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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가라산(加羅山) 다대포[연재]고영화의 거제산책

   
 
1. 가라산(加羅山) 소개 및 개요 (거제시 자료)

거제의 최남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탑포리 해변에 위치한 가라산은 거제도의 수봉이다. 그 높이가 585m로 노자산과 같은 준령에 있다.  학동몽돌해수욕장 뒷산이 노자산이라면 가라산은 다대마을 뒷산이다. 가라산에는 남해안 왜적을 감시하던 봉화대의 흔적이 있는데 통영 항배골 봉화대와 연결하는 전초 봉화대였다.  봉화대 못 미쳐 기우제를 지내던 기우단이 있다.

고려말 몽고의 일본정벌 때에도 몽고군이 여기에서 일부군단이 출발했다고 기록에 전하고 있으며, 왜구가 침입할 때 이곳에서 씻은 쌀뜨물이 바다에까지 흘러간 것을 보고 절에 많은 병사가 있는 줄 알고 적이 도망  갔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다. 가라산 남쪽 끝에 다대포 성지가 산중봉에 막돌로 쌓여져 있다. 고려시대 성지로 외침을 막기 위한 성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허물어져 그 흔적이 옛 성벽임을 겨우 말해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가라산 남쪽 십리 지금의 다대 부근에 송변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라산에서 내려다 본 해금강은 여의주를 문 청룡이 동해를 향하여 날아가는 형상으로 동으로는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이 마치 용트림을 한 듯 서로 감고 있다. 3부 능선은 잡목으로 이어져 있으며 가파르고 정상은 바위산 이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으며 거제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남해안의 다도해가 안개 속에 가물 그린다. 멀리 남해를 비롯하여 고성만과 한려수도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남서쪽은 한산도 비진도, 매물도,가오도,대소병대도 등 많은 섬들이 둘러있다. 가라산은 거제의 최고봉이며 대양을 향하여 우뚝 솟아있으며 우리 거제의 탄생과 더불어 현재까지 그 질곡과 영광을 같이 한 소중한 거제의 최고봉이다. 거제인이라면 당연히 가라산을 소중히 가꾸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2. 가라산(加羅山) 일대 역사 기록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일본서기)
 
1). 통일신라시대 거제시 남부면 일대를 송변현(松邊縣)이라 했고 다대포가 그 주도이다(각종 고지도에서 증명). 다대포에는 당시 송변현의 주성(主城)인 '다대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신라 경덕왕이 남수(南垂 :남쪽 국경지대)로 이름을 고쳐서, 모두 거제군(巨濟郡)의 영현(領縣)을 삼았다. 고려시대에는 남수(南垂)를 고쳐서 구명(舊名/송변松邊)대로 되돌렸고, 〈거제군〉의 임내(任內)로 삼았으며, 두 현의 인물(人物)이 모두 없어져서 지금 직촌(直村)을 삼았다. (조선왕조실록 지리지 거제현 기록). 가라산 일대는 기원전부터 동북아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 역사관계속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다. 고려시대때 조성된 성터(다대산성 鎭城)가 아직까지 남아 있으며 가야가 존립하던 때에는 백제나 일본 가야 모두가 반드시 이곳을 거쳐 가야만 했던 곳이다. 고대에는 거제도를 '사도도(沙都嶋)' 또는 '가라산도(加羅山島)' 라 불리었으며 당시 일본 동남아와의 해상무역과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에, 지세포와 더불어 다대포가 우리나라 해양도시 중에 가장 번성한 곳이기도 하다. 

   
 
   
 
2). <연려실기술 신라의 속국(屬國)>편에 의하면 "가라국(加羅國) 지금은 어느 곳인지 상세하지 않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멸망시켰다. 《여지승람》에는 거제(巨濟) 남쪽 30리에 가라산(加羅山)이 있어 대마도(對馬島)를 가장 가깝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사료를 유추해 정리해보면, 거제 독로국 이후, 즉 서기 4~7세기 초까지 '가라국(加羅國)'이 거제남부에 위치했었고 일본과의 빈번한 무역이 행한 요충지 거제에 소국이 위치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이 부분은 정확한 사료와 유물이 없어 추정한 부분임을 밝혀둔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김해나 일본, 섬진강변과 서해안으로 이동하는 모든 종류의 선박은 쓰시마 해류를 이용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므로 남쪽 거제도 "다대포, 구조라, 아주, 지세포"를 거쳐 가게 됨으로써, 후에 송변현(남수현)과 아주현(거로현)이 생겨난 계기가 되었다. 거제남부 지역은 백제나 왜(당시 왜는 해양족,海洋族)의 해양 문화와 더 가까웠을 것이다. 기원전300년부터~기원후 8세기 까지 일본으로 가는 모든 선박은 거제도, 대마도, 이키섬을 거쳐 건너갔다. 그러므로 거제도남동부 지역은 해상항로의 거점으로써 그 역할이 지대했다.(거제도 북부 지역과는 환경적인 태생이 달랐다).

