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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록문집(東麓文集)과 거제한문학[연재] 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먼저 지금까지 조사된 정혼성(鄭渾性) 선생의 <동록문집(東麓文集)>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필사본 12페이지 1책이 있고, 부산대학교 도서관 동록문고(東麓文庫) 162책 중에 3권이 있으며, 거제시 거제면 오수리 초계정씨 집안(정승모 이장)에 보관 중인 책 1권이 전한다.

이 중에 한시(漢詩)는 총 약 240편 정도 전하고 있고, 동록 선생이 직접 적은 글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보관 중인 12페이지 글과 거제면 오수리 초계정씨 집안의 칡뿌리 갈서(葛書) 한 장만이 전해 온다. 나머지 <동록문집> 내용은 그의 방계 후손이나 지역 후배들이 필사하여 적어 전해오는 것들이다. 또한 성파(星坡) 하동주(河東柱) 문하생(門下生)이었던 거제(巨濟) 계룡산 아래(鷄龍山下) 우강(愚岡) 김병욱(金秉旭) 선생이, 1929년 기사년에 동록집을 직접 필사한 책도 2권이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고문헌 자료실에 보관 중인 <동록문고(東麓文庫)>는 거제시 거제면의 우강 김병욱 선생이 1961년 음력5월(橊夏)에 기증한 것들로써 경서부(經書部) 46책(冊), 자부(子部) 74책(冊), 집부(集部) 42책(冊), 총 16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 동록 선생 관련 책은 존의(存疑) 1책, 동록문집(東麓文集) 1책, 김상사문집(金上舍文集) 1책, 동록율시(東麓律詩) 1책, 동록시(東麓詩) 1책, 동록당서기문(東麓堂序記文) 1책이다. 이 안에 동록의 한시가 약 80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韓國學中央硏究院)의 ‘동록문집(東麓文集) 동록 원고(東麓原稿)’는 문집 첫 장이 남아 있지 않아, 남애(南涯) 안춘근 선생(安春根先生)이 다른 종이쪽지에 써서 앞표지에 붙인 외제(外題), 즉 앞표지를 만들어 붙였다. 다음 장에는 자연과 우주 음양의 조화 등을 도교적 관점에서 간략하게 표현한 글이 있고, 우조운묘(遇朝雲墓) 집구(集句), 그리고 중국인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 8수 집고구성지(八首集古句成之), 장가구(張可久) "一半兒[일반아]"2수, 마지막으로 정혼성(鄭渾性) 시(詩) 산곡(散曲) 7편(8首)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선생께서는 중국 "장가구" 시성을 참으로 흠모 하신 것 같다. 그의 동록 문집에 원대(元代) 산곡(散曲) "일반아(一半兒)" 장가구 시를 소개하고 난 후에, 자신이 지은 일반아(一半兒) 산곡 8수를 남겼다. 모두 봄날을 맞아 느끼는 시구를 거침없는 초서(草書)와 해서(楷書)체로 썼다. 궁중 가곡이 그 원류이기 때문에 음률과 장단이 시를 읽는데 흥겨움을 더한다. 봄날에 일어나는 정취와 인간의 원초미를 자극적인 운율로 함축하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산속의 자연과 더불어 생활 하신 결과, 바다보다는 육지 자연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그의 문집 곳곳에 자연의 이치를 도교적인 사상과 접목 시켜 표현하고 있다.

거제문중(巨濟門中) 유고집(遺稿集) <동록시집(東麓詩集)>은 거제면 오수리 정승모 초계 정씨 후손(방계 7대손)이 보관하고 있다. 거제도의 동록 유고 한시집(漢詩集)에는 정군자(鄭君子) 칠언절구(七言絶句)편에 꽃(花) 종류 32수, 성리논적(性理論的)의 인간 품성(品性)과 도리(道理) 23수, 선생의 한중만음(閑中漫吟) 15수, 거제면 8경인 서정팔영(西亭八咏) 8수, 화초목 십영(花草木十咏) 10수, 생각나는 대로 우연히 읊다(偶吟) 24수가 실려 있고, 또한 칠언율시(七言律詩) 27편, 그 외 거제문인들의 작품 40편, 기타 부록(附錄) 타인서(他人書) 7편, 총 188편의 한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앞으로 동록의 한시가 더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는 이 땅의 후배들의 몫이라 여겨진다.

