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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민요 '쌍금쌍금 쌍가락지'[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조선후기에 이르러 사대부 사이에서도 민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고, 백성으로부터 애민의식이 점철된 동력이 생겨나, 현실주의적 문학세계에 공감했고, 민중들의 생활양상과 감정을 나타낸 민요를 한시로 수용하기에 이른다. 유몽인 홍만종 최성대 이사질 이유원 홍양호 정약용 이양연 이학규 등은 이에 긴요한 역할을 한 분들이다.

민요에 대한 근대적인 의미로는 민중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의의가 있다. 민요한시야말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문학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민요한시 개척한 분 중, 이학규(李學逵, 1770∼1835년) 선생은 거제도 지인인 유한옥(兪漢玉)의 집을 2차례(1810년, 1821년)나 방문해 거제민요 <기성마고사(歧城蘑菰詞) '거제표고버섯찬가'>를 7언 한시로, <쌍랍환(雙鑞環) '쌍금쌍금 쌍까락지'>를 5언 한시로 옮겨 놓았다. 거제시들 중에는 '거제 기녀' '죽림포' '죽림루' '은적암(隱寂庵)' '정수사(淨水寺)' 등 수십 편의 작품이 있다. 그의 작품은 표현에 사실성이 두드러지고 내용에는 현실성이 부여되었다. 거제면 외간초등학교 입구 '장군돌'은 선생의 거제 자취로 남아 전한다.

다음은 쌍가락지 민요를 한시로 바꾸어 놓은 이학규(李學逵) 선생의 작품인데, 오빠가 누이를 모함한 데 대한 항변으로 이어지는 사설로써 경상도 지방에 널리 불러진 유행민요이다.

1). 쌍랍환(雙鑞環) 쌍가락지 노래 / 이학규(李學逵,1770년~1835년).

纖纖雙鑞環 쌍금쌍금 쌍가락지
摩挲五指於 호작질로 닦아내어
在遠人是月 먼 데 보니 달이로세
至近云是渠 젙에 보니 처자로세
家兄好口輔 오랍 오랍 울 오랍씨
言語太輕疎 거짓말씀 말아주소
謂言儂寢所 처자애기 자는 방에
鼾息䉶吹如 숨소리도 둘이로세
儂實黃花子 나야 본디 국화씨라
生小愼興居 애리서로 단정했소
昨夜南風惡 동남풍이 디리 불어
窓紙鳴噓噓 풍지 떠는 소리라요.

여동생이 자는 방에 바람이 불어 문풍지가 떠는 소리를 오해하곤, 오빠가 여동생을 의심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민요를 부른 여성 가창자들은 자신들을 오해한 오빠에 대한 원망을 노래하고 있다. 현재 거제지방에 구전되는 <쌍금쌍금 쌍까락지>민요는 '삼삼기' '모내기' 등을 하면서 불린 부녀 유희요이다. 거제의 민요는 대부분 4․4조 4음보율이 기본을 이룬다.

2). <쌍금쌍금 쌍까락지(Gold Twin Rings)> 거제시 상문동 배천수, 일운면 망치 제명순.

"쌍금쌍금 쌍가락지 / 호적질로 딱아 내어 / 먼데보니 달이로세 / 젓태 보니 처자로세. 처자애기 자는 방에 / 숨소리가 둘이로세 / 천대 복숭 울오랍씨 / 거짓 말씀 말아주소. 꾀꼬리가 기린 방에 / 참새같이 내 누었네 / 동남풍이 디리 불어 / 풍지 떠는 소리라요"

거제는 150 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결백을 주장하는 위 민요에다가 지조를 강조한 사설을 덧붙이게 된다. '마을아래 가까운 바다에 나가 황복어 잡아먹고 자는 듯이 죽어, 먼저 간 임 곁으로 가련다'라는 내용인데, 독이 든 갈복쟁이는 바닷가 거제도의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

"야아래다 반바당에 / 알쑹달쑹 갈복쟁이 / 아리담쑥 집어먹고 / 꽃과 같은 임오품에 / 자는듯이도 죽고지야."

