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불황 한파가 거제전역을 덮치고 있다. 어느 때 보다 소비가 많은 연말인데도 도심상가나 음식점 분위기는 썰렁함 그 자체다.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심리가 소비심리 마저 꽁꽁 묶고 있기 때문이다.

▲ 7일 오후 고현동 시내 중심가의 한 팬시점.지난 11월 중순, X-마스 트리 용품을 팔기위해 내 놨지만, 지금까지 단1개만 팔렸다고 한다.

▲ 고현시내 로드샵 매장내에 전시된 크리스마스 트리. 시내 매장을 다 둘러봐도 트리를 전시한 곳은 이곳을 포함해 다섯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트리위에 뿌린 흰 가루가 불황경기를 상징하듯 생기잃은 색바랜 모습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사라진 연말
경기ㆍ미래 불안에 소비심리 '꽁꽁' 곳곳에서 '장사안된다'

7일 오후 고현동 소재 A팬시점. 해마다 이맘때면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캐롤과 매장 앞쪽에 진열한 X-마스 트리 용품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지만, 올해는 사정이 영 딴판이다. 캐롤 송은 아예 들리지 않고, 구색용으로 갖다 놓은 트리용품도 길가 먼지만 뒤집어 쓴 채 초라하기 그지없다.
팬시점을 운영하는 K모(41)씨는 "X-마스 트리용품 갖다 놓은지 1달 가량 됐는데, 지금까지 딱 1개 팔렸어요. 아무도 안 사 가요. 이곳에서 수년째 장사하고 있지만, 이처럼 안 팔리기는 처음입니다"라며 혀를 찼다.

A팬시점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J미용실. 오전부터 빨래걸이에 걸려 있던 수건이 그대로다. 미용실 원장 J(44)모씨는 "오전 내내 손님이 없었다. 주기적으로 머리를 하러 오는 단골이 있는데도, 요즘은 머리하는 주기도 길어진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인근 재래시장의 사정도 비슷했다. 조선불황이 현실화 되면서 사람들이 아예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한마디씩 했다. 시내 로드 샵 상가에도 손님 발길이 뜸하기는 마찬가지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Y(49·여)씨는 "계절마다 신상품이 출하되고 세일이 시작되면 매장이 북적거렸는데, 올해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특히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매출이 지난해 절반이하로 떨어졌다"고 걱정했다.

대형매장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소비가 특히 많은 이맘때면 매장이 고객들로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어느 매장을 가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손님이 띄엄띄엄 보인다. 예년 같으면 연말 회식 등으로 자리가 남아 나질 않던 음식점들도, 송년모임을 생략하거나 다른 형태로 전환하면서 저마다 손님이 뚝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흥청망청 하던 유흥업소는 조선업체 구조조정 소문까지 나돌면서 아예 파리가 날릴 정도로 위축됐다.

조선경기 불황에서 비롯된 최근의 소비심리 위축은 비단 이들 업종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종플루 여파까지 겹치면서 여행사는 올 봄부터 죽을 쑤고 있고, 택시업계, 병·의원, 전자제품·자동차 판매점, 부동산사무소, 세무회계사, 심지어 학원가까지 불황한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 매각문제로 뒤숭숭한 대우조선. 사원들의 고용불안 우려가 갈수록 깊어지는 분위기다.

고용불안에 지갑 안열어 연말 분위기 '썰렁'
거가대교 개통, 경기부흥 보다 빨대효과 더 걱정

IMF도 비켜 갔다던 거제지역 경기활황이 이렇듯 갑작스레 급냉한 데는 조선경기 위축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세계해운업계의 업황부진으로 조선사 신규수주가 사실상 끊겼고, 일감부족이 현실화 되면서 감원우려와 함께 특근수당까지 줄어들자 근로자들이 아예 지갑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양대조선의 올 수주물량이 예년의 1/10 정도에 머물자 직원들의 심리적 위축감은 생각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자금난에 봉착한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고, 직영사원들도 일감이 줄어 잔업이 사라지면서 각종 수당이 눈에 띄게 줄어든 형편이다. 실제로 최근 수주실적이라고는 대우조선의 벌크선 3척(4억6,000만달러)과 삼성의 크루즈선(11억달러) 우선계약자 선정 1건이 전부다. 

내년부터 대우조선 매각이 본격화 되면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동반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노조와의 극심한 마찰로 지역경기가 한동안 불안할 것이라는 전망이 깔리면서 소비심리를 더 붙들어 매고 있다. 장사는 안되지만, 시장전망이 이처럼 불투명하다보니 모두들 잔뜩 몸을 사린채 '안쓰면서 버틴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내년 말 개통되는 거가대교도 당초 기대한 지역경기 활성화 보다, 의료·유통·교육·유흥 등 상당부분 업종에서 부산 빨대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돼 가뜩이나 불안한 지역사회 미래를 더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 올 말 준공예정인 거가대교. 당초 기대한 지역경기 활성화 보다 의료ㆍ유통ㆍ교육ㆍ유흥 등 상당부분 업종에서 부산으로의 빨대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돼, 가뜩이나 불안한 지역사회 미래를 더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고현동에 사는 조모(35)씨는 "최근의 경기위축은 조선산업 불황에 따른 고용불안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언제 어떻게 잘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누가 예전처럼 흥청망청 돈을 쓸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삼성조선에 근무하는 정모(48)씨는 "삼성과 대우에서 직영사원의 구조조정은 없다고 말하지만, 내년 상반기 이후에도 지금같은 수주불황이 계속된다면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될 것"이라 진단하고, "현재 사내에서는 '너가 죽어야(짤려야) 내가 산다(남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 정도로 다들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기방 기자  sgb@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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