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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오스트리아 브리겐츠 페스티발윤혜영/자유기고가

여행의 감동은 선호하는 영화 장르까지 파괴

싸우고 죽이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는 싫어하는데 여행의 감동은 선호하는 영화 장르까지 파괴한다. 인공섬을 만든다는 고현항 주변의 한 극장에서 007 시리즈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 영화를 보았었는데 집에서 인터넷티비(IPTV)로 다시 감상했다. 드라마, 영화, 쇼핑,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컨텐츠를 보고 싶은 시간에 언제나 볼 수 있다는 게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라며 2008년 유럽의 여름을 회상했다.

여행의 추억과 오페라의 감동이 함께한 오스트리아 브리겐츠의 야외 공연무대가 007 최신작 영화촬영지로 나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007 영화촬영지는 태국 여행 때 찾아갔던 푸켓의 ‘제임스본드 섬’ 추억이 있는데 환상적인 한여름 밤의 꿈을 꾸게 한 곳이 영화의 배경이 되다니 ‘정말 영화 같은 행복한 덤’을 하나 더 얻은 기분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촬영한 영화 ‘반지의 제왕’ 이후 ‘시네마 마케팅’도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라 테마관광에 크게 기여한다고 한다.

   
   
▲ 브리겐츠 페스티발 야외 수상무대 전경

시원한 바람이 부는 호숫가 수상무대 위로 별들이 사랑을 노래하는 밤하늘,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성악가들의 열창이 조화로운 음악소리가 감미롭게 머릿속을 떠다닌다. 까만색 예쁜 음표들이 동실동실 나르고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관객들의 아름다운 표정들도 함께 되살아난다.

작년 7월 말경, 열정빛깔 배낭을 메고 유럽의 음악축제를 좇아 오스트리아의 빈, 브리겐츠, 이탈리아의 베로나로 예술기행 떠나는 인생에 몇 번 없을 귀한 경험을 하였다. 세 도시는 그 곳에 가지않으면 다른 도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개성 있는 축제로 승부하는 창조적 문화도시였다.

   
▲ 비엔나 시청에서 하는 필름 페스티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는 건물자체가 거대한 예술품인 고딕양식의 웅장한 시청사 건물에 초대형 스크린을 걸고 ‘필름 페스티발’을 한다. 밤이 되면 행정의 중심지가 시민들을 위한 잔치집으로 변한다. 7월과 8월의 밤 9시부터 세계적인 오페라 작품과 클래식 공연 등을 무료로 야외 상영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여름더위를 피해 볼거리와 먹거리를 즐긴다.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는 로마시대의 유적인 아레나(원형 경기장)에서 오페라 실황을 관람하였다. 건축역사가 2천년이 넘는 중세시대의 콜롯세움에서 수천 명의 관중이 촛불을 켜 무대의 공연자와 연주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시작하는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오페라 ‘아이다’는 전무후무한 감동을 선물하였다.

   
▲ 2천년 된 원형경기장에서 여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발

마지막 목적지였던 ‘브리겐츠 페스티발’의 수상 오페라 무대는 호수위의 압도적인 무대세트와 탄성을 자아내는 기발하고 탁월한 상상력의 무대디자인이 주변의 청아한 호수풍경과 어우러진 황홀한 여름 음악축제였다.

오스트리아의 오지 브리겐츠를 찾아간 이유, 감성만족

그곳에서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떠올리노라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허상을 좇아서 끝없이 달리는 비루한 영육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울한 생각을 깨치고, 인간은 역시 창조적인 만물의 영장이라는 진리를 떠올려 본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값지고 고맙게 생각하며 ‘행복’이란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다 보면, ‘행운’은 우연처럼 돌발적으로 찾아오는 필연 같은 반가운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번의 축제기행도 감성만족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떠난 먼 길에서 발견한 소소한 행운들이 여행을 더욱 기분 좋고 생기 있게 만들어 주었다. 가령 브리겐츠 시내를 헤매다가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값싸고 맛있는 닭고기 바비큐로 유명한 집이라든지, 교통편이 없어 할 수 없이 숙박한 도시의 미술관에서 너무나 좋아하는 화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든지, 국가간 연결 기차표가 동이 나 난처한 상황에 빠졌는데 기적같이 표가(그것도 1등석으로) 생겨나 편안하게 다음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든지 하는 상황들은 분명 ‘행운’이다.

   
▲ 오페라 '토스카' 공식 포스터

내게 행복과 행운이 함께 했던 유럽 음악기행의 보따리 중에서 브리겐츠의 여름축제에 대해 소개해 보자. 1년 내내 다채로운 축제가 펼쳐지는 유럽은 그 곳 사람들의 휴가기간인 7월부터 9월까지는 대대적인 축제 기간이다. 각국에서 나라의 역사와 특색을 가미한 전통성 있는 축제를 펼쳐 세계인들을 손짓하는 기간이다.