● 조선후기 특히 18세기는 이념 중심의 사고가 해체되면서 일상의 소소한 사물들에 대해 지식인들이 박물학적인 관심과 함께 편집광적인 집착과 몰두를 보여준 예가 많았다. 이들은 추상적이고 일상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 관념적 철학 대신, 생활 주변에 널려 있는 자질구레한 사물들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했다. 한시에서는 영물시(詠物詩)의 형태로 일찍부터 사물(초목, 화훼, 동물, 기물 등을 포괄하는)을 읊는 전통이 있어 왔는데, 조선후기의 영물시는 그러한 전통을 계승하면서 전대와 확연히 달라진 면모 즉, 작가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실용되는 사물의 구체적 속성들로 나타나고 있다. 동록(東麓) 선생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여 꽃(花) 종류 32수, 화초목 십영(花草木十咏) 10수, 이외에도 서양금(西洋琴), 딸기나무(木莓), 백어(白魚), 목단(牧丹), 백발(白髮), 애체(靉靆), 돌다리(石橋), 죽삼(竹衫), 실솔(蟋蟀), 낙엽(落葉), 구설초(狗舌草), 개구리(蛙) 등의 영물시 약 60편의 한시를 남겼다.

동록(東麓) 선생은 거제시의 한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롭고도 독특한 작품 세계로 거제 지역의 문단을 이끌었으며 그의 7촌 재종숙(再從叔)인 곡구(谷口) 정종한(鄭宗翰 1764~1845) 선생과 두 분은 거제출신으로서 현재까지 한문학 문집을 남긴 유일한 분들이기도 하다. 조선후기부터 해방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학자이기 이전에 한시와 서예로써 동록 선생을 계승한 분들로, 성파 하동주 그리고 우강 김병욱 선생이 우리 거제도의 고전문화예술의 맥을 견인한 분들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거제시에서 이어진 송시(宋詩)와 당시(唐詩)의 시풍이 흐릿해지면서 강고하던 의식의 각질도 깨어져 나갔다. 시속에 인간의 체취가 스며들고, 그 시대의 풍경이 떠올랐다. 특히 동록 선생의 시문을 살펴보면, 담긴 생각이 비범하여 어느 한편도 의표를 찌르지 않는 것이 없다. 산문을 시처럼 썼고, 시를 산문처럼 썼다. 일상의 일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었다. 학문의 깊은 온축(蘊蓄)에 바탕을 두고 나온 것임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시편 내용은 고금을 꿰뚫었고, 안목은 바다에 비친 달빛과 같았으며 먼 변방 섬 지방의 진흙탕 속에서 피어 오른 깨끗한 연꽃의 고결한 풍격과 닮아있다. 19세기 전반 거제지역문단에서 그가 끼친 자취는 참으로 혁혁한 것이었다.

동록은 복잡하고 화려하기 만한 문장 보다는 어느 나라 식이건 상관없이 편안히 즐길만한 것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소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을 글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그는 중세적 질서의 근간인 성리학적 사유를 지키는 틀에서 시문을 썼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전환은 이루지 못하였다. 한편으로는 시대와 거제지역에 맞는 시를 지으려는 데 있었고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시를 써야 한다는 새로운 시의식(詩意識)을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시의 소재로서는 남녀 간의 애정과 같은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것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편 내용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 그러므로 주자론적(朱子論的)인 관념(觀念)과는 달리 인간의 본능적(本能的) 감성(感性)을 중시하는 기본 바탕을 저변에 깔고 있다. 이에 그의 시편은 자연과 세상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이자 결과였다.

