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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龜船) 한시(漢詩)편[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거북선(龜船)은 거북 모양의 전투용 공격함(攻擊艦)이다. 조선중기 이순신 장군이 처음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 초기 1413년과 1415년 벌써 그 기록이 2번이나 왕조실록에 등장한다. 태종실록에서 이르길, “거북선(龜船)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다시 견고하게 만들어 전승의 도구로 만드소서.“라고 적고 있다.

거북선은 이미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에 제작·사용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이순신에 의하여 철갑선(?)으로서의 거북선이 재창제하여 실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철갑을 둘렀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지금까지 없으나 18세기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은 그의 시편에서 재질은 감나무였고 갑옷을 둘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북선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적의 배에 뛰어들어 무기를 들고 싸움을 하는 왜적의 수군 전술 즉, 등선육박전(登船肉薄戰)에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여말선초 대륙은 명나라의 등장으로 안정을 되찾자, 해상을 노략질하는 왜놈들을 물리치기 위해, 병기와 군선 전함을 전략적으로 개편하고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등장한 것이 귀선(龜船, 盲船)이었다. 조선초기 맹선[盲船 장님배, 龜船 전투 중에 상황(시야) 확보가 어려워 이렇게 불렀다.]을 이순신과 나대용이 전투용 전함으로써,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추도록 재설계 제작된 당시 세계최고의 공격함이었다.

또한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통제영 거북선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조선후기 정조 때에는 전국에 40척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와 비교해 그 크기도 조금 커지고 기능 등도 조금씩 달라졌다. 거북선은 1894년 각도의 병영·수영이 폐지될 때까지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거제도는 조선후기에 8진영을 갖추었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단위 지역당 최다(最多) 수군진영을 갖추었다. 특히 지세포•옥포•가배량 수군진영에서 각각 1척씩, 총3척의 귀선(龜船)을 1894년 진영이 폐지될 때까지 보유했다. 거제부 수군진영에 있었던 귀선(거북선)의 한 척당 탑승인원을 살펴보면, 기패관(旗牌官) 1명, 도훈도(都訓導) 1명, 사부(射夫) 18명, 화포수(火砲手) 10명, 포수(砲手) 24명, 타공(舵工) 1명, 요수(繞手) 1명, 정수(碇手) 1명, 능노군(能櫓軍) 120명으로 총177명이 탑승했다.
 
전라좌수영 거북선(全羅左水營龜船)은 조선 중기 명장인 이순신(李舜臣,1545~1598)과 나대용(羅大用, 1556~?)제작한 것으로 통제영귀선(統制營龜船)과 비슷하다. 3층 구조로서 크기는 통제영귀선과 거의 같다. 판옥선에 개판(蓋板)을 씌운 형태는 초기 거북선형태에 가깝다. 이것의 장점은 이동과 동시에 포격을 할 수 있으며 총구와 포구가 높고 많아 적을 제압하기 쉽다는 것이고 단점은 배가 무겁고 3층에 배치된 포가 지상을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충무공전서에 따르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 구선(龜船)의 척도(尺度)와 ‘길이 및 폭(幅)(=장광(長廣))’은 통제영(統制營)구선과 대략 같으나, 단지 ‘거북머리’ 아래에 귀두(鬼頭)를 새겼으며, 복판(復版) 위쪽으로 ‘거북 무늬 판’을 그렸으며, 좌우(左右)에 각기 2개의 문(門)이 있으며, ‘거북머리’ 아래에 포혈(礮穴)이 2개, 현판(舷板) 좌우에 포혈(礮穴)이 각이 1개씩 있으며, 현란(舷欄) 좌우에 포혈이 각기 10개씩이 있고, 복판(復版) 좌우(左右)에도 포혈(礮穴)이 각기 6개 있고, 좌우(左右)에 노(櫓)가 각기 8개씩 있다.[全羅左水營龜船 尺度長廣 與統制營龜船略同 而但龜頭下 又刻鬼頭 覆板上 畫龜紋 左右各有二門 龜頭下礟穴二 舷板左右 礟穴各一 舷欄左右 礟穴各十 覆板左右 礟穴各六 左右櫓各八]”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전해오는 각종 거북선(龜船)의 시편을 살펴보자.

