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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장사상륙작전을 기억하자.[기고]이상준/거제대대 아주∙옥포1동대장

일반적으로 흔히 전쟁이라는 글자는 마치 역사책에 쓰여진 굳어진 화석처럼,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인 것 마냥 생각되어지곤 한다.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기사,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국제, 외교면의 기사들을 찾아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 우리가 분단과 전쟁을 겪은 지 불과 몇 십 년 지나지 않은 국가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평소 자각하지 않은 체 살아가도 무방할 정도로, 전쟁은 아주 짧은 순간 갑작스럽게 우리 민족과 한반도에 큰 상흔을 남긴 체, 사라져버린 것이다.

물론, 전적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그 전쟁의 모든 아픔과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는 없다. 이번에 방문한 영덕군 장사 지역만 해도, 한창 건조중인 당시 전적지 복원 작업이 한창 중이었고, 그 이외에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만이 남아있었기에, 이 곳에서 그렇게 참혹한 살육과 전쟁이 벌어졌었다는 것을 나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너무 잘 알고 있는 한국전쟁이지만 다시금 인천 상륙작전과 장사 상륙작전,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한국전쟁에서의 모습들을 공부해보고 영덕군을 찾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 모든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가서 본 장사상륙작전의 전적지 모습은 마치 그 곳에서 사라져간 학도병들의 어리고 찬란한 목숨의 무게만큼이나 가슴 아프면서도, 지금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에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군사용어 중 양동작전(feint oper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적으로 하여금 아군의 작전 기도를 오인하고 혼동하게 하기 위해서 조공방향에 병력이나 차량을 집결시키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거나, 철수를 하는 척을 하면서 역공할 부대를 뒤로 이동시켜 예비 부대를 준비시키는 것 등의 작전을 의미한다. 특히 적군과의 거리가 가깝고 시각을 다투는 긴급한 작전이 필요할 때, 기습이나 총 공격이 필요할 때 적군의 염탐을 경계해야 할 경우 이런 양동작전을 펼친다.

인천상륙작전과 장사상륙작전의 양동작전 또한 그런 목적에서 행해진 것이었다. 당시 한반도의 정세와 전쟁 상황 상 인천상륙작전은 단 한 번의 기회에 성공해 신속하게 승리를 이끌어내야 하는 작전이었기에 그만큼 중대했고 장사상륙작전이라는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희생도 어쩔 수 없이 감행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장사 지역 이외에도 다른 지역에 양동 작전을 펼치는 것도 고려되었지만 포항 이북을 빼앗기고 낙동강 전선에 우리 국군과 연합군이 갇히게 되면서 북한군의 후방 보급로를 공급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로 인해 장사 지역이 최적의 장소로 드러나게 되었다.

인천 상륙 작전(仁川上陸作戰, Battle of Incheon)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7만 5천여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되었고, 대한민국의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6월 29일, 전쟁이 발발한지 4일 지난 뒤에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며 조선 인민군의 후방에 상륙, 병참선을 차단하고 낙동강을 통해 반격에 들어간다는 기본 전략을 세웠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미국 해군은 인천항의 간만의 차가 평균 7미터로, 항구에 상륙하기 전에 월미도를 먼저 점령해야 하는데다 선단의 접안지역이 좁아 상륙 후 시가전이 불가피한 점 등의 이유로 상륙 작전의 최악의 지형이라며 작전 성공률 5000분의 1의 확률에 도전하는 말도 안 되는 작전이라며 완강히 반대하였다. 하지만 맥아더는 오히려 이런 난점이 적의 허점을 찌르는 기습이 될 수 있다며 인천 상륙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8월 28일 미국 합동 참모 본부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사실 인천 상륙 작전은 정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이었다. 일단 조수간만의 차가 엄청나고, 또한 인천항을 지배하는 감제 고지인 월미도를 사전에 점령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 2차 대전에서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해 태평양에서 '섬 건너뛰기 전술'로 큰 효과를 보았던 맥아더에게는 이 작전의 성공을 확신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군이 투입되는 일에 어느 정도의 시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장사상륙작전으로 적군을 유인하는 양동작전의 시행이었다.