동록집에는 화초(花草) 즉, 꽃에 대한 시편이 수십 편으로 가장 많다. 선생이 유달리 꽃을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자연의 여러 물상을 노래한 시(詩)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가 거주한 거처에 두견화 구기자 국화를 직접 심어 가꾸면서 노래했다. 또한 그의 문학적 실천을 보면,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고 형식미학으로 나아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굶주린 백성들의 현실을 표출한 시편도 여러 편 전하니 그가 거제부민의 어려움을 표현한 점에서 그의 애민의식도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출판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산산이 흩어졌고 풍문은 있으나 실체는 조금밖에 없었다. 근근이 문중에서 필사본으로 전해 왔으나 그나마 온전하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여기저기에 조금씩 남아 전하니 그 전모를 알 수가 없었으며, 선생의 모든 작품을 전부 찾아내어 수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현재까지 발굴한 동록 선생의 작품과 더불어 거제문인의 작품, 그리고 동록 문집에 실려 있는 기타 작품도 모두 함께 번역해 출간하기로 하였다. 이후에 발견되는 작품이 있다면 후배들의 몫이라 여겨진다.

 

● 거제시 역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제도라는 지역에서 창작한 고전문학(한문학 구비문학 한글문학) 작품과 거제도 출신으로서 다른 지역에서 읊은 모든 문학 작품을 총칭하여 ‘거제도고전문학’이라 칭한다. 현재 거제도고전문학 작품은 유배문학 1400 여편, 거제출신 한문학 약650 편, 거제관리 또는 유람 時 거제형승을 읊은 작품 약100 편 정도의 한문학 작품이 있고, 거제민요 약 400 편, 거제설화 250여 편으로 분류되어 전해져 오고 있다. 거제도고전문학 중에 한문학(漢文學) 문집(文集)은 현재까지 거제출신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1779~1843)의 동록집(東麓集) 약 240편과, 곡구(谷口) 정종한(鄭宗翰 1764~1845)의 곡구집(谷口集) 약 400편이 있고, 유배인의 유배문학 유헌(遊軒) 정황(丁熿 1512∼1560)의 유헌집(遊軒集) 약 700편,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해도록(海島錄) 약 170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죽천집(竹泉集) 약 240편이 대표 한문집이다.

 

거제도의 모든 문학의 역사 중에 한문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는 거제 고유문학은 물론이거니와, 거제도의 정체성과 문학사의 전통에 큰 구멍이 발생할 수 있어, 그 차지하는 위치가 아주 크다. 조선후기부터 해방 후까지 거제도 대표 한문학인으로 윤주하, 정혼성(鄭渾性), 정종한(鄭宗翰) 김병욱(金秉旭) 등이 있었다. 한문학의 범위는 고전문학, 구비문학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대문학에까지 계승된 자료를 중심으로 국한한다. 이를 통해 한문학의 위치와 특성을 분명히 하고, 한낱 과거의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유기체로 파악할 수 있다. 한시는 본질적으로 성정(性情 :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서나 정감)을 읊조린 것이며, 사물에 접해서 감흥되고 고양된 정감을 표현한 형식을 뜻한다.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며, 노래는 말을 읊조리는 것이다. “시는 뜻이 가는 바인데, 마음에 있어서는 뜻이 되고 말로 발해지면 시가 된다. 정(情)이 마음에 움직여서 말에서 형상화되는 것이다”『시경』. 과거 한문학은 중국의 권위에 편승하여 주석을 달고 자신의 생각에 맞는 해석을 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조선말기부터 과거 현상을 부정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 한문학인 중에, 동록 선생도 한 몫을 차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동록 선생의 한시는 자신의 삶의 노래였고 자연과 동화되는 자신만의 세계였다.

1) ‘구천동 취조담’에서 노닐며. 분운[遊九川洞就鳥潭分韻]

一石連廷鑿 하나의 돌이 일률적으로 파였는데

谽谺洞府深 휑한 골짜기가 깊고도 조용하다.

