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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 고공 농성 강병재 씨를 내려오게 하자김범용 / 경실련사무국장

   
▲ 김범용 경실련사무국장
1. 고공농성에 답이 없다?

강병재 거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조직위 의장의 송전철탑 고공농성이 지난 6일로 한 달을 넘겼다. 강병재씨는 전체 협상권을 대우조선 노조에 위임했다고 하지만 아직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를 감옥보다 열악한 철탑 속에 가두어버린 한 인간의 생명이 위태하게 보인다. 죽음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이전에 그도 중학교 2학년 딸의 학교생활을 걱정하던 단란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저녁 가족과의 맛있는 외식에 행복했을 그도 우리와 똑 같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존론적(實存論的)인 인간으로의 강병재 의장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는 우리에게 결코 이해되지 않는 존재론적(存在論的)적 타인(他人)일 뿐이다. 그리고 강병재 스스로도 개인적인 박탈의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정치적인 존재로 탈바꿈시켰고, 그 후 그도 스스로가 인식하든 못하든 자기 자신의 실존에서 멀어져간 사람이다. 철탑 위의 강병재란 사람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 의장이란 가공의 인물이지,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 강병재는 아니다. 우리가 아는 실존론적인 인식 방법론으로는.

누군가에게는 강병재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더 없이 필요한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철탑위의 매미라는 비아냥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고,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차창 밖의 풍경같은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형법 제173조, 제174조에 의한 가스·전기등 공급방해죄의 미수 용의자이고 또한 동법 제319조 건조물 침입죄의 용의자이자 현행범으로 철탑 아래의 세상에선 단지 체포 대상인 범죄자로서의 존재일 뿐이다. 불행하게도 실존적 존재로 그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비정규직 문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를 말하는 존재로서의 강병재를 인식하기 이전에, 오랜 실업과 피폐한 삶에서 오는 고단함을 단지 노동운동권 과의 관계 속에서 그 실존의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었던 한 나약한 인간, 구원(救援)받아야 할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강병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Sympathy라고 쓰고 나는 공감(共感)이라고 해석한다. 실존의 아픔(Path)을 함께(Sym)하는 것이 공감이다. 강병재도 우리도 허무하기만한 정치적 계산과 수사(修辭)는 집어치우자. 철탑 위에서 밤새 내리는 차디 찬 비바람에 떨다가 아침에 받아든 뜨거운 커피 한잔이 주는 생명의 느낌이 그에게 진정한 실존의 의미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 강병재와 그 실존의 아픔을 가장 진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 현장에 이런 저런 이유로 파견되어 함께 노숙과 같은 밤을 지새워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추위와 싸운 노숙의 밤이 벌써 한 달을 넘겼다.

지금 그에게는 길이 없다. 정치적인 명분이 실존의 허기를 채워주지는 않는다. 당신들의 교회와 성당과 사찰에 기대한 것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23만이 사는 거제에 그의 손을 잡아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서럽다. 그는 괴물이 아니다. 비록 그 스스로가 부정한다고 해도 그도 우리와 똑같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요청한다. 거제시 가장 큰 어른인 거제시장님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그를 감옥이 아니라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찾아보면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소연할 곳 조차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철탑 위에서가 아니라 함께 마주한 테이블에서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괄적인 지역 노동시장의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거제시 지역 노·사·정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끝으로 거제 지역 노사평화를 위한 노·사·정 위원회에 대한 제언은 이글의 말미에 첨부한다.

2. 삼성, 대우 양대조선소도 노조도 이제 변해야 한다.

강병제씨 고공농성 사건은 법적으로는 사내하청기업의 정직원이지만 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대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지역과 대비하면 거제지역의 사내 하청의 여건은 원청과 하청의 임금격차 그리고 하청업체의 재계약율 그리고 하청직원들의 고용안정성등을 고려할 때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강병재 사건을 계기로 갈수록 비정규직의 비중이 확대되는 우리 거제시의 노동시장의 미래와 발전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깊어져야 한다고 본다.

과거 대기업 노동조합의 역할이 조합원 관리와 노사관계에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사내외 저임금 비정규직 문제 및 지역 고용 상황도 대기업 노조의 중요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조합원의 이익”이라는 소아(小我)에서 벗어나, 사내 하청노동자와 지역사회 문제까지 감싸는 대승적인 길로 나서야만 노동조합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우노조와 삼성 근로자협의회는 지역 사회에서의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역할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 노동조합의 “High-Road 파트너십” 같은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High-Road 파트너십이란 예전에는 노동조합원인 근로자의 기술 향상을 위해 공급측면에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에 노동조합의 역할의 중점이 주어졌다면, 이제는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보다 효과적으로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역사회의 발전과 직업의 질을 제고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 노동시장의 핵심문제가 직업의 질적인 측면을 높이는 것에 있다면, 노동조합은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직업의 질을 높이는 지역 비정규직의 문제에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관여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 양대조선소와 노동자들에게 요청한다. 지역 양대 조선소는 지역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절감된 비용으로 정규직 노조의 비위를 맞추는 양극화 귀결형의 노무관리 정책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울러 노조도 조합원의 표와 인기만을 의식해서 회사의 경영상황에 비추어 무리한 요구를 임, 단협 때마다 요구하는 것을 연례행사로 삼아서도 안 된다. 그리고 지역 노동계급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노동 귀족과 노동 천민으로 나눠지는 것은 노동운동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비정규직을 위한 과감한 양보도 필요할 것이다.

노동과 자본은 ‘고용유연성’과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의 해소’를 상호 교환하고 함께 공존해야하는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지역사회와 유리된 대우공화국이나 삼성공화국이 거제시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양대조선소에 느끼는 지역사회의 아쉬움이 작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양대조선소와 동시에 노조나 근로자협의회도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 문제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거제시 거제 지역 노·사·정 위원회에서 다뤄야 한다.

3. 거제 지역 노·사·정 위원회 설립 제안

지역 노사정위원회의 설치 근거는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19조 및 동법시행령 제16조”이다.(그림1. 지역 노사정 위원회 설치현황) 이런 지역노사정협의회는 전국 230개 기초지자체 중 81개 기초지자체에서 도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대비 근로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거제시에서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제도이다.

지역 노사정 위원회 관련 법률에 따라 거제시에 거제시 노사정위원회를 만들 경우, 위원회는 법에 따라 30인 이내의 위원으로 위원장은 거제시장이 된다. 그리고 거제시장이 법률에 의거하여 위촉할 지역노사정 위원회 위원들은
1. 근로자 대표 위원 - 대우조선해양 노조, 삼성중공업 근로자협의회, 거제지역 사내하청기업 근로자 대표,
2. 사용자 대표 위원 - 대우조선해양 이사, 삼성중공업, 양대조선소 협력업체 대표, 거제시 상공회의소
3. 공익 대표 위원 - 거제경실련,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거제 YMCA
4. 지자체 대표 위원 - 거제시 해양조선관광국,
5. 지방노동관서 위원- 고용노동부 거제고용센터 소장
등이 된다. 그리고 거제시 지역노사정위원회는 거제시장과 함께 거제시 노동시장의 현안 해결과 노사평화를 위한 지역협약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강병재의 단신 투쟁으로 지역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할 거제 지역 노·사·정 위원회가 설립된다면 그 의미는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 2011년 현재 지자체별 “지역 노사정 위원회” 설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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