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직한 수사로 시민 신뢰 받을터”

‘수사 베테랑’으로 통하는 이흥우 거제경찰서장은 시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믿음직한 수사’를 펴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빼어난 풍광에 감탄했다며 노후를 거제에서 보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수사 지론과 관련, 민생을 침해하는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부산광역수사대장을 지낼 당시 조직폭력배들을 숱하게 검거했던 만큼, 거제지역에서도 조직폭력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거제경찰서 부임 이후 일화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수의를 입고 유치장에 직접 들어가 피의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읽는 책을 펼쳐보며 피의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절도 혐의로 붙잡힌 여학생에게 생일상을 차려준 일화, 선배에게 가슴을 얻어 맞아 사망해버린 어린 남학생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울적해했던 일화도 들려줬다.

이흥우 서장은 전국 최초로 ‘스쿨폴리스’제도를 정착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기획 초창기부터 교권 침해 논란에 시달리며 스트레스가 적잖았지만 정부혁신사례에서 당당히 최우수로 평가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서장이 도입시킨 스쿨폴리스 제도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 학교에선 완전히 정착됐으며 전국적으로 3000여개가 넘는 각급 학교에 도입돼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거제경찰서의 1급서 승격 필요성에 대해서도 적극 공감했다. 경관 252명이 1인당 시민 910명의 치안을 담당해 전국 경찰 1인당 평균 500명의 두 배에 이르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승격 검토가 절실하다고 그는 말했다. 부족한 치안 인원은 곧바로 시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간다는 점에서다. 강력팀 등 격무에 시달리는 경관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남 양산 출신인 이흥우 서장은 김해건설공고와 동아대 법대를 거쳐 부산대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지난 89년 간부후보 37기(경위)로 경찰에 입문, 부산시경 광역수사대장과 경남지방청 수사과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여름 거제경찰서에 부임했다.

다음은 이흥우 거제경찰서장과의 일문일답을 요약 정리했다.

- 거제署로 부임하신지 반년이 조금 넘었다. 소회가 있다면.
“우선 빼어난 풍광이 눈길을 잡았다. 지금껏 여러 곳에서 근무했지만 거제만큼 바다를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은 없었다. 주말에 가족들이 거제로 와 함께 보낼 정도로 매료된 곳이다. 도농복합지의 특성을 잘 갖추고 있는데다 정이 있는 도시여서 여기서 노후를 즐기고 싶은 생각도 갖고 있다.

경남 관내에서 총경(서장급)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닷가 특유의 거친 분위기도 덜하고, 주민들 성향도 온화한 편이어서 전국 평균 대비 2배의 치안수요를 감당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범죄율은 적은 편이다. 강력사건 역시 드물다. 생활경제기반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서 치안이 안정되지 않았나 싶다. 대신 물가는 제법 높은 것 같다.(웃음) 양대 조선사의 원동력에 힘입어 직접 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거제만의 저력이 있다.”

- 경남지방청 수사과장을 앞서 역임한 걸로 안다. 베테랑 수사관인 셈인데, 수사 지론은 무엇인가.
“부산시경 광역수사대장을 맡은데다 경남청 수사과장을 거치다보니 그런 얘기들을 듣게 되는데, 일반인들에게도 수사 베테랑으로 알려져 괜스레 위압감을 주는 것 같아 부담스런 면도 있다. 반면, 기대를 받다보니 제보도 적잖다. 수사지론이라면, ‘우리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수사’를 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범죄자들은 반드시 검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민들을 울리는 ‘화이트 칼라(경제사범)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 이들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은 편법과 불법적인 사기 수법으로 거액을 빼돌리는 등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기고 서민 생계를 위협하는 민생침해사범이라 할 수 있는데 경찰이 걸러내야만 한다. 조직폭력배들도 마찬가진데, 부산시경 광역수사대장을 맡던 시절엔, 조직폭력배들로부터 ‘저승사자’로 불려지더라. 오죽하면 저를 피해 다른 지방으로 근거지를 옮겨가는 폭력배들도 있었다. 이들을 검거한 공로로 3년간 동료 21명이 특진하기도 했다. 거제에서도 폭력배들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할 참이다. 한편으로 거제경찰서는 토착비리와 권력형 비리 등을 적발해 경남청에서 1위를 차지했었고 지난해 하반기에는 전국에서 1위의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수사, 공정한 수사를 지향할 생각이다. 시민여러분께서도 적극적인 신고를 해주시길 당부드린다.