   
 
1) 귀선[龜船] / 조현명(趙顯命 1690~1752)
制度皆糟粕 제도가 모두 찌꺼기였는데
神機活潑天 신묘한 기략을 굉장히 크게 소생시켜
指車非古有 가리킨 수레는 예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流馬又誰傳 목우유마(木牛流馬) 또한 뉘가 전하랴.
島冦焚都日 섬 도적이 날마다 도시를 불사르니
將軍誓海年 장군은 그 때에 굳게 맹세하였다.
滄溟橫萬舶 큰 바다에서 수많은 배가 가로지르며
保障屹三堧 삼면의 바다를 확고히 보장하네.
擬訖誅鯨▣ 마침내 고래와 악어를 물리치듯
嫌非使馬便 거리낌 없이 말을 부려 달렸다.
鷁頭危易墊 돛대의 익두(鷁頭)가 쉬이 물에 빠져 위태하고
鰌尾礙難旋 해추(海鰌)의 꼬리가 어지러이 돌며 거치적거리네.
運智羲皇後 복희씨(伏羲氏) 황제 이후에, 지혜를 짜낸
覃思洛水邊 낙동강 물가에서 깊이 생각하였다.
伐材流蔽柹 벌채한 감나무 재목이 뒤덮여 떠도는데
爲制取巢蓮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서였다.
穹背疑書赤 활의 뼈대에 새긴 붉은 글자처럼
虗心象洞玄 형상이 검고 그윽해 거리낌이 없어보였다.
成形宜長百 온갖 길이를 짜 맞추어 형체를 이루고
藏甲恰容千 갑옷으로 감추니 흡사 멋진 모습이었다.
出沒波濤裏 파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더니
縱橫矢石前 화살과 돌 앞에서 종횡무진 다닌다.
用仍舟楫利 배에는 노가 이롭게 쓰이듯
功有壁城堅 벽성(壁城)을 견고히 한 공적이 있다네.
已喜師鷹擊 군대를 엄히 다스려 참 든든하니
寧愁賊蟻緣 개미 같은 적을 어찌 근심하랴.
神鋒風電激 신검(神劍)은 바람 속 번개를 격렬히 일으켜
爀業日星懸 혁업(爀業)이 해와 별처럼 매달렸네.
奇計存延李 이순신이 이끈 기묘한 계책이 있었으니
單師捷涬權 외로운 군대는 유리한 형세를 이용해 승리하였다.
千秋麟閣上 오랜 세월동안 인각(麟閣)에서 살피면서
宜爾讓龜船 마땅히 너는 거북선에게 사양해야 한다.

[주1] 목우유마(木牛流馬) : 중국 삼국 시대, 식량을 운반하기 위해 제갈량이 소나 말의 모양으로 만든 수레.
[주2] 익두(鷁頭) : 물새의 일종인 익새(鷁)를 돛대 끝에 만들어 다는데, 그것을 바람을 잘 탄다는 뜻이다.
[주3] 해추(海鰌) : 바다의 미꾸리라고도 하는데 그 크기가 고래의 몇 10배나 된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다. 따라서 해추[海鰌]는 재빠른 병선(兵船)의 일컫는다.
[주4] 인각(麟閣) : 조선 시대, 공신과 그 자손을 대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 

2) 귀선[龜船] / 강위(姜瑋 1829~1884)
神龜積世化長舟 신령스런 거북이 여러 세대에 걸쳐 긴 배로 화(化)하여
江漢樓前萬里流 강한루(江漢樓) 통영 앞 바다에서 만 리를 달린다.
曉起搏桑看日出 새벽에 일어나 동쪽바다의 일출을 보는데
天風吹上六鰲頭 하늘 바람이 불어 오른 곳에, 여섯 자라가 머리가 떠받치네.

[주1] 강한루(江漢樓) : 강한(江漢)은 군사요충이며 양자강과 한수가 만나는 곳으로, 이름난 중국 호북성의 경승지라고 한다. 1840년에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李升權)이, 여기 경남 통영시 통제영 내에 누각을 지을 때 추금(秋琴) 강위(姜瑋)가 충무공의 위업을 강한과 관련된 고사에 연관 지어 강한루(江漢樓)라 명명했다. 현 누각은 전형적인 조선의 팔각지붕 양식으로 1988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주2] 박상(搏桑) : 동쪽 바다의 해 돋는 곳에 있다는 신목(神木)을 이르는데, 또는 그 신목이 있는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3] 육오(六鰲) : 다섯 선산(仙山)을 떠받치고 있다는 여섯 마리의 큰 자라를 말한다. 발해(渤海)의 동쪽에 깊은 골짜기가 있는데, 그 안에 대여(岱輿), 원교(圓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의 다섯 선산이 있다. 이들은 모두 바다에 떠 있으므로 항상 조수를 따라 오르락거리니 상제가 떠내려갈까 걱정스러워 자라로 하여금 머리로 떠받치게 하였다한다.