오스트리아의 서쪽에 위치하여 독일에서는 보덴제, 프랑스에서는 콩스탕스라고 부르는 호수를 따라 형성된 도시 브리겐츠(Bregenz)에서 열리는 ‘브리겐츠 페스티발’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호수위에 거대한 플로팅 무대를 만들어놓고 실물과 같은 크기의 웅장한 세트장을 세워 걸작의 오페라 공연을 선보인다.

매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 공연을 보기 위해서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에 전 세계에서 몰려온 여행객들과 음악광들이 북적이며 도시의 활기를 띄운다. 축제 기간에는 20만 명의 여행객이 찾아들어 경제적인 효과와 함께 세계적 예술도시로의 입지로 상승되는 시너지 효과가 크다.

   
▲ 브리겐츠 축제 행사장 광장

한국에서 숙소 예약은 하지 못해 시청에서 운영하는 관광안내소에서 ‘빈 호텔이 없느냐’는 동양인에게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금발 안내인과 역사 주변의 노숙의 추위가 지금도 생생하다. 알프스 산맥과 가까운 피서지라 그런지 한여름인 7월 말의 밤은 엄청 추웠다.

2년마다 주제가 바뀌는 브리겐츠 페스티발의 이번 공연은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1800년대 로마를 배경으로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토스카’이다. 그러고 보니 빈의 시청사에서도 브리겐츠를 찾지 못한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토스카’를 상영하고 있었다.

호숫가 도시의 특색을 살린 브리겐츠의 역발상

스위스 바젤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브리겐츠에 도착했다. 나에게는 2006년의 베르디의 작품 ‘일트레바토레’ 관람에 이어 두 번째로 인연이 닿은 브리겐츠이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는 작은 소도시, 7월의 태양은 끈끈하고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그늘 한 점 없는 한낮의 대로를 걸어가고 있으려니 멀리서 불어오는 미풍이 살랑살랑 뺨에 와 닿는다. 기차역에서 호수는 걸어서 10여 분 남짓. 축제가 열리는 현장으로 바로 달려갔다.

콩스탕스 호수 위에 설치한 커다랗게 동공이 확장된 엄청나게 큰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압도하였다. 토스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디자인이다. 세계적인 축제이지만 잡상인이 와서 물건을 판다든가 관객들이 몰려 쓰레기가 날리든지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인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이 축제시즌이 맞나하고 생각해볼 정도로 호숫가의 낮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 축제 기념 야외 조각전

야외 잔디밭에서 환경조각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호숫가의 레스토랑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로를 걷는 아저씨와 손을 잡고 산보하는 노부부, 벤치위에서 한창 키스에 몰입중인 연인, 물놀이를 하고 있는 한무리의 꼬마들이 어우러져 안온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콩스탕스 호수는 독일, 스위스, 리히텐슈타인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호수로 배를 타고 건너편 독일과 스위스 등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시간이 나면 보트를 빌려 보덴제 호수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 007 최신작 ‘퀀텀 오브 솔라스’출연진 (사진/영화사 제공)

예술축제로의 명성과 현대적이고 독특한 무대 디자인은 결국 영화사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007 시리즈의 22탄인 ‘퀀텀 오브 솔라스’가 이곳에서 2주간 촬영되었다. 오페라 관람을 가장하여 비밀회담을 하는 악당들과 증거를 잡기 위해 잠입한 제임스본드의 혈투 장면이다. 브리겐츠 페스티발의 ‘토스카’ 무대세트인 커다란 푸른 눈동자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제임스본드로 분한 다니엘 크레이그!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주인공의 비극과 복수를 오페라 ‘토스카’ 작품으로 암시하기에도 최적지이지 않았을까.

계단형식으로 배열된 7,000석 규모 좌석과 수상 무대를 갖춘 야외 공연장 외에도 오페라 하우스와 곡식창고를 개조한 ‘코른마르크트’ 극장이 있고 그곳에서는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Power and Music'을 주제로 쇼케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1980년에 세워진 4,500명 규모의 ’페스티벌 랜드 콩스레스홀’에서도 유명 예술가들에 의해 콘서트와 오페라 등이 공연되고 있다.

   
▲ 오페라 ‘토스카’ 광고 이미지 


지역성을 활용한 독창적 축제만이 마니아, 폐인을 양산

뮤지컬 같은 타 장르의 관객 잠식, 긴 공연시간과 많은 출연진으로 투자 과다 등으로 오페라는 유럽에서 사양화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오페라 극장 짓기에 도시마다 경쟁이라 의외다. 재미있고 스피드 있는 최첨단의 현대문명이 선사하는 재미있는 볼거리들이 넘쳐나기에 3, 4 시간 이상 컴컴한 극장에 앉아있기가 고통일 것이다. 특히 지속적인 관객확보의 핵심인 젊은층들의 외면이 심하다. 그러나 브리겐츠의 역발상은 놀라운데 역시 중요한 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오페라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재해석, 즉 ‘창조적 파괴’로 원작을 본 사람도 다시 보게 하고 젊은이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무대제작비만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2년을 주기로 작품을 바꾼다. 중앙정부와 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올려진 작품들은 베르디의 나부코, 가면 무도회, 아이다, 일트레바토레, 푸치니의 라보엠, 토스카 등이 있다.