3). 고려시대 가라산(加羅山) 유배 기록 2件(유배자 관리 감독 가능한 곳으로 관아, 진영이 있는 곳).
(1) 김문귀가 1330년 가라산(加羅山)방어소에 유배 온 기록으로 볼 때  몽고 일본원정 때부터 수군진영(鎭城)이 설치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 김보(金普)가 1356년에 반원정치(反元政治)가 결행됨에 따라 부원배(附元輩)의 거두였던  기철(奇轍) 등이 주륙되면서 함께 체포되어 장형(杖刑)을 받고 가라산(加羅山)으로 유배되었다. 김보(金普)의 호는 죽강(竹岡),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4). 세종실록 세종2년 1월 1420년 대마도주의 요청에 의해 대마도인이 거제도에 이주한다. "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이 곤란하니 섬사람들을 가라산도(加羅山島 :거제도) 등의 섬에 보내 거주하게 하고 대마도를 조선영토의 주군(州郡)으로 생각하셔서 주군의 명칭과 인신(확인서,임명장)을 내려주신다면 저희는 마땅히 신하의 예절로서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7월23일 대마도주 종씨도 도웅와 라는 인신을 내려주고 자치권을 인정했다.(거제도는 고대로부터 조선초기까지 대마도인과 같은 해상민족(부족,언어,풍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예조에서 계하기를, “대마도의 도도웅와(都都熊瓦)의 부하 시응계도(時應界都)가 와서 웅와(熊瓦)의 말을 전달하기를, ‘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이 곤란하오니, 바라옵건대, 섬 사람들을 가라산(加羅山) 등 섬에 보내어 주둔하게 하여, 밖에서 귀국(貴國)을 호위하며, 백성으로는 섬에 들어가서 안심하고 농업에 종사하게 하고, 그 땅에서 세금을 받아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어 쓰게 하옵소서. 나는 일가 사람들이 수호하는 자리를 빼앗으려고 엿보는 것이 두려워, 나갈 수가 없사오니, 만일 우리 섬으로 하여금 귀국 영토 안의 주·군(州郡)의 예에 의하여, 주(州)의 명칭을 정하여 주고, 인신(印信)을 주신다면 마땅히 신하의 도리를 지키어 시키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도두음곶이[都豆音串]에 침입한 해적의 배 30척 중에서 싸우다가 없어진 것이 16척이며, 나머지 14척은 돌아왔는데, 7척은 곧 일기주(一岐州)의 사람인데, 벌써 그 본주로 돌아갔고, 7척은 곧 우리 섬의 사람인데, 그 배 임자는 전쟁에서 죽고, 다만, 격인(格人)들만 돌아왔으므로, 이제 이미 각 배의 두목 되는 자 한 사람씩을 잡아들여 그 처자까지 잡아 가두고, 그들의 집안 재산과 배를 몰수하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사오니, 빨리 관원을 보내어 처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였습니다.”하였다.

   
 
   
 
3. 가라산(加羅山) 목장 역사 기록.

1) 세종27년 1445년 조선왕조실록, 10월 9일 하삼도 도순찰사 김종서가 각지의 목장 적임지에 대해 아뢰길, "거제현(巨濟縣)의 명진포(溟珍浦)에는 목장을 쌓아 아천(鵝川) 성황당(城隍堂)을 거쳐 가라산(加羅山)에 이르면 3천 필은 놓을 수 있습니다."하니, 그대로 따랐다. (탑보와 가라산에 목장 운영) 

2) 세종28년 1446년
경상도 거제(巨濟) 가라산(加羅山) 목장은 제 1소는 거제 현사(巨濟縣事)로, 제 2소는 지세포만호(知細浦萬戶)로, 제 3소는 옥포 만호(玉浦萬戶)로 나누어 관장하라. 

3) 조선초기는 거제 7목장을 두었으나 단종 즉위년 1452년부터 거제부 목장 9개소 설치, 4개포구 영전을 설치 하였다.

● 거제 7목장은 산달도, 구천동, 탑포, 구영등, 장목포, 구조라포, 지세포 이다.  1678년 숙종 4년 기록중 거제목장 9개소는 칠천도, 가조도, 산달도(당시 거제부), 구천동, 탑포, 구영등, 장목포, 구조라포, 지세포 목장이다.(대동여지도, 신동국여지승람).

   
 
   
 
4. 가라산(加羅山) 봉수대

<거제도 봉망군 자료> 망대와 봉수대가 함께 있는 곳에는 봉망군이라 일컬음.