   
 

3) 전선귀선[戰船龜船] / 오횡묵(吳宖默,1834~?) 1886년 영남향별사, 고성부사(固城府使, 1893~1894년).
靑雀黃龍得美名 청작황룡(靑雀黃龍)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어
龜船創制最奇形 거북선을 창제했는데 정말로 기이한 모양이다.
莫道至今多朽敗 지금은 많이 썩어 뒤처졌다 말하지 말라.
由來神物老愈靈 원래부터 신물(거북선)은 오래될수록 신령하다네.

[주] 청작황룡(靑雀黃龍) : 큰 배에 청작(靑雀)과 황룡(黃龍)으로 치장한다. 청작(靑雀 물새의 이름)에는 고운 빛깔의 해오라기를 그리고 黃龍에는 누런 용을 그리는데 큰 배가 나루에 어지러우니 무지개가 사라지고 비가 개니, 햇볕은 운구(雲衢하늘)에 통한다.

4) 통영누선[統營樓船] 통영 다락배. 통제사 부채면의 글과 버드나무에 취하여(醉書柳統制扇面) / 이소한(李昭漢).
控制藩維壯 장한 번유(藩維)가 말고삐를 당기니
將軍氣槩雄 장군의 기개 씩씩하네.
樓船掛片席 이층 다락배 한쪽 자리에 앉아
大海駕長風 넓은 바다 향해 장풍타고 달린다.
天水相圍遠 하늘과 바다가 저 멀리서 서로 경계 짓고
雲煙一望空 한번 허공을 바라보니 뿌연 구름이네.
朝宗萬折意 중국 하수가 결국 동쪽으로 흘러가듯,
此路可能通 이 길은 가히 능통하리라.
積水茫茫闊 모인 바닷물은 넓고도 아득하고
遙山點點靑 먼 산은 점점이 푸르다.
長天霽景豁 비 개인 높은 하늘 햇살 뚫려 내리니
孤帆夕陽明 외로운 돛단배 석양에서 밝다네.
畫角當秋鬧 화각(畫角)은 가을마다 시끄러워지니
銀鱗入座腥 은빛 물고기 놓인 좌판이 비릿하다.
男兒破浪志 남아가 물결 헤쳐 나가고자 하는 마음은
悔作一書生 이제야 후회하는 서생보다 낫다네.

[주1] 공제(控制) : 마술(馬術)에서 고삐를 잡아당기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일, 제압하다, 제어하다.
[주2] 번유(藩維) : 번국(藩國). 나라와 조정을 수호하는 사람에 비유한 말.
[주3] 만절조종의(萬折朝宗意) : 중국의 하수가 모두 동쪽을 향하면서[萬折必東]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朝宗于海]에서 연유한 것이다.
[주4] 능통(能通) : 능히 오거나 가거나 함.
[주5] 화각(畫角) : 목기 세공품의 공예기법, 옛날 군중에서 쓰던 대나무나 가죽 따위로 만든 나팔의 일종.  
[주6] 송풍파랑(乘風破浪) : '바람을 타고 물결을 헤쳐 나간다'라는 뜻으로, 원대한 포부를 비유할 때 쓰인다.
[주7] 이소한(李昭漢 1598∼1645)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도장(道章), 호는 현주(玄洲). 서울출신. 1612년(광해군 4)진사시에 합격하고, 162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나아가 벼슬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과 함께 승문원주서를 거쳐 홍문관정자에 승진되면서부터 그의 풍부한 학식이 정부관료들 간에 널리 인정되었다. 충원현감·진주목사·예조참의 등의 내외관직을 역임, 1644년 형조참판으로 비변사당상을 겸임하였다. 그는 시문에 능하고 글씨에 조예가 깊었으며, 20여 년간 관계에서 활동하면서 〈동사록 東槎錄〉·〈진양록 晋陽錄〉·〈심관록 글館錄〉·〈방축록 放逐錄〉 등의 시를 남겼다. 시문집으로 《현주집》 7권이 있다.

