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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왜학(玉浦倭學)[연재] 고영화의 거제산책

우리나라는 태종 15년(1416년)에 정식으로 왜학(倭學)이 설치되었다. 태종 전에는 거제도에 귀화한 왜인이 다수 있어 그 귀화인들이 주로 통역으로 투입되었다. 특히 조선초에는 지세포에서 왜인들의 통행증 문인을 주고받기 위해, 통역관(왜학)이 거주했다.

임진난 이후, 왜선의 표착이 빈번하게 일어남에 따라, 통영(統營)에 1648년 왜학역관(倭學譯官) 1명이 파견되었으며, 이후 1706년, 거제(巨濟 옥포)로 옮겼다.

1706년부터 옥포에서 전담 왜학인이 거주하면서 왜인 표류 선박이 올 때마다 문정(사건 조사)을 실시하여 상부로 보고하였다. 거제도 옥포진성 내에는 왜학 역관이 생도들을 가르친 왜학당과, 왜인을 위한 비상식량과 각종기록을 보관하던 왜량고가 있었다.

왜학은 서울 사역원 이외, 일본과 교섭이 잦은 부산진, 거제, 제주도에서만 가르쳤다. 조선후기 때, 옥포통사(玉浦通事)는 1명으로 3달마다 교대하는데, 옥포에 입번할 때 동래부에서 초료(草料)를 지급하였다. 간혹 1년씩 교대로 근무하기도 했다.

왜학당에서 역관이 생도에게 가르친 교재는 ‘첩해신어(捷解新語)’이고, 그 외 ‘왜어유해(倭語類解)’라는 어휘집이 있었다. 거제도에는 왜학당(옥포성 內)에서 학생(생도)을 1706년부터 1895년(고종 32년)까지 가르친 ‘옥포 왜학당’이 존재했었다.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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