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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절규 "난 미치지 않았어요! "독거노인의 팍팍한 벼랑끝 삶…이웃이 더 돌아보고 보듬어야

#1
지난 7일 시청 화단에서 농약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된 이 모(78) 할머니는 혼자였다. 동부면에서 살던 이 모 할머니는 7월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지원 자격을 잃었다. 그동안 노령연금과 기초생활지원금 등 월 40여만원의 정부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던 할머니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에서 제외돼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할머니의 피붙이인 출가한 딸은 형편이 넉넉치 못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출가한 딸에게 의지하려는 생각도, 큰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현행법상 부양의무자에 속하는 사위가 오랜 실직상태에서 최근 시급단위 임금을 받는 조선협력사에 취업을 했다. 사위에게 소득이 생기면서 할머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정한 지원 자격을 잃고 말았다. 최소한의 생계비마저 끊기게 된 할머니에겐 지원 자격상실이 곧 삶을 붙들 여력의 상실이나 마찬가지였다. 

#2 
지난 15일 둔덕면 방하리 산방마을 작은 촌집에서 만난 한 씨(82) 할머니도 혼자였다. 할머니는 4월초 어느날 병원에서 나온 건장한 남자들에게 묶여 정신병동으로 끌려간 뒤 석달간 정신병동에 갇혀있다 지난 7월초 퇴원했다. 정신병동 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할머니는 이달 초 또 병원에 끌려가 1주일을 갇혀있다 사흘 전 나왔다고 했다.

한 씨 할머니도 노령연금과 기초생활지원금 등 월40여만의 정부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피붙이로 딸 셋이 있었지만 30여년 전 재혼하면서 헤어졌고, 그때 헤어진 막내딸(수원거주)만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재혼한 남편도 13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기자가 찾은 날 한 씨 할머니는 놀란 토끼눈을 하며 극도로 불안해했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그제야 비로소 “난 미치지 않았어요. 너무 억울합니다. 또 잡으러 올까봐 너무 무서워요. 제발 나 좀 잡아가지 말게 해 주세요….”라고 애원했다.

 

   
▲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심신이 크게 지쳐있는 둔덕면 방하리 산방마을에 사는 한 씨 할머니. 

지역 내 독거노인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최소한의 생계비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자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벼랑 끝 삶이다. 가벼운 노인성치매 증세에도 주변인들이 오랜 정리에 대한 배려없이 그저 노망난 사람으로만 치부해 정신병원에 보내 버린다.

두 할머니의 ‘막다른 선택(자살)’과 ‘원치 않는 강제입원’은 복지제도의 사각지대가 엄연한 현실에서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지난해 거제지역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총3356명. 이들 중 절반가량이 독거노인 가구로 추정되고 있다.

두달마다 실시하는 사례조사에서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늘어나면, 이들은 실제 부양과는 상관없이 수급대상에서 제외되고, 결국 이 할머니 같은 막다른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다행히 동부 이 모 할머니의 자살소식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최근 관련법개정이 추진중이다.

남윤인순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3일 "최근 3년간 거제시 이 모 할머니처럼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 자격을 잃은 기초생활수급자가)자살한 사례가 알려진 것만 6건"이라며 "현행 수급권자 선정조건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히고, 이날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현재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되어 있는 부양의무자의 범위를 '1촌 직계 혈족'으로 축소했다. 선정 기준에서도 부양의무자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사람은 누구나 수급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린다. 부양의무자 규정은 부정수급자나 부양의무자 있는 자에게서 보장비용을 징수하는 요건으로만 쓰이게 된다.

앞서 시민단체들은 보건복지부가 실제로 부양이 이뤄지고 있는지, 부양의무자의 실제 소득이 얼마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 자격을 박탈한 사례가 빈번하다고 비판해왔다. 또 지난 9일 빈곤사회연대 등이 참여하는 기초법(국민생활기초법)개정공동행동은 "실제로 부양하지 않는 부양의무자 때문에 수급자격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둔덕 한 씨 할머니와 같은 ‘강제입원’ 사례에 대한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도 절실하다. 기자의 취재결과 한 씨 할머니의 경우 일시적으로 나타난 노인성치매 증세를 주변인들이 그간의 정리에 대한 배려없이 상시적인 ‘미친사람’으로 내몰아 강제입원 시킬 수 밖에 없도록 내몬 경우였다.

