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연재 정도길의 속이 빈 대나무
늦은 저녁, 눈부신 저 빛은 무엇?[연재] 정도길…경남 합천댐에서 춤추는 억새를 만나다

   
가을춤5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가을 날씨답지 않게, 요 며칠 간 비가 오락가락 내렸던 지난 주. 기분도 풀 겸 12일 주말을 맞아 훌쩍 떠난 가을 여행. 창밖 세상에는 온통 가을이 묻어 있다. 차창을 내리자 진한 가을 향기는 코끝을 자극하고, 시원한 바람은 얼굴을 마사지하듯 비비는데, 그 느낌이 참으로 좋다. 가끔, '여행자에게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본다. 어떤 이는 맛 집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온천이나 찜질방을 찾을 것이다. 그렇기에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겐 역시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풍경이 여행의 제일 깊은 맛이다.

   
가을춤1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가을춤6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낚시꾼에게 제일 큰 행운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물낚시가 아닐까? 감성돔이나 이런 대물을 낚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촬영을 주로 하는 여행자에겐 역시 풍경이 제일이다.

그런데, 합천댐을 도는데 뭔가 눈에 띈다. 하얀 물체가 늦은 저녁시간, 빛을 발산한다. 갑자기 차를 정지하고, 주변을 살피며 뒤로 후진했다. 그곳엔 눈부신 빛이 가득했다. 한숨에 카메라를 들고 걸었다. 그곳엔 빛이 있었고, 억새가 춤을 추고 있었다. 사진은 빛의 예술. 빛이 없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 적당한 빛에 출렁이는 갈대, 그곳엔 춤추는 억새가 빛을 받아 한층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가을춤2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가을춤7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억새밭에 들어서자 숨이 멎는다. 이런 곳에 잎사귀가 거의 다 떨어지는 억새가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드라이브 코스로 지나가다 운 좋게 만난 갈대숲이었기에. 그런데 또 다른 여행자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삼각대를 대고 제법 폼 나는 렌즈를 갖추었다. 괜히 기가 죽는다. 나는 볼품없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을춤10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어디서 왔느냐고 먼저 물었다. 창원에서 왔다는 60대 중반을 넘어선 부부. 그런데, 묻지도 않은 말을 내게 건넨다. 어떻게 여기에 알고 왔으며, 어디 가서 여기를 말하지 말라고. 왜냐고 물으니 이런 좋은 억새밭이 소문이 나면 금세 망가져버린다고. 옳은 말이다. 나 역시 정말로 동감하는 말이다. 사진 작품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장소가 정말 행운 중에 행운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렇기에 함부로 이런 장소를 말하기는 쉽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자연보호 차원에서도.

   
가을춤3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가을춤8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한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쳐 있었다. 시간이 나를 볼모로 붙잡아 놓은 것은, 역시 어둠 속에 빛나는 야경 억새숲이었다. 합천호 잔잔한 물은 빛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네온사인 빛 보다는 더욱 아름다운 물에 뜬 빛. 무지개 빛이다.

셔터 속도에 달라지는 빛은 사진예술에 있어 아주 민감하다. 십 몇 분의 일 초에 따라 달라지는 게 사진예술이다. 작품을 하나 얻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런 시간을 한 시간을 넘게 보냈다. 어둠이 내리고 멀리 마을은 불빛이 하나 둘 켜 진다. 도로에는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이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여행자.

   
가을춤4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사진을 촬영하고 후회하는 나. 그 동안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하는 나. 그러나 어쩌랴? 내 수준이 이 정도인 것을. 그래도 좋다. 이렇게 좋은 배경에, 이렇게 혼자 몰입해 있다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이 시간. 나는 행복하다. 마을 불빛에 춤추는 억새, 차량 불빛에 흔들리는 억새, 합천호 물빛에 비친 억새와 야경 모습. 11월 둘째 주말, 바람에 살랑거리는 억새처럼, 나를 흔들거려 놓고 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의 가을 모습이다.

   
가을춤9 억새가 가을춤을 추고 있다.
 
돌아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왜? 그건 부족함이다. 내일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핑계 같지만, 내일 다시 와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내일 와서 다시 찍어도 오늘 만큼 훌륭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만났다. 홀로, 훌쩍 떠난 합천 가을여행에서. 

정도길의 블로그 ‘안개 속에 산은 있었네’ 바로가기 http://bamnwind.tistory.com/
 

뉴스앤거제  nng@newsngeoje.com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앤거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