奩開湫半畒 반 이랑의 웅덩이가 화장 상자처럼 펼쳐지고

釰揷鋒千尋 둔한 칼날을 천길 높이 세운 듯하다.

或假神輪力 이를테면 귀신이 깎아서 올린 듯하니

眞敎化費心 참다운 교화에 마음이 쓰인다.

翛然仙界賞 유연한 선계의 아름다운 모습,

塵世不啚今 티끌세상에서 더럽히지 않았네.

[주] 분운(分韻) : 운자(韻字)를 정하고 여러 사람이 나누어 집어서 그 운자로 한시를 지음

2) 김사침과 구천동 우산재(友山齋)에서 화운하다[和金士忱九川洞友山齋韻] 사침은 의원으로서 이름은 복담, 구천동에서 봄꿈을 꾸곤 호를 우산(友山)이라 했다(士忱以医名卜蕁九川春夢號友山)

逍遙樂志擬山陽 산의 남쪽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소요하다가

酬酢風煙酒一觴 바람과 안개 속에 술 한 잔을 서로 주고받았다

棰核褁泥經雨亦 막대기로 열매를 때려서 주워 자루에 담으니 비 또한 지나가는데

蔘椏昜土與年長 가장귀가 생긴 삼(蔘)은 좋은 땅에서 해마다 잘 자란다하네

曉來絶壁雲收錦 새벽녘 절벽에는 구름이 걷혀 아름답고

春到前溪水泛香 앞 시내에 봄이 오니 물에 향기 떠다닌다

袖裏金丹思普濟 소매 속의 영약으로 중생을 널리 구제하려나?

陰卭辨得大慈航 수고한 세월을 큰 자비의 배를 타고 밝히리라

能敎陰答蝢回陽 능히 음기에 대답하니 양기가 돌아오더니

竹裡菶甌花下觴 대숲에는 풀이 무성하여 꽃 아래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地秋一千年始遇 대지에 가을이 찾아와 천년 만에 비로소 만나니

山行二十里餘長 이십여 리의 산길을 오랫동안 걸어 다녔다

就中得道松俱老 특별한 도(道)를 얻은 소나무는 모두 늙었어도

自後留名草亦香 스스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니 풀 또한 향기롭네

莫放紅桃流水去 흐르는 물에 붉은 복숭아꽃 버리지 말라

風塵消息有通航 내왕하는 배가 풍진에 소식 전하려하니

 

3) 귤을 읊다[咏橘] /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1779~1843)

此物團團元不方 둥글고 둥근 이 물건은 본디 사방에 보이질 않았는데

精光雜橘半靑黄 어수선한 귤들이 반들반들 푸르고 누른빛 반반일세

霜前成熱如金色 서리 내리니 금빛처럼 무르익어

盛滿珠盤箇箇香 붉은 소반(珠盤)에 풍성한 귤이 알알이 향기롭구려

우리나라 현재 귤나무는 1910년대에 들어온 온주밀감 계열로, 재래 귤과는 조금 다르다. 재래종 귤나무는 그보다 작고 껍질이 두꺼우며 신맛이 강하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귤의 껍질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맵고 쓰며 독이 없다하여 가슴에 기가 뭉쳤을 때 큰 효능이 있으며, 소화에도 도움을 주어 대소변을 원활하게 한다"고 돼 있다. 비타민C가 많고 혈액순환에 좋으며 피부미용에 아주 탁월하다. 거제도 재래감귤은 문헌 기록상, 세종 때 유자와 감귤 재배지 확대 조치로 인해 본격적으로 재배 생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4) 꾀꼬리[鶯]

