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는데 정작 죽은 사람은 없다(?).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

지난해 초봄 어느날(담당 경찰이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함) 사등면 지석리 천곡고개 근처. 을씨년스런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기분 ×같은 날이었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고갯마루 커버 길에서 뒤따라 오던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앞서가던 오토바이를 덮쳤다. 오토바이에 탄 60대 후반쯤 돼 보이던 노인은 그 자리에서 절명한게 아니고 겨우 목숨만 붙어있었다.

당황한 40대 승용차 운전자가 황급히 119에 신고했고, 60대 노인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노인은 병원에 이송된 이후 한 달 가량을 이승과 저승을 번갈아 머물며 연명하다 결국 숨졌다.

교통사고 사건은 여기까지였다. 비오는 날 있을 수 있는 흔한 사고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건접수 후 경찰이 사고당사자 신원파악에 나섰다. 가해자인 승용차 운전자는 어디에 사는 누구라는 게 금방 밝혀졌다. 그런데 중상을 입은 60대 노인은 주민등록증을 소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연락처를 적어둔 수첩이나 메모 한 장 없었다. 당연히 면식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사고 직후 60대 노인은 말은 못했지만, 의식은 있었다. 경찰이 수기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노인은 한글도 몰랐을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노인의 열손가락 지문을 떠 지문감식을 의뢰했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야. 주민등록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원파악이 가능한 지문조회에서 인적사항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 노인은 주민등록증이 없는 신원불상의 간첩(?)같은 인물이었다. 그 노인은 사람의 형상을 한 분명한 사람이었으나, 법적으로는 사람이 아닌 유령 같은 존재였다.

경찰의 고민이 깊어졌다. 피해자의 신원이 파악돼야 가족에게 연락하고, 행정절차상의 사고처리도 해야 하는데, 이건 뭐 숫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난감했다. 사건현장을 다시 조사했다. 거기에서 아주 작은 단서 하나를 발견했다. 사고 오토바이 뒤쪽 짐칸에 적힌 전화번호였다. 전화소재지는 뜻밖에도 진주였다. 경찰이 전화를 하자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전화를 받았다. 사고 오토바이는 그 수리점에서 오토바이를 고친 적이 있었고, 수리점 관계자는 용케도 그 오토바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찾아간 경찰은 오토바이 소유자의 신원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고, 사망한 60대 노인과 동거관계에 있다는 50대 여성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어렵게 동거녀를 찾아냈지만, 몇 년간을 함께 살았다는 동거녀 역시 그 노인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게 없었다. 동거녀가 전해준 그에 대한 정보는 대략 이랬다. “동거남은 경남일대에서 조경공사 일을 하는 영세한 조경업자로, 몇 년 전 우연히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남은 어릴 때부터 밀양 표충사 얼음골 주변에 있는 조그만 절에서 절밥을 먹고 자랐다고 했다. 부모가 자신을 절에 맡겼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부모 얼굴도 성씨도 몰랐다. 학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자신과 관련된 어떤 기록도 없었다 의료보험이 안 돼, 몸이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경찰은 처음에 이 노인이 진짜 간첩이 아닐까 의심했다고 한다. 60대 노인이 병원한번 가지 않고 어떻게 평생을 살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은행거래를 통해 돈을 모으고 써야 하지만, 신원불상자였던 이 노인은 주민등록증이 없다보니 은행계좌도 만들 수 없었고, 때문에 모든 돈 관리를 현금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조경사업은 조그만 공사라도 꽤 큰 돈이 오간다는 점에서 죽은 노인의 신출귀몰한 돈관리 능력을, 이해당사자에게 직접 듣고도 못 믿을 정도였다고.

▲ 사고 현장인 사등면 정곡 고개 인근 국도.

죽은 노인이 얼음골 주변동굴에 꼭꼭 숨겨놨다는 항아리 속 억대 현금의 실존여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유령(?) 노인이 어느날 갑자기 객사하면서 얼음골 항아리 진실도 영원히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언제한번 시간 날 때 같이 얼음골 동굴 뒤지려 갑시다”라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연고도 없던 노인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고 실존여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유령 노인의 교통 사망사건은 현재 검찰의 항소로 2심재판에 계류 중이다. 얼마 전 끝이 난 1심선고에서 재판부는 가해자인 승용차 운전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가해운전자의 잘못으로 사람이 죽었고, 가족들과의 합의도 안된 사건을 집행유예 처분한다는 건 지나친 관용이라며 항소했다.

이와관련, 가해자 변론은 맡았던 진성진 변호사는 “빗길 교통사고는 흔한 일이다. 잘못도 인정한다. 우리도 정상절차를 밟아 이 사건이 처리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피해자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합의를 누구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답답하다. 재판부도 이같은 정황을 인정해 집행유예로 선고한 것 아닌가”라며 검찰의 항소를 못마땅해 했다.

이번 사건에서 로또 당첨에 버금갈 정도로 큰 이득(?)을 본 것은 가해 운전자의 보험회사였다. 정상적인 사고처리였다면, 피해자에게 억대의 돈을 보상해야 하지만, 법적인 피해자가 없다보니 한푼도 물어주지 않았다. 동거녀가 있기는 했지만, 피해당사자가 신원불상자다 보니 사실혼 자체가 증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유령노인의 장례는 어떻게 처리됐을까. 경찰에 따르면 진주에 있던 동거녀가 죽은 노인의 신병인수를 포기했고, 어쩔수 없이 무연고자로 처리해 거제시에서 연초 충해공원묘지에 안장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새거제신문에서 발간하는 시사월간지 거제IN에 실린 기사 입니다.> 

신기방 기자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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