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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건배구호는 '일십백천만'강돈묵 /거제대 교수

   
▲ 강돈묵 교수
기축년(己丑年)이 저물어 가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우리는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우리에게 제공된 일상을 숨쉬고 살면 그만일 텐데, 굳이 그 세월을 나누어 한달 한해를 가름하고 의미를 주는 것은 삶에 매듭을 주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매듭은 서로 연결은 되어 있으면서도 그 객체마다 독립시켜 평가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그래서 살아낸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다음 매듭에서는 더 나은 삶을 꾸리게 한다.

지금 시중에 나가보면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송년회가 한창이다. 여기저기에서 건배구호가 쏟아져 나오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거리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흥청망청 환락에 떨어지지 않고, 차분히 생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데에 박수를 보낸다.

한동안 삶이 힘에 부쳤던 시절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지겨워서 잊고 싶었고, 이 해가 빨리 가기를 갈망하는 뜻에서 망년회라고 칭하여 왔다. 모두 잊고 싶었던 세월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삶이 좀 여유로워지면서 송년회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가는 해를 잘 다독거려 보내겠다는 심사도 있겠지만, 이런 기회를 통하여 구성원의 원활한 화합과 결집을 도모하기도 하고,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짚어보자는 의도도 살짝 밀어 넣어 놓았다. 송년회가 술로 절어버리는 행사가 아니라 생산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조금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까닭인지는 몰라도 송년회의 건배사도 많이 달라졌다.

그 건배구호를 살펴보면 공동체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내건 구호가 많다. 나가자(나라와 가정과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세우자(세상도 세우고 우리의 가정 경제도 세우고 자신도 세우자), 참이슬(참사랑은 넓게 이상은 높게 술잔은 평등하게),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당신 멋져(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저 세상을 향하여), 일십백천만(하루에 한번 이상 좋은 일 하고 10번 이상 큰소리로 웃고 100자 이상 쓰고 1000자 이상 읽으며 1만 보 이상 걷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오늘의 자리에 맞춘 구호도 제법 된다.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구구팔팔 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만 아프고 3일째 죽자), 성행위(성공과 행복을 위하여), 재건축(재미있고 건강하고 축복된 삶을 위하여), 무시로(무조건 시방부터 로맨틱한 사랑을 위하여), 지화자(지금부터 화끈한 자리를 위하여), 니나노(니랑 나랑 노래하고 춤추자), 거시기(거절 마라 시방부터 기막히게 보여주지), 원더걸스(원하는 만큼 더도 말고 걸러서 스스로 마시자), 변사또(변치 마라 사내들아 또 만날 때까지) 등은 이런 쪽의 건배구호로 가름할 수 있다.

이상 기술한 건배구호는 나의 안테나에 잡힌 것들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전에는 그 자리에서의 취흥을 돋우는 건배구호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즈음은 매우 바람직한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삶의 위기감이 목 아래에까지 찼던 것이 조금은 가신 듯하여 다행이다. 늘 절망에서 토해내던 악다구니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그 위에서 자신의 삶의 윤택을 소망하는 모습이 한해를 보내는 자리에서 보인다는 것은,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면서도 그에 임하는 태도는 전보다 훨씬 유연하고 익숙하다. 송년회라 하여 고주망태가 되어 거리를 헤매는 사람도 없다. 적당한 선에서 삶의 찌꺼기를 털어버리고 귀가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다. 처음 외국에서 들어온 망년회의 풍습이 이제 우리의 처지에 맞는 송년 문화로 안착되어가는 분위기다. 이런 모습이 혹여 부족에서 초래된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니길 기대하면서, 민족의 슬기를 느낀다.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끼어 우리도 매사에서 성숙한 모습을 유지할 때가 되었다. 오늘의 우리 모습이 급조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성숙하여 이루어낸 자화상이려니 믿고 싶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도 그렇게 풍족하여 마음의 여유로 이어지길 고대해 본다.

기축년 한해를 보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새로운 힘을 재충전하는 자리로 활용되기를 갈망한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새로운 도약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의 송년회를 갖고, 찾아오는 경인년(庚寅年)의 아침 해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내년 이맘때에는 아쉬움이 없이 송년회에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한해로 만들어야겠다. 아무래도 나는 오늘 송년회의 건배구호로 ‘일십백천만’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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