실질적인 부양도 안했고, 법적인 부양책임도 없는 수십년 전 남남이 된 피붙이가, 그것도 형편이 넉넉지 않는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노망난 모친을 당장 데려가라’는 황당한 연락을 받는다면, 그 피붙이 입장에서 강제입원 말고 달리 뭘 더 할 수 있을까.

한 씨 할머니의 경우 몇 달간의 병원생활로 인해 수급비 대부분이 병원비로 공제되고, 지금은 생계주거비 5만원과 기초노령연금 9만원 등 한달 13만여원으로 버티고 있다. 다행히 한 씨 할머니 퇴원이후 이웃 등지에서 쌀과 생필품 등을 지원해 근근히 생활하며 기초생활수급비가 정상지원 될 때까지 버티는 중이다.

이와관련 거제시복지과 관계자와 둔덕면 복지담당자는 “독거노인에게는 노인돌보미 서비스 등을 통해 1주일에 두 번 이상 도우미들이 개별가구를 방문하고, 전화를 통해 수시로 상태를 체크한다”며 “한 씨 할머니의 경우 퇴원사실이 확인되면 10월부터는 정상적인 수급비가 지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후기]
한 씨 할머니는 왜 정신병원 강제로 보내졌나

 

 

 

 

   
▲ 현관문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모(82) 할머니
둔덕면 방하리 산방마을에 사는 한 씨(82) 할머니의 취재는 제보로 시작됐다. 제보자의 말은 ‘둔덕에 홀로 사는 모 할머니를 주변에서 미친 사람으로 몰아 정신병원에 수개월을 강제입원 시켰다가 얼마 전 나오게 됐는데, 또 강제로 입원시켜 1주일 만에 나왔다. 할머니가 너무 억울해 하고 있다’가 요지였다.

 

 

소낙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15일 오전, 둔덕면 방하리를 찾아 마을 이장부터 만났다. 자초지종을 들은 마을 이장은 “내가 보기에는 미친 것 같지 않았는데 왜 입원하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자세한 사항은 할머니에게 직접 들어보라”며 할머니 집을 일러줬다.

할머니는 이웃집에 마실 나갔는지 없었다. 집은 전형적인 촌집이었으나,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고, 마당 빨랫줄엔 널린 빨래가 비를 맞고 있었다. 한참을 찾은 할머니는 이웃집에서 다른 할머니와 함께 마늘을 까고 있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기자 2명을 본 한씨 할머니는 꽤 놀랬다. 정신병원에서 자신을 또 잡아기기 위해 온 줄 알았다고 했다. 비가 잠잠해지기를 한참 기다린 뒤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집 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할머니가 사는 집은 흙집 초가였는데, 몇 년 전 대우봉사단에서 리모델링 해 준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전한 당신의 삶은 참으로 기구했다.

한 씨 할머니의 고향은 이북 원산. 해방 직후 할머니가 18살 되던 해에 원산에서 홀로 넘어와 강원도 인제에 정착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얼마안가 이곳에서 어떤 총각을 만나 결혼했고, 딸 셋을 낳았다고. 그렇지만 당시 남편이 술만 먹으면 폭행을 일삼아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어 홀로 부산시 지금의 녹산공단 인근으로 도망쳐왔다고 했다. 할머니가 부산으로 올 때 쯤엔 딸들은 다 큰 상태였다고.