장사 상륙 작전은 그렇게 대의를 위한 소의의 희생이라는 전쟁이 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과정 중 하나로서 1950년 9월 14일~15일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에서 벌어진 상륙작전으로 작전명 174고지작전라고도 한다. 9월 14일 부산항을 출발한 이후, 9월 15일 06:00에 개시되었으며 원래는 미군 해병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되었으나 실패를 우려한 미군이 발을 빼자 한국군, 그 중에서도 희생되어도 우리 국군의 희생정도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군 지도부의 판단에 의해 아무것도 모르는 학도병들이 이 작전에 투입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기억해야 할 가장 아픈 역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나라 위하여 殉國한 忠心은 日月보다 밝고

몸을 희생한 무서운 勇氣는 八部神象의 龍神을 감격시킨다.

이제 우리들은 香을 사르면서 여러분 靈位 앞에 祈願합니다.

千秋萬代에 나라를 지켜주시는 守護神이 되어 주소서!

-장사 상륙 전몰 학도병 위령탑 앞면의 글 中-

인천상륙작전의 단 하루 전이었다. 조국을 위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영덕군 그 굽이굽이 해변으로 갔던 학도병들이 희생된 것이 말이다.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우리 민족의 일반 민중들에 대해 그린 소설과 영화 등의 작품은 매우 많지만 그 중에서도 최근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최인훈 작가의 광장에 보면, 장사 유적지와도 관련성이 있는 낙동강 다리 폭파사건과 관련된 장면이 나온다. 그저 자신들의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었으나 갑작스러운 포화 때문에 부산을 향해 남으로 피난을 가야했고, 그 와중에 영문도 모른 체, 미군과 우리 군의 낙동강 다리 페쇄 작전 시기에 맞물려 억울하게 희생되어야 했던 수많은 민간인들, 나는 그 소설의 한 장면을 장사 해변에 혼자 서 있는 문산호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긴박하게 전쟁의 승리를 위해, 많은 학도병들을 이동시키기 위해 희망을 실고 움직였던 문산호는 갑작스럽게 침몰되어 그대로 수장되었다. 그리고 문산호의 수장과 함께 수많은 학도병들 역시 섬 안에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날을 보냈다. 저 크지도 않은 배를 기다리며, 어떤 심정으로 그 어린 학도병들은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일까.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학도병은 군번도 주어지지 않은 민간인 학생신분이었다. 거의 모든 전쟁이 그렇듯 한번 시작된 전쟁은 단지 군인들만의 싸움으로 끝나는 법이 없고, 가장 고통받는 사람 역시 군인들만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 나약한 노약자들, 그리고 고국을 위해 나서야한다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학도병들이다. 문산호는 그런 비극적인 결말을 우리에게 잊지 말라는 듯이 서 있는 듯 했다.

그 학도병 중에서, 자신이 장사상륙작전에 참가했었다는 사실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모르는 이도 많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속이기 작전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더더욱 많았다. 그들은 군번줄조차 없었지만 자신들이 한 번도 다뤄보지 못했을지라도 고국을 지키려는 강한 애국심과, 바른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진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믿음만으로 북한군의 공격 앞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문산호처럼 학도병들은 영원히 그 섬 안에서 마치 처음부터 섬 안으로 들어간 적도 없는 것 마냥 잊혀졌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까지고 숨겨지지 않는다, 6.25전쟁 이후 국가적 예우나 기록, 관리 측면에서 소홀한 점이 많았고, 당시 미성년자인 이들은 따로 분류되지 못해서, 그동안 국가적 예우에 억울해하며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었지만 다행히 1997년 LST 상륙함인 문산호가 인양되고, 2016년 작전명령서가 복원되며 화제가 되어 장사상륙작전이 알려지기에 이른 것이다.

역사에 있어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큰 맥락, 큰 기점이 된 사건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하지만 우리는 승리가 아닌, 패배도, 실패도, 그 승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치러야만 했던 희생까지도 기억해야 한다. 장사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승리를 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평가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장사상륙작전에 나서며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사력을 다했던 모든 병사들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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