5) 이충무공 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 / 황현(黃玹) 1884년 作.
“천구(오랑캐)가 달을 먹으니 큰 바다가 말라붙고 만 리 멀리 거센 바람에 부상이 꺾이었네(倭變). 문경 새재 주흘산 웅장한 관문이 무너지자 왜병 십만의 수군이 마구 쳐들어올 제, 원씨(元均) 집 노장은 한낱 고기 자루에 불과하여 외로이 섬에 숨으니 개미 구원도 끊어졌네. 국토방위의 중대한 위임 너 나 할 것 없거니 거룻배를 어찌 진이 월 보듯 할 수 있으랴. 전라 좌수영 남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둥둥둥 북 울리며 거북선을 발진시키니 거북 같으나 거북 아니요 배 같으나 배도 아니요, 판옥은 푹 솟은 데다 큰 물결을 소용돌이쳐대네.

/ 네 발은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게 하고 양쪽 옆구리엔 비늘을 펼쳐 창구멍을 만들고 스물네 개의 노를 물속에서 춤추듯 저어라 노 젓는 수군은 수면 아래서 앉고 눕고 하였네. 코로는 검은 연기 내뿜고 눈은 붉게 칠하여 펴면 헤엄치는 용 같고 움츠리면 거북 같은데 왜놈들 하늘만 쳐다보며 통곡하고 애태워라. 노량 한산 대첩에서 붉은 피가 넘쳐흘렀지 적벽의 소년은 때를 만난 게 요행이었고 채석의 서생(虞允文)은 담대한 결단을 과시했지만 누가 바다를 횡행하며 백전을 치르면서 고래 악어를 베고도 칼날이 여전할 수 있으랴.

/ 그로부터 이백 년 이후 지구가 터지고 찢겨 화륜선이 동으로 와서 화염이 태양을 가려라. 범 같은 놈들이 양 같은 동토를 압박 침략해 화기가 천지를 뒤흔들며 살기를 발하누나. 돌아간 충무공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주머니 속에 응당 신묘한 전술이 있을 테니 새로운 지혜로 거북선 만들어 승리하듯 한다면 왜놈들은 목숨 빌고 양놈들은 사라지련만.“ [天狗蝕月滄溟竭 罡風萬里扶桑折 主屹雄關已倒地 舟師十萬仍豕突(笑) 元家老將一肉袋 孤甲棲島蚍蜉絶 封疆重寄無爾我 葦杭詎可秦視越 左水營南門大開 淵淵伐鼓龜船出 似龜非龜船非船 板屋穹然碾鯨沫 四足環轉爲車輪 兩肋鱗張作槍穴 二十四棹波底舞 棹夫坐卧陽侯窟 鼻射黑烟眼抹丹 伸如遊龍縮如鼈 蠻子喁喁哭且愁 露梁閒山漲紅血 赤壁少年逢時幸 采石書生誇膽决 孰能橫海經百戰 截鯨斬鰐鋩不缺 二百年來地毬綻 輪舶東行焰韜日 熨平震土虎入羊 火器掀天殺機發 九原可作忠武公 囊底恢奇應有術 創智制勝如龜船 倭人乞死洋人滅]

● 이 시는 전체를 3단락으로 구성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조선육군의 참패에 따라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 앞에,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앞세우고 왜적을 통쾌하게 격파했던 역사적 사실을 그린 대목까지가 제1부이다. 2부는 물론 작품의 중핵이다. 거북선의 괴걸, 신출한 용자, 거북선이 적을 격파하는 통쾌한 장관을 굳세고 날카롭고 쌩쌩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3부는 조선말기 서양의 세력이 동쪽으로 차차 옮겨옴을 뜻하는 것으로 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이 식민지 또는 半식민지화 되고 있는 현실을 시인이 읊는다. ‘충무공 돌아가신지 2백년이 지난 오늘날에 서양의 화륜선이 동쪽으로 몰려와 불꽃이 해를 가린다.’며, 저자는 지금 새로운 민족의 위기를 눈앞에 맞아, 구국의 영웅 이순신의 거북선을 노래하며, 나라와 민족에 대한 근원적 자신감을 심어주고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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