兼之富貴笑貧寒 게다가 부귀는 초라한 웃음뿐이니

粧浔金衣不染丹 물가의 꾀꼬리는 붉게 염색하지 아니했네

啼近釮向苦分罷 가까운 곳에서 괴로운 울음을 그치는데

止遊岑菀蕩情安 산에서 놂이 끝나고 나니 방탕한 마음이 편안해진다

꾀꼬리는 우리말로 ‘고리’ ‘리’라고 하며, 한자어로는 흔히 앵(鸎, 鶯)이라 한다. 황조(黃鳥)·황리(黃鸝)·노앵(老鶯)∙황앵(黃鶯)∙여황(鵹黃)·창경(倉庚,鶬鶊)·황백로(黃伯勞)·박서(搏黍)·초작(楚雀)·금의공자(金衣公子)·황포(黃抱)·이황(離黃)·표류(鶹) 등의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꽃 사이 나비춤은 이리저리 흩날리는 눈이요, 버들 위의 꾀꼬리는 조각조각 금이로다.”[花間蝶舞紛紛雪 柳上鶯飛片片金] 〈백련초해(百聯抄解)〉와 <유산가(遊山歌)>에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이라는 구절은 봄철에 버들잎이 새로 피어날 때 그 위를 나는 꾀꼬리 모양을 묘사한 시구로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글귀이기도 하다. 은근히 꾀꼬리가 지저귀는 소리는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꾀꼬리는 고구려 유리왕 때 황조가(黃鳥歌)가 지어졌을 만큼 부부금실이 좋다. 거기다가 샛노란 연미복에 검은색 눈가 테두리까지 두르고 멋을 부려, 우리에겐 다정한 새로써, 고향 언덕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많은 문인들이 꾀꼬리를 시제로 한 시편을 남겼다. 2000년을 이어온 우리민족의 정서 속에 꾀꼬리는 그리움과 애타는 심정을 표현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그리운 님에 대한 애타는 정서를 대변하기도 했다. 아무튼 꾀꼬리는 고구려시대부터 오래오래 우리와 역사를 함께한 탓에 한국의 역사를 훤히 꿰고 있는 새이다.

5) 유미[柳眉] 버들잎 모양의 고운 눈썹

彎彎柳葉愁遑戱 활등 같은 버들잎이 한가한 시름 희롱하고

湛湛菱花照處嚬 맑디맑은 마름꽃이 눈살을 찡그리며 비춘다

嫌媚不煩螺子黛 번잡하지 않은 검푸른 눈썹먹을 그리며 아양을 떠는데

靑山畵出自精神 청산이 그림에서 나오니 절로 생기가 도네

 

6) 단구[檀口] 앵두 같은 예쁜 입술

含盃微動櫻桃顆 술잔을 드니 앵두 열매가 미동하더니

咳唾輕飄茉莉香 기침과 침이 가벼이 나부끼고 자스민의 향기가 떠도네

曾見白家攀系心 일찍이 흰 집에서 마음을 의지했는데

匏屏顆顆綴橫患 담장의 박 덩굴에 박이 덩이덩이 매달려 애태웠다네

 

6) 천렵패귀[川獵敗歸] 냇물에서 고기를 못 잡고 돌아옴

吾非馮子食無魚 나는 풍환(馮驩)이 아닌데도 밥에 생선이 없어도

取適何妨徃返虛 자적을 취하며 공허이 왔다갔다한들 무슨 상관이람

浮柳岸花多小景 물가의 버들, 언덕의 꽃, 작은 경치 많은데도

好輸詩料勝看昏 저문 석양이 훌륭하여 좋은 시의 소재로 제공하네

[주] 식무어[食無魚] 맹상군(孟常君)의 식객(食客) 풍환(馮驩, 馮子)이 노래하기를 “밥에 생선이 없네.[食無魚]”라 했다. 사기(史記) 실세(失勢)를 말한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7) 정전야계[庭前夜溪] 뜰 앞 야밤의 시냇물

一條浮逕徺庭開 한 줄기 물길이 정원을 둘러 흐르는데

月夕相看興未裁 달 밝은 밤에 바라보니 흥이 가라앉지를 않네

㶁㶁流聲能卷曲 굽어 돌며 흐르는 콸콸 물소리 들으면서

和吟淸味轉三盃 석잔 술을 음미하니 청초한 맛이라 이에 화답해 읊노라

 

뉴스앤거제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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