   
 

● 조선왕조실록 : 봉화(烽火)가 1곳이니, 가라산(加羅山)이 현 남쪽 바닷가에 있다.【서쪽으로 고성(固城) 미륵산(彌勒山)에 응한다. 】
● 제2로 봉수 출발점 : 거제(巨濟) 가라산(加羅山)-- 미륵산(彌勒山)--고성--서울 방향.
 

   
 
   
 
● 지세포봉수대와 와현봉수대는 제2로 연변봉수(가라산,)의 최초 보조간봉(와현,지세포)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출처 : 전국봉수망, 증보문헌비고) --갑오개혁초기 1894년 폐지 됨.
 
1) 우리지역 조선시대 군인 : 진영에 있거나 봉군에 있거나 모두 수자리 살게 했다.
         (수자리 변방군인은 지역에 거주 하면서 군인으로 복무 함.)  
2) 경봉수 : 봉화의 중앙 집합처, 종착점. 서울 남산(목멱산)봉수대
   연변봉수 : 적을 바로 맞는 곳, 봉수 연락체계 시작점 (가라산봉수대)
   내지 봉수 : 경봉수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있는 봉수들

● 우리 거제도의 봉수대는 가라산봉수대가 가장 중요도가 크고 또한 인원수 및 관리자의 직급이 가장 높았다. 별장(別將) 아래 직급이 번장(番將)임

   
 
5. 근대 기록

● 외적을 막고 알리던 곳이 이제는 일본인의 착취의 현장으로 변해 탄식한다는 내용.
1) 慶尙南北道來去案 1904년 4월8일
가라산(加羅山)에는 옛 봉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인데‚ 그 洞任 보고에 의하면‚ 日本船 2척이 材木과 各項 기계를 싣고 와 한편으로 경답(耕畓)에 막사를 짓고 한편으로는 加羅山에 옮겼다고 한다’는 巨濟郡守 權重勳의 보고를 받았고 이후 상황을 馳報하겠다는 보고 제25호.
 
2) 동아일보 1928년 7월13일
巨濟島方面(八) 國防大任 누를 준고 백운(白雲 흰구름)과 노는 가라산(加羅山), 외적 막든 이 산도 지금엔 무용장물 비유탄의 장근기골(髀肉歎 壯筋奇骨,기골이 장대하던 곳이 무용지물이 되어 탄식한다는 뜻).

   
 
   
 
6. 가라산(加羅山) 지명 여러 역사유래.
 
1) 가라산이란 지명의 유래는 서기 503년대의 가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금관가야의 국경이 북으로는 해인사 뒷산(가야산), 남으로 거제도의 남쪽 끝 산까지 였는데, 남쪽의 가야산이 가라산으로 변음? 되었다는 말이 구전 되고 있다.
 
2) [중원고구려비문]의 내용에서 보면 "고구려군이 일본이 주장하는 任那加羅(임나가라)까지 쫓아가 城(성)을 拔本(발본) 索出(색출)하여 즉시 항복시키었다. 또한 任那(임나)를 또 나누어 三加羅(삼가라)가 되었다." 소위 加羅(가라)는 [가야국의] 수로왕(首露王)이 다스린 邑(읍)을 칭한다. 이 가라를 3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투쟁하였기에 오랜 세월에도 서로 원한을 풀지 못했다. 위 자료에서 보듯이 고대에는 가라(加羅)라는 지명을 여러 국가에서 사용한 흔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거제도 가라산(加羅山)의 지명이 확정되어 진 것으로 보아 분명히 원 삼국시대부터 역사적 사실에 의해 이름이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어'羅' : 하라(河羅),조라(助羅),신라(新羅),가라(加羅),을라(乙羅),망라(網羅)등등. '羅'는 고대 한자어로 '땅, 지역'을 의미함.
 
3) 우리나라 옛 지명중에 "가라산" 또는 "가라뫼"라는 지명이 다수 발견되고 있는데 경기도 고양시 가라산(54.5m)도 이와 같은 지명 어원을 가지고 있다. 옛 우리나라 선조들은 유독 어떤 산 위에 서서 보면, "비단처럼 별들이 수많이 모여, 수를 놓은 듯"이 보인다고 하여 그 이름을 "가라뫼"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한자어 표기로는 가라산(加羅山)이라 칭하였다.
 
● 기원 후 200~600년 사이의 일본과 우리나라 해상지역의 역사 지명에 너무나 많은 "가라(加羅)" 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사이에 거제도 가라산(加羅山) 지명이 역사서에 등장하기에 "가야"가 "가라"로 변음 되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다. 
 
   
 
   
▲ 봉망군 수자리 거주 터
   
▲ 다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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