- 부임 후, 유치장 입감 체험을 직접 하셨는데, 역대 서장들 중 그런 분이 없는 걸로 안다. 특별한 발상들이 많을 것 같다. 덧붙여 각인된 사건이 있다면.
“다른 지방 경찰서에선 형식적인 체험이 된 걸로 아는데, 이왕 해볼거면 피의자들의 인권을 생각해 보는 차원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수의도 입고 유치장에 들어가 피의자들과 대화도 나눠보고 그들이 읽는 책도 직접 넘겨봤다. 피의자들이 먹는 식사도 그대로 먹었는데, 경관들이 절 생각해서 사식으로 바꿔주길래 그러지 말고 원래 하던대로 해달라 했다(웃음). 피의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 ‘아버지’나 가족을 소재로 한 책이더라. 많은 걸 느꼈다. 책에 끄적여논 그들의 글귀가 애잔했다. 유치장 도서가 부족한 것 같아 좀 더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가출해 타인의 지갑을 훔치다 잡혀온 16세 소녀에게 생일상을 차려줬는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란 말이 있잖은가.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정의 본질은 ‘치유’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일이 생일이란 소녀의 얘기를 듣고 케익과 편지를 전달하는 생일상을 경관들과 함께 마련했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 소녀는 앞으로 잘못된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더라.이건 좀 다른 얘긴데, 최근 사건 중에서 십대가, 같은 십대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싸늘한 시신이 되버린 아이를 어루만지며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했다. 괘씸한 마음에 가해 학생을 직접 만났다. 눈이 빨갛게 부은 채 울고 있었다. 얼마나 때렸길래 아이가 죽었을까 싶어 몇 대나 때렸냐 다그치니 딱 한 대 때렸다더라. 가슴에 한 대를. 가해 학생의 가정도 힘든 형편이었다. 허탈해지더라.

제가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이 크다. 그래서 ‘스쿨폴리스’ 제도를 지난 2005년에 최초 제안했는데, 학교폭력의 70% 이상이 교내에서 발생한다는 연구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옛 시절이 그랬듯, 저도 고교 시절에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많이 맞고 지냈다.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골몰하다 이 제도를 기획했다. 교내폭력을 막기 위해 퇴직경관과 퇴직교사를 학교에 상주하게 해 상담도 하고 실질적인 예방을 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전교조의 반발이 컸는데 방송토론도 하는 등 격론을 벌인 끝에 7개 학교에 시범운용을 했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지금은 서울 부산 등 전국 3596개 학교에 도입됐다. 스쿨폴리스 제도가 48개 부처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혁신발표대회에서 3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최우수 사례로 선정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수상 소감 발표 당시 참.. 정착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걸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 탓인지, 목이 매이고 눈물이 흐르더라.”

- 갈수록 범죄가 지능화하는 것 같다. 보이스피싱 문제도 그렇고, 사이버범죄도 늘고 있다. 한층 강화된 과학수사도 요구된다. 수사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이버범죄가 느는 추세다. 거제경찰서에서도 지능범죄수사팀이 그 같은 범죄를 적발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불어 보이스피싱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 보이스피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시민들도 이제는 주의를 하고 있고 인식을 한다지만, 노인들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아직까지 나타나고 있다. 수사력도 수사력이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는 언론에서도 지속적으로 예방 홍보에 나서줄 필요가 있다.

-겨제 경찰이 맡는 치안수요가 상당하다. 전국 경찰 1인당 평균 500명의 두 배에 이른다. 1급서 승격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우리로서도 가장 힘든 문제점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소한 500여명의 인원이 돼야 한다. 2급서로 지속되다간 문제가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경관들로서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이렇게 가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데 있다. 1급서 승격의 걸림돌은 예산이다. 거가대교 개통 이후 치안수요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심각성을 인지해 하루 빨리 1급서 승격이 되도록 해야만 한다. 경찰 인원이라도 충원이 돼야 한단 생각이다. 거제지역 경찰 수장으로서 시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크다.”

- 경찰 조직에도 기피 부서가 있다고 한다. 잠복근무를 밥먹듯 하는 강력팀이나 주취자들 처리에 파김치가 되는 도심 지구대(파출소)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저 역시 경찰 생활을 하면서 그런 고충이 많았다. 물론 힘들지만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보람만으론 부족하단 생각을 하고 있다. 사명감과 보람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강력팀 형사들이나 교통사고조사계에서 일하는 경관들은 참 힘든 생활을 이어간다. 외근이나 야근에 혹사당하는 우리 경관들에게 인센티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보조 수당을 실비로 지급해야 하고 진급 기회도 줘야 한다. 최근 조현오 경찰청장께서 비교적 격무를 맡고 있는 경관들에게 수당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 60억 원을 편성해주셨다. 이 같은 인센티브가 지속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그래야 일할 맛도 나지 않겠는가.”

인터뷰 내내 느껴진 이 서장의 이미지들은 상반된다. 푸근한 미소의 점잖은 중년남성의 인상과 수사관의 예리한 눈빛이 공존했다. 특히 ‘인간미’가 돋보인 듯 했다. 모친을 불과 네 살에 여의고 힘겨운 성장기를 거쳤던 그다. 입지전적 인물인 셈이다. 학생들을 위한 특강도 한다. 꿈을 잃지 말길 거듭 강조한다. 시민에게 희망을 주는 경찰상 구현, 이 서장이라면 믿어볼만하단 기대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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