민요를 한시로 옮길 때, 운율에 맞추고자 하는 방법은 그리 간단치 않다. 박제가는 "번역을 하면 말이 비슷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정황을 그려낼 수 없다"고 실토했다. 독자가 한시를 읽으면서 민요의 흥취를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학규는 민중들의 생활양상과 감정을 나타낸 민요의 중요성을 정약용과 함께 인식해, 부녀자가 모내기 하면서 부른 민요시를 5언 한시로 옮겨놓은 <앙가오장> 5장을 지었다. 특히 농가의 민요(田家謠)는 조선후기 여러 사람들이 옮겼는데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설시조와 비슷한 점이 많아, 당시에 민요와 사설시조가 서로 넘나드는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이학규의 사설중심요 시집살이요로써 <앙가오장 秧歌五章> 中, <친정가는소리>는 제2장에 그 내용과 표현의 일부가, 그리고 <쌍금쌍금쌍가락지>는 제3장에 거의 그대로 한역되어 있다. 두 악보는 모두 1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창유희요를 악보로 정리한 것은 이것들이 처음이다.

3). 친정 가는 소리 / 이학규(李學逵).

今日不易暮 쉬이 저물지 않는 하루
努力請揷秧 논 모내기가 힘들구나.
秔秧十万稞 십만 벼 모를 쪄서
稬秧千稞強 천개 모내기 괴롭네.
秔熟不須問 벼가 자랄지 모르겠지만
稬熟須穰穰 벼가 익어 풍년들면
炊稬作糗餈 벼로 쌀떡 만들어
入口黏且香 먹으면 찰지고 맛나겠지.
䧺犬磔爲(月+寉) 살찐 수캐를 차버리고
嫰鷄生縛裝 어린 닭을 묶어서
持以去歸寧 손에 들고 친정아버지 뵈려 가는데
時維七月凉 때는 서늘한 7월 달,
儂是預嫁女 너는 출가외인
総角卽家郞 총각은 이제 집의 아들이고
儂騎曲角牸 너는 걸터앉은 뿔 굽은 암소,
郞衣白苧光 흰모시 사내 옷이 빛나도다.
遅遅乎七月 지루한 7월이여
歸寧亦云忙 친정아버지 바쁘다하니
但願七月後 7월 이후에 바라건대
霖雨九旬長 장마가 구십일 내내 이어지길.

1801년 신유옥사에서 천주교도로 몰려 24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1824년 아들의 청으로 풀려났으나 영남을 두루 다니다가 충주 근처에서 불우한 생애를 마쳤다. 김해 유배기간 중 오직 문필에만 전념했는데, 특히 정약용과 자주 교류하면서 그의 현실주의적 문학세계에 공감했고, 유배지 민중들의 생활양상과 감정을 나타낸 작품을 발표했다. 시에 있어서 작품의 특성은, 민중의 어려운 현실을 주제로 부각시켜 형식이 자유로운 악부시와 고시를 많이 지었으며, 민요를 한시화하거나 방언을 시어화 했고, 절구나 율시 등의 짧은 형식보다는 긴 시를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에 있어서 작품의 특성은 첫째, 민중의 어려운 현실을 주제로 부각시켰고, 둘째, 형식이 자유로운 악부시와 고시를 많이 지었으며, 셋째, 민요를 한시화하거나 방언을 시어화했고, 넷째, 절구나 율시 등의 짧은 형식보다는 긴 시를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경기사 己庚紀事〉·〈영남악부〉·〈해동악부〉·〈앙가오장 秧歌五章〉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총 1,480여 편의 글이 전하는데, 주로 시문이다. 저서로는 필사본 〈낙하생고〉 등 20여 책이 있으며, 1985년 영인본 〈낙하생전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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