녹산인근에서 굴 까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할머니는 이곳에서 둔덕출신 남자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조금있다 지금살고 있는 둔덕 방하로 와 정착했다고 한다. 그때가 지금부터 30여년 전 이라고. 그러나 평생을 함께 하리라 약속했던 그 사람(남편)은 불과 5년만에 둔덕 인근마을에 사는 전처가 낳은 아들집으로 가 버렸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았다고 했다. 아들집에 살던 남편은 13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할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기자가 찾은 날도 마루 탁자엔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지금은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둔 건 자신이 다니던 교회목사였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정신병원 입원은 직계가족 동의 없이는 강제입원이 안된다는 점에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에겐 이웃 마을에 사는 남편의 전처자식이 있지만 사이가 좋지 않고 특별한 왕래도 없다고 했다. 나머지 할머니의 피붙이는 강원도에서 낳은 딸 셋이다. 그 중 둘은 아예 연락이 되지 않고 막내딸만이 가끔씩 연락이 온다고 했다. 실질적인 정신병원 입․퇴원 수속은 할머니가 말한 목사가 아닌 그 막내딸이 했을 공산이 컷다.

 

   
▲ 집 마루에서 기자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는 한 할머니.

입퇴원 과정을 할머니에게 여쭤봤다. 할머니는 한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그 텔레비전 속에서 미국대통령과 세계각국의 대통령들이 모여 할머니를 초대했고, 할머니를 위해 같이 춤도 춰 졌다며 너무 기분이 좋아 밤늦게까지 함께 춤을 췄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설명을 듣은 기자는 할머니의 증세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노인성 치매로 판단했다. 할머니가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둔 건 목사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교회에 가서도 같은 증세가 일시적으로 나타났을 것으로 예상했다.

해당교회를 찾아 갔으나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교회달력에 적힌 목사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으나 몇일째 꺼져 있었다. 몇일 뒤 어렵게 수소문해 수원에 살고있다는 막내딸의 휴대전화를 알았고, 통화가 가능했다.

할머니의 막내 딸 역시 결혼에 실패하고 대학생인 딸아이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고 했다. 처음 선입견을 갖고 대했던 기자는 어쩔수 없었음을 하소연하며 속으로 울음을 삼키던 할머니의 막내딸에게 많은 연민을 느꼈다.  할머니의 입퇴원과 관련해 막내딸이 전해준 전후과정의 대략은 이랬다.

올 봄 교회측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의 증세가 이상하다. 병원에 입원시켜야 할 것 같다가 요지였다. 딸은 거제시내 모 병원에 전화를 걸어 할머니의 정신과 병동 입원을 요청했고, 병원에서 할머니를 데려갔다고 했다. 그리고 올 7월 5일 증세가 호전됐다고 판단해 할머니를 퇴원시켰다.

퇴원한 할머니는 자신을 병원에 가둔 게 교회목사와 막내딸이 공모한 것이라며 극도로 흥분했고, 그 과정에서 건강이 크게 나빠져 고현시내 모 정형외과에 또다시 20여일간 입원시켰다고 말했다.

7월말 정형외과 퇴원 뒤 또다시 교회쪽에서 전화가 와 횡포가 심해졌다 입원시켜야 겠다고 종용했고, 일부 주민들도 전화를 걸어 ‘당장 모친을 데려가든지, 아니면 강제로 차에 태워 수원으로 보내겠다’고 하는 바람에 너무 놀래 다시 입원을 시켰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입원당시 병원관계자는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 할머니가 진짜 미친 사람이냐고 물어왔고, 이때 마을 이장은 “미친것 같지는 않았는데….”라고 답했다고 했다.

한 씨 할머니의 두 번째 퇴원에는 생업이 바쁜 할머니의 막내 딸 대신 딸의 딸, 즉 대학생인 할머니의 손녀가 직접 병원을 찾아 퇴원수속을 밟고, 돌아갔다.

기자와 만난 할머니는 텔레비전 속 대통령 이야기에서 약간 흥분하는 듯 했을 뿐 다른 행동에서는 전혀 치매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취재를 마친 기자가 차를 타고 마을 어귀를 빠져 나올 때, 할머니는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기자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번다시 정신병원엔 가지 않게 해 달라는, 아니  가지 않겠다는  애끊는 외침이자 다짐으로 와 닿았다.

 

   
▲ 둔덕면 시방리 한 씨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본래 흙집 초가였던 이 집은 몇해전 대우조선봉사단에서 리모델링을 해 줬다고 했다. 가운데는 함께 취재에 나선 한남일보 정일응 기자. 

신기방 기자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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