   
   
▲ 브리겐츠 페스티벌 주요 공연 작품들

호수도시의 특색을 살려 수상무대를 만들고 오페라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기발한 무대 디자인, 그리고 전문가들의 치밀한 전략과 마케팅으로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우뚝 세운 독창적 아이디어와 열정은 극찬할만 하다. 그 유명세를 확인하고 즐기기 위해 동방의 먼 나라 한국, 그 곳에서도 최남단의 거제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또 갈아타며 물어물어 이곳에 이르지 않았는가.

브리겐츠 페스티발은 약 15년 전부터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유명세를 타면서 재정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지원금 의존비율이 68%에서 33%로 줄었다. 지역경제와 문화발전에 끼치는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 정부의 지원금 중 45%는 중앙정부에서, 35%는 지역정부에서 그리고 20%는 시에서 지원받고 있다.

그리고 카지노 오스트리아와 메르세데스 벤츠, 다임러 크라이슬러 등의 여러 기업들에서도 후원을 하고 있다. 이 도시의 산업은 섬유와 철강, 유리 등과 기계산업이 주였으나 1946년부터 시작된 브리겐츠 페스티발과 겨울 스포츠가 시의 주된 수입원이 되고 있다.

   
▲ 브리겐츠 축제 행사장 옆 호숫가 풍경

금강산도 식후경. 공연이 시작되기 앞서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러갔다. 전에 왔을 때 먹었던 맛집을 찾아 닭고기 바비큐와 시원한 독일맥주를 한 잔 곁들여 먹으며 공연의 기대치가 행복한 수다가 되었다. 역시 ‘관광에서 맛이 빠지면 안된다‘며 저렴하게 풍만함을 느낀 여행자들은 산책 삼아 중세시대의 바닥돌이 깔린 마을과 시내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교통도 불편한 변방의 이 도시에 ‘브리겐츠 페스티발’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국제적 도시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세계가 한동네인 지구촌에서 이제는 거리가 먼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구의 어느 오지일지라도 마니아들, 즉 폐인들은 아무리 교통이 불편하고 숙소가 매진되고 없어도 노숙을 결행하며 기어코 찾아가고야 마는 것이다.

거제도 인공섬, 브리겐츠 페스디발을 벤치마킹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7주면 나도 오페라 매니아’라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관람했다. 오페라에 대한 해석과 함께 첨단 음향과 대형 화면으로 유럽, 미국의 유명 극장에서 공연한 녹화극을 상영해 주었다. 관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도시가 아닌 거제도에서도 쉽게 구하기 힘든 명품공연을 영상으로라도 관람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소수의 문화적 취향도 배려하여 꾸준히 하는 기획이 참 좋다고 생각되어졌다.

   
▲ 거제문화예술회관 야경

아름다운 자연환경의 거제도에서 성공적인 축제 마케팅은 축제의 목적성, 지역의 정체성, 전문성 확보가 중요하다. 행사 계획에 앞서 이 축제가 어떤 역할을 하며 사회적인 의미를 띄는지, 지역의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동참이 이루어지는지, 나아가 외래의 관광객 유입과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창출할 수 있는지 등 올바른 방향성, 개성있는 상상력, 치밀하고 과감한 추진력의 세부 과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도토리 키재기는 그만 하자! 대한민국 축제의 폐해는 어느 지역에서 축제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이를 모방한 유사한 축제들이 속속들이 생겨나는 현상이다. 각 도시에서 경쟁적으로 펼치는 불꽃축제가 그러하고 맨손으로 고기잡기나 신년맞이 일출 행사 등이 그것이다. 지난 몇년간 가장 많이 생겨난 행사들이다.

비슷비슷한 축제로 ‘따라하기’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지역문화를 육성해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문화, 예술, 환경, 관광요소를 가미시켜야 거제시를 대표하는 지역축제를 만들어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 거제도에서만 볼 수 있는, 거제도를 알차게 담은 독특한 축제가 절실하다.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효과는 경제이득과 고용창출도 자연적으로 따라오겠다. 거제도만의 특객있는 축제가 자리를 잡아 1년 내내 다양한 페스티발이 끊이지 않는 ‘축제와 같은 섬’이 되었으면 좋겠다.

   
▲ 고현항 인공섬

고현항에 조성되는 인공섬에도 문화를 잘 담았으면 한다. 오스트리아 브리겐츠를 벤치마킹하면 좋겠다. 바닷가 야외 공연장에서 예술축제가 열리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춰 전 세계인들이 문화의 성지로 인식해 찾아오며, 007 영화를 제작하는 글로벌 영화사에서 촬영 좀 하자고 안달하는 그런 축제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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