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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岐城)'과 '거제(巨濟)'[연재] 고영화의 거제산책

기성(岐城)은 (1)조선시대에 감사의 전임자 명부, 역대 현령 부사 행적(치적)을 정리해 놓은 책으로 거제 현령 부사의 명부 표지 제목인, 거제의 관풍안(觀風案)이다. (2) 또한 고려시대 983년(성종 2년) 거제현이 기성현(岐城縣)으로 개편됐고, 1018년(고려 현종 9년) 거제현으로 되돌아 불리어졌으니 35년 짧은 기간 동안의 지명인 셈이다. 그러나 그 이후 약 900년간 거제의 별호(別號)로 불리어 졌음은 많은 역사 기록과 더불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성(岐城)에서 "기(岐)"는 뜻을 나타내는 山(메 산)과 음을 나타내는 "지"支(가를 지)의 변음으로 "기"로 읽게 된 글자이다. 신라시대 향찰식 표기로는 "枝"(가지 지)를 말하며 木(나무)와 支(가를 지)로 이루어져 "갈려 나온다"는 뜻이나, 우리 고유어로는 "가지"를 의미한다. "城"은 당시 신라 고려초기 지명 표기에 "땅"이란 뜻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기성(岐城) 지성(枝城) "가지땅" 즉, 중심 지역 밖의 땅, 즉 "변방" 또는 "가장자리의 땅"을 지칭하는 말이다. (단, 조선시대 이후 다른 지역, 새로운 지명은 이와 다르다, 한자의 뜻으로만 표기).

"기성"을 사용한 지명은 우리나라 역사서에 거제를 포함하여 총 4군데가 있었다. (1) 강원도 금성현(金城縣) 조선왕조실록,江原道 金城 岐城面 /여지도서. 기성현(岐城縣)은 본래 고구려의 동사홀군(冬斯忽郡)인데, 신라에서 기성군으로 고쳤고,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다가, 뒤에 현(縣)이 패망(敗亡)하게 되매, 지금 직촌(直村)으로 하였다. (2) 성주목(星州牧) 조선왕조실록, 星山郡 高麗初改今名顯宗時來屬別號岐城. /여지도서. 성산군은 경덕왕이 성산군(星山郡)으로 고치고, 고려초기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 이후로 속현이 되었고 별호로 '기성'이라 불렀다. (3) 조선시대 평안도 의주 '기성연대(岐城煙臺)'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서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4) 그 외 일본서기 "도구사기성 都久斯岐城", "침복기성枕服岐城"이 나온다. 이상과 같이 위의 모든 역사 기록에서, 당시 수도(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라 경덕왕 757년 개명[景德王改之]한 "거제(巨濟)"라는 이름은 클 거(巨)와 건널 제(濟)로 '크게 건너다'라는 한자어 뜻을 가지고 있다. "濟"(건널 제)는 우리나라 고유어 "거리츄다", "거리치다", "구제하다", "거느리치다(물에서 건져내다)"라는 순 우리말의 한자어이며 "巨"(클 거, 어찌 거)는 "(큰) 크다", "어찌" 라는 말 이외는 별 뜻이 없는 글자이다. 그러나 1500년 전의 '거(巨)'는 대부분 의문사 '어찌'로 많은 지명에 사용했다. 실제로 '거제'는 어찌 건널까? 걱정스레 표현하는 '섬 지방'을 일컫는 말이다. '제주(濟州)'는 '물 건너 고을'이다. 하지만 그 뜻을 그대로 꼭 옮길 필요는 없다. "크게 구제할 아름다운 섬" 멋진 말로 쓰인다면 더욱 미래지향적이며 우리 거제를 위해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우리나라 지명중에, 적어도 1000년 이상 오래도록 쓰인 지명은 반드시 우리나라 고유어와의 연관성을 따져 보아야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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