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채소 양푼이에 비벼 함께 먹어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본사 옥명숙 객원기자가 남다른 열정으로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는 것으로 알려진 옥포초교 이정일 선생을 만났다. 다음은 옥명숙 객원기자의 이정일 선생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아이들과 교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정일 선생님.

5월은 이런저런 행사를 하는 날이 많다. 이런 날이 모두 법정공휴일은 아니며 그 중에 하나인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이다. 기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40여 년 전에도 스승의 날이 있었고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스승의 날을 맞았다. 사회가 변하고 학교를 보는 인식도 많이 변해 이제 스승의 날은 학생이나 학부모 편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고 스승에 대해 갖는 학부모의 존경심도 예전 같지는 않다.

21세기의 한국사회가 매우 다변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학교가 맡은 제도교육의 틀은 굳건히 유지되고 있고 그 중심에 선생님이 자리하고 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거제시 옥포초등학교에 첫 부임한 뒤 벌써 4년차를 맞고 있는 5학년5반 담임 이정일 교사(28세)를 만났다. 이 교사는 남다른 열정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꽤 소문이 나 있다. 처음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렸을 때 언론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지만, 교감선생님을 압박(?)해 간신히 인터뷰가 성사됐다.


▲ 옥포초교 이정일 교사

-선생님, 반갑습니다. 우선 선생님 소개부터 좀 해주세요, 고향이 부산이라고 하시더니 어떻게 거제시 옥포초등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셨나요?

“10여 년 전에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부산교대에 합격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입학을 하지 못했고 부산의 한 대학에서 한 학기를 다니다 아버지를 설득해서 다시 진주교대에 2002년에 시험을 쳐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수능준비 기간이 3개월로 매우 짧았고 임용고시도 대학졸업과 동시에 합격해서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옥포초등학교는 2009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 처음으로 부임해 와서 2년 동안은 6학년을 맡았고 이후로는 계속 5학년을 맡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5학년 5반을 맡고 계십니다. 선생님이 초등학교 다닐 때, 중학교 다닐 때는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는 말이 없고 조용한 순둥이였습니다. 같은 학원을 다니며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지만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으니까요. 중학교 다닐 때는 너무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탓으로 급우들이 바보인줄 알고 왕따를 시켜 불행한 학교생활을 보냈는데 교회를 다니면서 평안과 위로를 찾았습니다. 그때 왕따를 당해본 경험으로 지금 학교폭력에 적극 대처하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들과 교과외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신다고 듣고 있습니다. 텃밭 가꾸기, 마을활동, 학급 블로그도 운영하신다지요?

“5학년5반 텃밭 가꾸기를 합니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을 몰라요. 채소 재배를 하면 아이들의 정서함양에도 도움이 되고 또 아이들이 매우 즐거워해요. 텃밭에 심은 새싹들을 캐서 양푼에 밥을 비벼 먹으면서 정을 나누는 거, 함께 밥을 먹고 뒹굴고 공부하고 놀다보면 더불어 사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겠죠. 양푼에 밥 비벼 먹고 교실에 남아서 저와 공부한 한 아이는 성적이 정말 많이 향상되었어요. 30점대였던 아이가 무려 70점대로 올랐으며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마을활동이란 공동체실험의 일종으로 아이들이 마을의 구성원, 즉 상인, 교사, 변호사 , 문방구 판매점 등 다양한 직업인이 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범을 배우는 것입니다. 스스로 돈을 벌며 함께 살아가는 마을활동을 통해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하게 해 줍니다. 실업자가 생기면 최저 생계를 할 수 있는 감자, 고구마 등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교육활동으로 아이들은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수업수당을 지급해 공부를 하면 돈을 번다는 것도 일깨워 줍니다. 마을활동을 통해 정치, 사회제도를 익히라는 학급경영의 하나입니다. 학급문제는 아이들 스스로 마을회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며 정답은 아니지만 대안을 찾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5월8일 어버이날에 제자들이 '어버이 은혜'를 합창하여 학부모님의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내드렸습니다. 이렇게 제가 맡은 학급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들을 모아두는 블로그를 운영합니다. 6학년 제자들이 졸업할 때는 1년 동안 학교 생활한 내용을 CD로 담아 졸업 선물로 주었어요. 그때그때 학교생활을 기록으로 남겨주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로 다 담아 두지요. 영원한 기록으로 남길 블로그명 <oh-oh 세랑이 친구들/ http://12j12.blog.me>는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겁니다”


▲ 방과후 아이들과 텃밭 채소를 캐 양푼이에 밥을 비벼 나눠먹는 것이 이 교사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40여 년 전 기자도 거제의 어느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그때와 지금은 교단에서 직면하는 문제가 많이 다를 텐데요. 지난 4년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열정만 있고 경험이 부족했던 지난 시간들이 교사로서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2009년에는 우리 반에 특수아동이 4명 있었는데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왕따 없는 세상 만들자고 부르짖었지만 그 모든 것이 그리 쉽지 않더군요.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옆 반 친구가 백혈병으로 죽었는데도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떠나간 빈자리가 안타까워 펑펑 울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뛰노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잘못 가르쳤다는 죄책감에 저의 손바닥을 때린 적도 있습니다”

“가정폭력도 교사로서 방관할 수 없는 일이죠. 의무신고자가 되어 가정폭력을 해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우리사회는 관습적으로 친권이 강하고 판단력이 흐린 아이들의 애매한 태도에 결국 부담을 느끼고 교사로서의 한계를 느끼며 물러서야 했었고,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환경, 문화적 차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특히 새엄마가 외국인인 경우 아이들이 이중으로 입는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 주어야할지가 오늘날 부딪치는 교육의 한계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 다문화 가정 부모를 초대한다고 안내장을 내 주면 1~2명이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며 그 아이들은 안내장을 받는다는 사실조차 상처가 됩니다. 그런 경우 무감각하게 받아가는 아이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숨기는 몸짓으로 얼버무리는 두부류로 나뉘어요. 특히 이혼한 부모와 외국인 새엄마와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이들은 그 아픔과 슬픔들이 깊숙이 묻혔다가 힘들어지면 튀어나와 피해의식으로 자리를 잡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하지 않고 숨기고 말하려고도 하지 않아요”

“가정폭력 같은 경우에도 외국의 경우에는 부모가 문제가 있다면 격리 시키며 법의 보호를 받게 하는데 비해서 우리나라의 제도는 그렇게 해결 해 주지 못하니 상처로 남게 되죠. 올바른 부모가 되려면 부모교육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가정폭력에 경찰력이 개입하는 법이 통과되었으니 사정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 교내에 있는 텃밭

-선생님은 학생일 때 존경하는 선생님은 있었나요? 그리고 교실 뒤에는 독서무지개 현황판이 붙여있는데 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 까요?

“학생일 때 특별히 존경하는 선생님은 없었지만 선교사 짐 엘리엇과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존경합니다. 초등학생이 읽어야 책을 몇 권 든다면 <연탄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철학이야기> 시리즈 같은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적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안정적인 직업으로 생각하여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못된다는 생각이다. 이 교사도 이에대해 "교사 자신은 물론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교사의 헌신적인 아이들 사랑에 대해 주변 학부모들은 "아직도 교단에 이런 분이 계시느냐"고 반문할 정도라고 한다.

순수하고 열정많은, 자신의 삶의 전부를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새내기 선생 옥포초교 이정일 교사. 선생은 있으나 스승이 없다는 우리사회에서 이정일 교사같은 새내기 선생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옥명숙 객원기자 ms0468@han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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