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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작전, 10만 피난민 구한 인의(仁醫), 현봉학 박사 동상 제막식19일 오후 3시 서울역앞 옛 모교자리 세브란스빌딩 광장에 세워져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6.25전쟁 당시 10만여 명의 북한 피난민을 구한 (고)현봉학(玄鳳學) 박사(1922~2007)의 동상 제막식이 12월 19일 오후 3시, 서울역 앞 연세 세브란스빌딩 앞 광장에서 열린다고 14일 경향신문이 이를 보도했다.

14일 연세의료원에 따르면 이날 제막식은 ‘현봉학선생님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장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이 주관하고, 연세의료원과 국가보훈처, 해병대사령부에서 주최한다.

흥남철수작전 기념사업회 회원과 당시 철수하던 후송선 ‘메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5명의 신생아 중 두 명인 손양영, 이경필 씨도 참석해 은인의 동상 제막식을 축하할 예정이다.

해병대 군악대와 의장대의 경건한 의식과 함께 진행되는 이날 제막식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현봉학 박사의 장녀인 에스더 현(Esther Hyun) 씨가 선친의 공적을 인정하는 정부의 국가유공자 증서와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게 된다. 이어 높이 2.5m의 청동재질의 현봉학 박사의 전신 동상 제막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동상은 국가보훈처 지원과 함께 연세의료원과 ‘현봉학선생님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모은 후원금과 연세대 의대 졸업생들의 기부금으로 제작비를 조달했으며, 조각가 오광섭 씨가 제작했다.

   
 
함경북도 성진 태생인 현봉학 박사는 1944년 세브란스의전(현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의 병리학 강사로 학생교육과 연구활동 중 6.25전쟁을 맞았다. 미국 유학파로 영어에 능통했던 현 박사는 해병대 통역관으로 차출되어 미군과의 지원업무를 담당했다. 전 부대원이 일계급 특진을 한 마산 진동리전투를 시작으로 통영상륙작전 등 여러 전투에서 한국 해병대가 승리할 수 있도록 미군으로부터 많은 군수물자 및 작전 지원을 이끌어내는데 큰 공헌을 했다.
   
625 전쟁 당시 현봉학 박사(사진 맨오른쪽). 연세의료원 제공
이후 미 제10군단 민사부 고문관으로 파견되어 북진에 나선 현 박사는 1950년 12월 중공군 포위공세로 월남하는 길이 막혀 흥남부두에 모인 북한 피난민을 군 수송선으로 철수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현 박사는 피난민 후송을 통해 UN군의 자유수호 의지를 보다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철수지휘관인 알몬드(Edward M. Almond) 사령관을 간곡히 설득했다.

그 결과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수송선에 적재한 군수품을 버리는 대신, 무려 10만여명의 피난민을 태워 경남 거제도로 성공적으로 후송했다. 현 박사의 친동생은 (고)현시학 제독이다. 현 제독은 해군 창군 주역 중 한명으로 6.25당시 상륙지휘관으로 혁혁한 무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해군사관학교장, 함대사령관을 지냈다. 예편 후 멕시코와 모르코, 이란 주재 한국대사를 역임했다.


국가보훈처는 2014년 12월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같은 해 12월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해 깊은 감명을 주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피란민 가족이 필사적으로 마지막 철수 선박에 오르고 있다
6.25전란 속에서 미군 통역관과 보건부 보좌관으로 군사협력 및 국제연합(UN)의 구호품과 의약품 지원을 담당했던 현봉학 박사의 공로는 휴전 전후 혼란과 함께 본인이 미국 유학 길에 오르면서 조명을 받지 못했다. 미국에서 현 박사는 펜실베니아의대에서 의학박사를 받고 콜럼비아의대와 토마스제퍼슨의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미국의학회지와 미국병리학회지 편집위원을 지냈다. 미국 최고의 임상병리학자로 자리매김 한 현봉학 선생은 미국 임상병리학회(ASCP)가 주는 세계적 권위의 ‘이스라엘 데이비슨상’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근무하던 뉴저지 뮐렌버그병원은 현박사의 업적을 기려 병원 병리학연구실을 ‘현봉학 임상병리교실’로 명명하기도 했다.

저명한 재미 한인의학자의 삶과 더불어 현봉학 박사는 이산가족의 만남과 통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미국 내 ‘미중 한인우호협회’ 회장직과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직을 활용하여 통일 운동을 펼쳤다. 1991년에는 북한을 직접 방문하여 북한 의료계와의 협력을 타진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연변대 초빙교수로서 활동할 때 모교 선배인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수년간의 노력 끝에 정확한 위치를 찾아냈다. 그리고 방치된 묘소를 정비하는 한편 현지 단체와 협력하여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함으로써 윤동주 시인의 정신과 글이 오늘까지 전해지는데 큰 역할도 했다. 아울러 ‘미국 서재필기념재단’의 초대 이사장과 명예이사직을 30여 년간 맡아 서재필박사의 독립정신을 선양하는데 앞장 서는 등 누구보다 뜨거운 동포애와 민족정신을 함양 활동을 펼쳤다.


 

박춘광  nngpa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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