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해진 갈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발끝에 딩구는 만추(晩秋). 그맘때쯤이면 누구나 트렌치코트의 깃을 곧추세우고 낙엽 쌓인 오솔길을 하염없이 거닐면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어진다. 물론 대 도시의 도심에도 낙엽의 거리는 있지만 인파와 공해에 찌든 도심에서 만추의 소슬한 정취를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찾아가는 길이 좀 멀기는 하지만 노자산 자락의 거제도 동부 땅에 위치한 거제자연 휴양림은 그런 만추를 즐기기앤 딱 제격이다. 동부면 구천리 학동 고갯길에 자리한 거제 자연휴양림은 거제 사람들의 쉼터이자 자랑이다.

36만평의 너른 땅에 느릅나무, 포플러나무, 고로쇠나무, 피나무 등 수 십만여 그루의 낙엽 활엽수가 빼곡히 들어찬 이 숲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거제의 숲 중에는 유일하게 낙엽활엽수림일 뿐만 아니라 오색단풍의 화려함이 가장 돋보아는 숲으로도 손꼽힌다.
 

가을단풍이 절정인 이곳에는 여러 종류의 희귀 동, 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데, 특히 세계적인 희귀조인 팔색조가 서식하고 있어 신비의 숲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 신비로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인지 거제 자연 휴양림은 인공이면서도 웬만한 천연림보다도 더 천연스럽다. 아름드리 활엽수가 울창한 숲속의 한 복판에는 흙냄새 짙은 오솔길과 맑은 물이 쉼 없이 주절대는 실개천이 길게 뻗어있어 사시사철 언제나 그윽한 운치를 자아낸다.

특히 꽃잎처럼 곱고 화사한 단풍잎이 소슬해진 갈바람에 우수수 흩날리는 늦가을의 정경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이 숲속에 앉아 있다 보면 다시 길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좀체 들지 않는다. 수 백 년 동안 붙박이처럼 살아온 나무들처럼 그냥 눌러 앉고 싶어진다.

휴양림 앞으로는 지방도가 지난다. 이 도로를 타고 조금만 달리면 노자산 (565m)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동부면 연담마을을 지나게 된다. 집 근처는 물론이고 산비탈과 밭 주변에도 감나무가 지천이다. 이 마을의 주인들은 아스라이 보이는 노자산의 정상부근이 희끗희끗 해질 무렵이면 감을 따고 말리느라 몹시 분주해진다.

처마 아래에는 먹음직스런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낮은 슬레이트 지붕과 돌담에는 감 껍질을 말리는 채반이 즐비하게 올려져있다. 고향에서의 아득한 추억을 새록새록 되살아나게 하는 풍경이다.

연담 삼거리 도로를 따라 노자산과 선자산 사이의 고갯길을 하나 넘어선 뒤 마침내 구천계곡의 깨끗한 물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 구천 댐이 생기기전에는 구절양장의 깊은 계곡이 철따라 절경을 이루었다. 봄의 약동과 여름의 신록, 가을의 단풍은 장관이다.

구천계곡은 거제도 중앙의 북병산과 계룡산 사이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드는 구천에 있다. 태곳적부터 쉼 없이 흘러온 구천물길은 커다란 바위를 타넘거나 너른 반석 위를 미끄러져 내리면서 곳곳에 여울과 소(沼 )를 만들어 놓았다.

6.25 전쟁 때, 구천계곡에 피난 왔던 육당 최남선도 둘러보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댐 입구에는 수달 생태공원을 조성해 놓았고, 옛날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마을 사람들은 댐 건설 후 마을이 잠겨버리자 마을을 떠나 여기저기 흩어져 살다가 다시모여 망향비를 세웠다. 망향비에 새겨진 비문을 읽다보면 물속 어디인가 그들의 발자취가 비치는 듯 아련한 기분이 든다. 거제도 내에서는 높은 곳에 있어 그런지 깊어가는 가을에 빨갛게 노랗게 산을 물들이고 있다.

거제자연휴양림 구천계곡과 함께 거제도의 대표적인 단풍절경으로 알려진 곳은 지금의 거제시 문동동에 위치한 문동폭포이다. 

이 폭포는 높은 산과 들에 둘러 쌓여있어 골짜기가 깊고 계류의 양이 늘 풍부하다. 또한 너럭바위가 많고 계곡도 넓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11월 중순이면 눈에 띄는 산자락과 골짜기마다 붉게 물든 단풍으로 온통 불바다를 이룬다. 연두 빛 산록과 함께 산 벚꽃, 산 복사꽃 등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4월의 풍광도 보기 드문 장관이다.

<여행정보>
* 맛 집
울산이나 부산지역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 단풍 여행길에 나섰다면 거제 섬 꽃 축제를 둘러본 뒤에 저녁으로 거제 굴구이를 맛 볼 수 있다. 죽림해수욕장과 둔덕, 청마 유치환 생가로 가는 해변가에는 원조 송곡 굴구이(055-632-4200), 거제도 굴구이(055-632-9272), 옥바위 굴구이(055-632-7256), 집들이 즐비하여 색다른 굴 요리를 맛 볼 수 있다. 바다에서 가장 먼저 건져 올린 생굴도 주문하면 가정으로 택배도 가능하다.(태진수산 055-633-5037)

* 숙 박
거제자연휴양림(055-639-8115)의 숙박시설인“숲속의 집”은 방, 다락방, 주방과 요리기구가 잘 갖추어져 있어 식자재만 준비해가면 잠자리와 식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숲속의 집은 5인용을 비롯해 중산막 10인용인 동백, 해송이 있다. 여름에는 이용자가 많아 예약이 어려운데 매월 1일 다음날의 예약을 인터넷으로 받는다.

▲ 손영민

숲속의 집 동백, 해송(10인용)은 평일 10만원, 주말과 성수기는 14만원. 중산막(5인용)은 평일 5만원, 주말과 성수기는 7만원. 콘도형 숙박시설(5인실) 평일 5만원, 주말과 성수기는 7만원. 야영테크 한조 5천원이다.

* 노자산 등산안내 (거제시관광과 제공)
1. 부춘골- 해양사-임도-헬기장-정상(총 3.6km, 1시간 20분소요)
2. 평지만을-임도-헬기장-정상(총 1.8km, 40분소요)
3. 자연휴양림- 대피소-전망대-정상(총 2.8km, 1시간 10분소요)
4. 학동고개-헬기장-마늘바위-전망대-정상(총 2.3km 1시간소요)
5. 내심우물-뫼바위-마늘바위-전망대-정상(총 3.4km 1시간30소요)

글/ 사진: 손영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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