 왼손은 한몸인데.

   
▲ 산책로에서 바라본 옥포만과 대우조선소

거제도 집 근처의 바닷가 산책로를 걸으면 임진란 육해전사 첫 승리, 옥포해전이 있었던 옥포만이다. 대우조선해양이 터를 잡아 거제시가 세계 1위 조선산업도시로 상전벽해 했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면 당시 해전 26전 25승 1패의 유일한 일패도해(一敗塗海), 칠천량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자주 지나치던 아름다운 칠천도 앞 바다가 피가 강산을 물들이던 400년 전에는 코 없는 시체들이 파도치는 데로 떠다녔다는 생각을 하니 처연해졌다. 그것도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 때문에 패배했다는 사실에, 적개심은 차디찬 검푸른 야수처럼 날카로운 겨울바다를 포효했다.

   
▲ 거제시 옥포대첩기념공원의 기념탑 조형물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민귀군경(民貴君輕)’을 뽑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민귀군경은 맹자의 ‘진심’ 편에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성어란다. 시대상이 투영된 이 씁쓸한 교훈을 가슴에 담아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애들도 아니고 다툴 때와 손잡을 때를 구분할 줄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실패와 절망에서도 배우자.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만 선정할 것이 아니라 2011년 신묘년(辛卯年) ‘절망의 사자성어’로 일패도해(一敗塗海)를 추천한다.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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