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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가 우암네트워크의 발상지가 되자[연재]윤원기 물얘기꾼 watercolumnist

   
 
우암 송시열은 17세기를 관통하는 대학자이고, 대정치인이며 영남지역에서는 기피인물이다. 기호학파 노론의 거두로 영남학파 남인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여러차례 논쟁을 통하여 일진일퇴하였으나 종국에는 후학들로 말미암아 조선시대에 우암 송시열은 우뚝 섰다.

그래서 영남지역에는 노론의 거두 송시열를 배향하는 곳이 드물다. 유배지 거제에도 서원이 있다. 반곡서원이 유일하다. 우암송시열을 배향하는 곳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반곡서원의 가치가 높다 하겠다(우암을 배향하기 위하여 덕원·화양동을 비롯한 수많은 지역에 서원이 설립되어 전국적으로 약 70여 개 소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중 사액서원만 37개소였다.)

그런 반곡서원이 복원됐다. 『거제시는 21일 거제면 동상리 반곡서원에서 지역 유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갖고 서원을 일반에 공개했다. 25억 원을 들여 복원된 반곡서원은 3182㎡ 부지에 우암사, 동재, 서재, 동록당, 비각, 고직사, 강당 등 모두 14동이 복원됐다.

이 서원은 조선 중기 우암 송시열 선생이 거제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떠난 뒤 1704년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거제 유림에 의해 창건됐다. 이후 거제지역의 유교문화 창달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지만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폐지되는 아픔을 겪었다. 1974년 거제 유림이 다시 복원했으나 콘크리트 기둥과 시멘트 기와를 사용하는 등 전통 서원으로 제대로 복원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시 관계자는 "300년 만에 원형대로 복원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은 물론 거제유교문화 부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송시열 초상

거제 유일의 반곡서원 복원을 널리 알리고, 유교 문화를 재조명하고, 문화재 지정 추진을 위한 학술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학술대회는 한남대 충청학 연구소 주관으로 열렸다. 한기범 한남대 교수(충청학 연구소장)는 '반곡서원 복원의 의미와 우암 송시열', 김문준 건양대 교수는 '반곡서원 배향인물의 학술과 사상', 고영화 씨는 '반곡서원 배향인물과 거제', 오석민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반곡서원의 관광문화자원적 성격과 그 활용방안'에 대해 연구 발표했다.

반곡서원은 거제만의 서원이 아니라 전국의 서원이 되어야 한다. 우선 대전,충남,충북지역과의 교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충남 옥천 구룡촌(九龍村) 외가에서 태어나 26세(1632)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뒤에 회덕(懷德)의 송촌(宋村)·비래동(飛來洞)·소제(蘇堤) 등지로 옮겨가며 살았으므로 세칭 회덕인으로 알려져 있다-지금의 대전과 옥천지역이다). 이곳의 역사,문화,사적 등과 연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이 꾸며졌으면 한다. 또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우암배향 서원 지도를 만들어 지자체와의 문화교류를 시도하여야 한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퇴계 등 영남학파의 땅, 경북 청송에도 부남면 구천리에 병암서원이 있어 특이성을 인정받고 있다.

유배지로 거제를 잠시 다녀간 우암 송시열은 거제를 전국에 알릴 수 있는 반곡서원을 남겼다. 참 고마운 일이다.

가칭 우암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우암학을 열러갔으면 한다. 거제라는 섬에서 이런 일들을 한다는 것은 전국적인 주목과 가치 큰 일이다. 현재까지도 논란의 인물이기에 그 뜻이 더욱 크다.

조선 후기의 문신 송시열의 초상화. 작자 미상. 비단 바탕에 채색. 67.3㎝*89.7㎝. 국보239호.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그림에는 1651년에 송시열이 지은 제시와 정조가 1778년에 쓴 어제찬문이 들어 있다. 복건에 유복 차림을 한 좌안7분면의 반신상으로, 사후에 숭모의 마음에서 생시진본을 범본으로 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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