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연재 고영화의 거제산책
일운면(一運面) 이운면(二運面) 지명 유래[연재] 고영화의 거제산책

   
 
'일운(一運)'과 '이운(二運)'은 조세양곡을 실어 나르던 조운선(漕運船)이 정박했던 포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임진왜란時 조세양곡을 실어 나르던 조운선(漕運船)에 그 뜻과 말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조운선 중 군량과 사복을 실은 일운선(一運船)과 이운선(二運船)을 명군과 요동상인이 착복하였다." 명군 가운데는 군량을 분급 받을 때 아예 조선관인들을 무시하고 하인들을 난타한 뒤 임의로 가져가는 자도 있었다." "정유재란 이후에는 군량운반의 고통이 워낙 심하여 대부분 해상으로 운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먼저 "일운 이운 삼운" 지명을 사용한 지역을 살펴보면,

1. 18세기 창원 지역은 '서일운면 서이운면 서삼운면, 동일운면 동이운면 동삼운면, 북일운면 북이운면 북삼운면, 남일운면 남이운면'을 행정구역 지명명칭으로 불렀다. 합포만에 조창 해창 조운창이 위치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따라 경북 문경쪽으로 조운을 운송하는 지역인 '북일운', '북이운' '북삼운면'이 있었다.

2. 고성군은 1765년 '여지도서'에 의하면, 고성현(固成縣)의 각 면의 행정구역은 14개면이 있는데, 그 중에 '하리일운면(下里一運面), 하리이운면(下里二運面), 광내일운면(光內一運面), 광내 이운면(光內二運面)'이 있었다. 1832년 '경상도읍지'에 의하면 행정구역은 16개면으로 되는데, 하일면(下一面), 하이면(下二面), 광일면(光一面), 광이면(光二面), 광삼면(光三面)으로 명칭이 변한다. 1900년 대한제국 4년(광무4년) 5월 16일자 칙령 제19호로?통제영이 있는 춘원면(春元面)에 진남군(鎭南郡)을 설치하고 고성군의 도선면(道善面), 광이면(光二面), 광삼면(光三面)이 진남군에 귀속된다. 1909년에 용남군 서면(西面)의 '일운동(一運洞)' ·'이운동(二運洞)'으로 구획되었다가 1914년 2개의 동을 병합하여 '영운리(永運里)'라 칭하게 되었다.

3. 거제도의 고현면(古縣面)은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일운면(一運面)' '이운면(二運面)'으로 분화된다. 일운면은 이후 다시 신현면과 일운면으로 분리되었다.

'일운' '이운' '삼운'을 지명으로 사용한 곳은 대부분 그 지역이 강가나 해안에 위치했고, 또한 한척의 조운선에 싣는, 조세 납부 크기의 양을 지역에 따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조세를 거두는 지방관의 편의에 따라 한척 배에 싣는 조세지역을 '일운면' '이운면' '삼운면'이라 칭하고 지역이 넓으면 '동서남북, 도하, 광내, 상하' 등으로 표기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각종 고지도에서 보면 연안 해상 부근, 진영이나 조창(漕倉), 해창(海倉)등이 위치한 지역에 정박한 조운선 수에 따라 그 지명이 유래하기도 했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一運面)"은 전국에 아직도 남아있는 유일한 지역명칭이다. 조선말기 옥포와 지세포에서 통영으로 보내기위한 조운선이 정박했다는 문헌기록으로 볼때, 일운면과 이운면으로 나눈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앤거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