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석씨와 아들 상보군

"이렇게 아플 것 같았으면 고민 좀 할 걸 그랬어요. 하하하"
삼성서울병원 중환자병동에 누워있는 거제제일고 2학년 김상보(16)군. 김군은 얘기 도중 수술한 곳이 아픈지 얼굴을 찡그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잘못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이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해 본적도 없어요"
김 군은 지난 주 자신의 간을 절반이나 떼어내 이식하는 7시간 대수술을 받았다. 이식 상대자는 다름 아닌 상보군의 아버지 김인석(50, 연초면 덕치리)씨.

"아직 애 인줄 알았는데....너무 듬직 합니다" 상보군의 어머니는 장하고 고마운 아들에게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삼성서울병원 중환자병동 휴게실에서 만난 김씨 가족들은 큰 일을 치룬 사람들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밝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상보군 어머니는 일주일전 얘기를 꺼내려 하다가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지난 10월 회사에서 실시하는 정기검진을 받다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워낙 건강했던지라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거제에서 부산으로 옮겨 간절제수술을 하려 했으나 워낙 재발 위험성이 높고 다른 부위로 전이됐을 가능성도 높아 반드시 간이식수술을 해야 될 지경.

상보군은 이 얘기를 듣자마자 곧 바로 간을 아버지에게 이식하겠다고 나섰다. 대학생인 누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이식하겠다고 나선 상보군의 행동에 김씨와 김씨 부인도 한동안 당황스러웠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행여나 아들의 건강까지 해칠까봐 걱정과 두려움부터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전 아빠 닮아서 건강 하나는 타고 났는데 그까짓 간 절반 떼내도 금방 자랄껄요. 엄마 아빤 아무 걱정말고 저만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상보군의 행동에 부부는 할말을 잃었다.

아들의 적극적인 의지로 마침내 지난 주 목요일 대수술에 들어갔다. 김씨 부인은 수술실 밖에서 피가 말랐다. 남편과 아들이 들어간 수술실은 반나절이 지나도 열리지 않았다. 7시간이 지나서야 아들이 먼저 수술실을 나오고, 5시간이 더 지나서야 남편이 실려 나와 곧바로 중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런 광경을 보고 거의 정신을 잃은채 눈물만 흘리던 부인은 수술집도 의사로부터 성공적인 수술이었단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아들은 회복실에서 이틀을 보냈고, 이후 정신이 돌아온 두 남자를 보고 그제서야 안심했다.

기자가 김씨에게 수술후 정신이 들고 처음 아들을 맞았을 때 무슨 말을 해 줬냐고 물었다. 김씨는 한참을 목이 메여 말을 하지 못하다가 "계속 눈물만 흐르고 손만 꼭 잡은 채 지금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죠. 많이 아팠을 텐데 이겨내 준 아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라고 나즈막이 말하면서도 아들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김씨는 흉부 전체를 절개한 긴 수술 자국을 보여주며 "아들도 이만큼 칼로 자르고 간을 떼어 냈는데 얼마나 아팠을까요.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척하며 태연하게 내 앞에서 웃고 있는 걸 보니 속상하죠. 행여나 수술로 인해 아들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종종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들이 이식해 준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스스로 죄책감 때문에 가족간 분위기가 서먹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겠단다. 김씨 역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 앞으로 가족들을 잘 대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옆에 있던 상보군이 단숨에 깨 버렸다. 상보군은 "의사선생님이 세달 동안 영양보충만 잘 하면 금방 정상으로 돌아온데요. 어머니, 아버지는 그냥 저 맛있는 거로 잘 먹여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며 활짝 웃었다. 또 "세달안에 빨리 나아야 랩도 다시 하죠"란다. 상보군은 거제시 청소년 랩 스쿨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다.

"글쎄 누가 거제사람 아니랄까봐 나으면 젤 먼저 할 일이 두 남자가 낚시 같이 간데요. 나만 빼놓고" 김씨의 부인이 행복한 투정을 부리자 휴게실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김씨와 상보군은 다음 주에 퇴원할 예정이다. 거제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는 말에 밝고 유쾌하게 웃는 김씨 가족들을 뒤로 하고 거제로 돌아왔다.    <거제타임즈 박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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