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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밤(除夜)[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그 해가 저무는 때인 연말(年末)을 세모(歲暮) 세밑이라 부르고, 섣달 그믐날을 세제(歲除), 제야(除夜) 또는 제석(除夕)이라 한다. ‘제야(除夜)’는 글자 그대로 어둠을 걷어내는 것, 즉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이 날을 "까치설날(음력)" 이라고 불렀다. 또 차례를 지내기 위해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제물을 장만했다.

거제도는 옛날에, 고깃배를 가지고 어장을 하는 사람들이 섣달그믐날 오후 들물에 뱃고사를 지냈다. 저녁에는 큰 불을 피우고 바닷가에서 폭죽을 터뜨려서, 악귀를 쫓아 정결하게 새해를 맞이했다(고전 사료인용). 또한 거제도는 지금도 선조의 풍습에 따라 섣달 그믐날(음력) 조상제사를 지내는 집안이 많다. 이러한 풍습은 '묵은세배'라 하여 조상신과 집안 어른께 한 해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예법이다. 하지만 이보다 거제도는 변방지역이라, 정월 초하루 아침에 고을 사또나 수군만호, 권관 등이 관아나 수군진영에서 인원을 점검하고 올 한해 해안방위에 대한 충성의 예를 올려야 했기에, 하루 전인 섣달그믐날에 새해 차례를 미리 지내야만 했다. 거제는 우리나라 단위 지역당 가장 많은 수군진영(8진영)이 있었던 역사로 인해, 아직도 이 전통이 마을 집집마다 전해오고 있다.

거제에서 귀양살이 하던 김진규(金鎭圭)선생은 골육들 다 흩어지고 고향 땅은 아득히 멀어 천리 밖 거제에서 눈물 쏟고 홀로 마음 상해 섣달 그믐날 밤, 주저리주저리 읊는다.

1). 제야(除夜). 1691년 섣달 그믐날 밤 / 김진규(金鎭圭).

去日皆堪惜 지난날이 모두 다 애처롭게 여겨져
今胡倍愴情 이제 어찌하여 처참한 심정이 더하는가?
羇蹤滯千里 객지살이 자취가 천리에 막히고
殘歲盡三更 남은 세월이 삼경이 다됐구려.
酒薄斟難醉 묽은 술에 취하기도 어렵고
燈枯剪不明 쇠한 등불 자르려 해도 밝아지진 않네.
身居魑魅地 사는 곳은 도깨비가 미혹하는 땅이지만
爆竹欲誰驚 폭죽소리에 누가 놀라 할까나?

2). 세모에 비는 내리고(歲暮雨中) / 김진규(金鎭圭).

歲暮茅簷下 세모에 초가 집 처마 아래
蕭蕭寒雨滴 쓸쓸한 겨울비가 내린다.
寒暑時紛換 겨울과 여름철이 어지러이 바뀌듯,
榮枯心已寂 번영과 쇠락도 마음에선 이미 고요하다.
身同酒爲偶 몸은 술과 함께 벗이 되고
病與書成癖 병치레와 글씨가 습관이 되었다.
世事旣相間 세상일에 이미 멀어지고
幽居漸自適 궁벽한 삶에서 점차 만족하며 즐긴다.
虗窓俯前浦 창문 틈으로 앞 바닷가를 보니
暮潮送暝色 저녁 밀물타고 해질녘 황혼 빛 보내온다.
可憐波上鷗 가련한 물결 위의 갈매기,
炯炯暗中白 어스름 황혼 속에 흰빛 반짝이네.

3). 1721년 섣달 그믐날 갯마을에 투숙(投宿浦村除夜)한 김창집 선생은 푸른 파도 만 리 파도 일렁이는 궁벽한 낯선 타향에서, 쓸쓸하고 적막하여 등불 아래 한해를 보내며 탄식한다.

竹屋孤燈耿不眠 대나무집 외딴 등불이 빛나 잠 못 드는데
海天愁思倍茫然 근심스런 바닷가 하늘에 더욱 망연하구나.
地維歲序窮今夕 대지가 세월 속에 바뀌어도 오늘 저녁이 궁하여
牢落殊方嘆逝年 의지할 데 없는 이역 땅, 한해 가니 탄식한다.
/ 牢落一作何事 뇌락하여 어떤 일로 한수를 짓다.

4). 섣달 그믐날(除夜) / 김진규(金鎭圭).

年光忽去不遅遅 세월은 홀연히 지나가고, 기다리지 않네.
却似親朋遠別離 도리어 친한 벗을 닮았는지 멀리 이별이구나.
欲把一杯相餞問 한잔 술을 마시며 서로에게 권하며 말하길,
此生能有更逢時 이승에서라도 다시 좋은 때를 만나 살자꾸나.

客裏無心效頌椒 무심한 객지 생활, 송초(頌椒) 술을 올리는데
孤燈相伴意蕭條 서로 짝지은 외딴 등불에 마음 쓸쓸하다.
一年行逐三更盡 일 년 동안 내쫓긴 밤 이슥토록
千里空添兩鬢凋 천리 밖에서 공연히 양 귀밑털만 시들었네.
海外風濤兄弟散 바다 너머 바람과 물결이 형제를 나눠놓고
天涯音信母妻遙 먼 변방에선 어머님과 아내 소식 아득하다.
愁人每恨寒宵永 시름겨운 이는 매번 한스러워 추운 밤이 긴데
此夜慇懃坐到朝 오늘 밤도 은근히 아침까지 앉았구나.

[주] 송초(頌椒) : 고대 중국에서는 음력 설날에 악귀를 쫓는다는 의미에서 "도소주(屠蘇酒)"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도소주는 처음에는 산초(椒)를 주원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러한 풍습을 "송초(頌椒)"라고 하였다. 후에 도소주는 산초에 다시 잣나무 잎을 가미하였기 때문에 "초백주(椒栢酒)"라고도 하였다. 중세 이후 중국에서는 이 "송초"의 풍습이 크게 성행하여 음력설날이면 집집마다 이 도소주를 담아놓고 마셨는데, 그때는 산초, 잣잎, 붉은 팥 등을 섞어서 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남북조시대의 유명 시인 유신(庾信)에게 <송초>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에 이미 이러한 풍습이 성행하였습을 알 수 있다. 그후 "산초(椒)"는 설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설날에 하는 축사를 "초화송(椒花頌)"이라 한다.

5). 겨울밤(冬夜) / 김진규(金鎭圭).

歲暮宵方永 세모의 밤이 길어
愁多夢亦驚 잡다한 근심에 꿈꾸다가 놀란다.
暗窓時自響 어두운 창은 때마다 울리고
風雨送寒聲 비바람은 오싹한 소리 보낸다.

海風吹破窓 해풍 불어 창문이 째지고
山雨灑叢竹 산비가 대숲에 내린다.
長夜何時晨 기나긴 밤, 언제쯤 새벽이 될까?
寒衾獨自宿 겨울 이불 덮고 홀로 잠만 청할 뿐.
 

뉴스앤거제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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