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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宇中씨를 위한 변명[칼럼]유진오 / 뉴스앤거제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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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1일자 뉴스앤거제에 게재된 ‘잠수함과 김우중’이란 필자의 칼럼에 대한 반향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경향 각지로부터의 많은 뉴스앤거제 독자들 의견은 대다수가 긍정적이었으나 8대2의 비율로 ‘역사의 죄인’이라거나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준 장본인’이라며 ‘현실 기업경영 참여는 반대’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비록 소수 의견이지만 기업가는 실패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잘못입니다. 대우그룹의 부실을 뒤치다꺼리하느라 공적자금이 무려 30조원이나 들어간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김우중 씨에겐 분명히 과(過) 못지않은 공(功)이 있습니다. 막판에 나라경제에 피해를 줬지만, 그 피해 이상으로 엄청난 이득을 안겨 준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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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하순으로 기억됩니다. 친지 두 분과 일본을 여행하던 날 일본신문과 방송의 톱을 장식한 기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도요타 자동차가 러시아에서 생산 공장을 기공했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공장이 준공되면 연간 20만대의 도요타 자동차를 생산하여 러시아에 공급할 뿐 아니라 북유럽시장 전초기지로 활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날 한국 신문과 방송의 톱뉴스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5년8개월만의 해외도피 체류에서 귀국해 검찰로 연행되는 모습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거나 인수했던 김우중 회장은 검찰에 연행되고, 10년 뒤 러시아에 생산 공장을 기공한 도요타는 톱뉴스 메이커가 된 것이었습니다.

달리 보면 김우중 회장은 일본 도요타 자동차나 미국의 GM보다도 10여년을 앞서 세계의 신흥시장을 내다보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89년 김우중 회장 저서)며 세계 경영을 실천한 기업인이었습니다.

대우그룹 해체가 없었더라면 대우자동차는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인도, 이집트 등 자동차 신흥시장을 확실하게 선점(先占)하고 있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합니다.

김우중 회장의 비즈니스 능력은 특출했습니다. 1960년대 초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으로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보다 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때 우리의 경제발전 전략은 노동집약 산업에서 생산되는 중저가 제품을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것이었고 주력상품은 신발과 섬유봉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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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은 1967년, 불과 500만원으로 세운 회사를 98년 말 재계 서열 2위 그룹으로 키웠습니다. 1998년 대우그룹의 연간 수출 규모는 17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의 13.3%에 달했습니다. 그의 강력한 무기는 ‘수출’ 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제품이 무엇이든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하는 ‘판매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상인’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선진국인 프랑스든 상대적으로 뒤처진 베트남이든 가리지 않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수출 실적을 올렸습니다.

세계화란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87년, 그는 ‘세계 경영’을 내걸고 외국으로 내달렸습니다. ‘하나가된 세계 시장에서 제조, 판매, 투자하는 무국적 기업이 대우의 지향(指向)’이란 그의 경영 사상을 다른 기업들은 10여년 후에야 뒤따라 실천했습니다.

김우중 회장만큼 ‘무한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남들처럼 적당하게 회사를 키워 적당히 만족하며, 인생을 즐기려 했다면 ‘대우그룹의 해체’는 없었을 것입니다.

나이 들고 지위가 생기면 누구나 즐긴다는 골프도 시간이 아깝다며 배우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서류가방 하나 달랑 들고 수행비서와 함께 공항 식당에서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며 전 세계를 누비던 그였습니다. 김우중 회장에겐 회사를 끝없이 키우려 한, 오늘의 기업인들에게 찾아보기 쉽지 않은 기업 욕심이 대단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지나쳤던 것이 문제였다는 게 전문 경영인들의 지적입니다.

대우그룹은 해체 직전 83조원의 자산에 62조원의 매출을 일으키며 41개 국내 계열사와 396개 해외 법인을 거느렸습니다. 김우중 회장이 이룩한 대우의 글로벌망, 특히 옛 소련의 붕괴 이전부터 착실하게 닦아온 동유럽권과 베트남, 인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과의 관계로 이룩한 ‘신흥시장 연고’의 상실을 아쉬워하는 경제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 외국 경제분석 전문기관은 대우그룹 해체 이후 “세계에 알려져 있는 대우그룹의 브랜드 값이 100억 달러를 넘는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날 세계 각국에 쌓아온 대우의 공신력과 대우그룹이 키워온 훌륭한 인재들은 그냥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국가적 자산입니다.

S형!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 체제로 들어간 시점이 국가적으로 ‘외환위기’라는 특수상황에서 벌어진 것이고, 기업윤리에 대한 원죄도 대우에만 덮어씌우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는게 냉정한 시각입니다. 특히 대우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오히려 ‘투자이익’을 거두고 있는 기업이 대다수임이 현실입니다.

김우중 회장의 상인으로서의 특출한 능력과 우리 경제에 기여한 공로는 냉정한 잣대로 평가되고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토록 어려운 60년대, 70년대 경제여건 속에서 세계적 기업으로서, 이른바 ‘한(韓)민족시대’를 열어가는 개척자로서의 기업인 김우중 씨가 한국경제에 기여한 공로는 제대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대우의 흥망성쇠는 한국 산업자본주의의 축소판이며 한국 산업사(史)의 귀중한 자산이자 살아있는 경영학 교과서이기 때문입니다.

S형!
창사 40주년을 맞은 대우조선해양은 종사원 4만 명(직영 1만3천명, 협력사 2만7천명)의 대기업으로 성장, 여의도의 1.5배 크기인 1백40만평 부지와 7km의 의장 안벽을 갖추어 연간 대형 상선 70척과 대형 해양플랜트 10기, 잠수함 2척, 구축함 3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는 세계적 조선회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례 없는 불황이라던 지난해 12조원의 매출을 올린 대우조선해양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실적은 물론 거제의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큰 공을 생각하면 김우중 회장은 더욱 잊을 수가 없습니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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