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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 속 거제호, 누가 '키(key)' 잡아야 할까
서, "정치는 정치인이, 시정은 행정가에게"
[기획-거제시장 후보에게 듣는다 7] 서일준/자유한국당 거제시장 예비후보
6.13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조선업 불황으로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거제에서 차기 거제시정을 이끌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뉴스앤거제는 예비후보 등록을 앞둔 지난 2월말부터 거제시장 출마를 공식선언 한 ‘유력주자’를 상대로 릴레이인터뷰를 벌여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번엔 그 일곱 번째 대상이자 마지막 주자로 자유한국당 서일준(54) 예비후보를 4일(금) 오후 서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만났다. 거제시부시장 출신이자 청와대 총무·인사팀장을 역임했던 서일준 예비후보는 1시간 반에 걸친 인터뷰 내내 행정전문가 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이 돋보였고, 정당정치와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에서도 여타 후보들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3급 부이사관까지 오른 그의 ‘입지전적 삶(논두렁에서 청와대까지)’은 결국 '격랑의 바다에서 거제호를 구할 유능한 선장론'으로 귀결됐다. 인터뷰 정리는 화자의 본심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그의 ‘입말’을 최대한 살렸다. 다음은 한국당 서일준 예비후보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고향이 연초면 한내리로 알고 있다.
“태어난 곳은 장승포다. 아버지가 장승포읍사무소에 근무할 당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직을 그만두시면서 연초 한내에 정착했다. 그때가 유아기다. 때문에 유년시절은 연초 한내에서 다 보냈다. 어디가면 연초 한내가 고향이라고 말한다.”

-가족관계는.
“한내에서 뱃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10여 년 전 돌아가셨고, 어머니만 본가를 지키고 계신다. 형제는 2남1녀다. 아내와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학교는.
“오비초교, 연초 중을 거쳐 마산고를 나왔고, 공직생활 하면서 방통대를 졸업했다. 졸업당시 성적이 꽤 좋았다. 청와대 근무당시 연세대 대학원을 진학해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서울시립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당시 마산고는 중학교 성적이 탑클래스에 들어야만 가던 곳이다. 그런데 왜 제때 대학을 진학하지 않았나.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 다 얘기 했는데…두 가지다. 하나는 아버지가 공직을 그만두시고 선출직에 나섰는데, 당선은 됐지만 돈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어중간한 실력으론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됐다. 또 하나는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을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선거사무소가 예전 김한표 국회의원 선거사무소와 같은 자리다. 다들 목이 좋은 자리라고 얘기한다.
“자리는 맞는데, 사이즈는 절반이다. 사무소가 비좁다 보니 개소식 행사를 많이 걱정했다. 다행히 2층 분양사무소가 개소식 며칠 전에 이사를 갔다. 선관위에 문의하니 같은 건물 내면 행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건물주에게 하루만 쓰자고 부탁했다. 개소식 때 인원동원을 전혀 안 했는데도 수 천 명이 오셨다. 처음 본 사람들도 많았다. 80평에 이르는 행사장이 비좁아 바깥에선 2/3가 넘는 인원이 들어오지 못했다. 만약 개소식 며칠 전 2층 사무실이 비지 않았더라면 큰 실수를 할 뻔 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공직입문은 언제 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포기한 뒤 아버지 뱃일을 도왔다. 그러다 87년 지방공무원 9급 공채에 합격해 연초면 면서기로 공직을 시작했다.”

-거제에서 몇 년간 근무했나.
“정확히 7년 7개월이다. 그 뒤 서울로 전출 갔다.”

-서울로 간 계기는
“특별한 건 없다. 그냥 집안의 큰 빚 다 갚고 나니 이제는 부모 슬하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5년 1월1일부로 거제군과 장승포시가 통합했다. 그때 제 직급은 중견 7급으로, 통합기획단 조직인사 업무를 맡고 있었다. 때문에 통합 거제시가 출범하면 저는 인사계 차석 보직이 예약된 바나 다름없었다. 1~2년만 더 있으면 6급 진급도 가능했다. 동료에 비해 진급이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그러던 중 거제를 떠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때마침 정부 주도로 전국의 인근 지자체 통합이 추진됐다. 거제는 물론 인근 충무시와 통영군, 진주시와 진양군 등이 통합했다. 두 지자체가 통합하면 아무래도 인력이 남아돌게 마련이다. 그래서 통합시 공무원은 자신이 원할 경우 직할시나 특별시에 전출갈 수 있도록 하는 한시적 제도를 만들었다. 저는 그 기회를 활용했다.
처음엔 거제와 가까운 부산시에 갈려고 했다. 부산시 전출 신청서를 쓰고 집에 가서 아내와 의논했더니 ‘부산이나 서울이나 생면부지는 매한가진데, 이왕 갈 거면 서울로 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전출신청을 부산시에서 서울시로 바꿨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연락이 오기로 ‘당신은 거제군청에서 초스피드로 진급한 사람이니, 서울시로 오려거든 직급을 한 단계 낮춰야 한다’고 얘기했다. 제가 ‘무슨 소리냐. 내가 거제군청에서 열심히 일해 진급한 것인데 왜 강등을 하느냐'고 따졌더니 ’그게 싫으면 오지마라‘는 거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고민 끝에 직급을 8급으로 낮춰 서울시에 전출했다.
당시 거제시 동료들은 저를 ‘또라이(어리석은 사람의 속된 표현)’ 취급했다. 가만히 있으면 인사계 차석에다 1~2년 내 6급 진급도 가능한데, 강등까지 하면서 외지로 가고자 발부둥치니 그런 취급을 받을 만도 했다.”

-공직자로서 본의 아닌 직급강등 수용은 꽤 어려운 결정인데.
“그래도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다보니 감행한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런데 가자마자 후회했다. 시골에서 논두렁이나 타던 면서기가 서울로 가니, 인맥이 있나 일가진척이 있나.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더 혹독한 건 서울의 인심이었다. 처음 13평짜리 주공아파트를 4000만원 전세를 주고 얻었다. 거실 겸 주방에다 방 하나가 전부인 단촐한 집이었다. 이사할 때 보니 거실 겸 주방에 장판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물으니 ‘아, 가져갔네’ 이러더라. 서울에선 세입자가 장판이나 도배를 한다고 일러줬다. 방에는 장판은 있었지만 곳곳이 구멍이 나 더러워서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걷어 바깥에 내 놓고 치우기 위해 나갔더니 이마저도 누군가가 벌써 가져가고 없었다. ‘서울은 참 험한 동네구나’ 라는 걸 그때 절실하게 느꼈다.”

-서울에서의 공직생활은 어땠나.
“처음 송파구청으로 발령받았다. 서두에 잠시 언급했지만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직급을 낮춰 갔지만 1년이 채 안 돼 연말 인사에서 다시 7급으로 승진했다. 당시 제 직급 승진자가 120명 정도 됐는데, 승진서열 내 다음에서 끊기더라. 96년 2월 송파구청에서 서울시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시청전출 의향을 내비치니 동료들이 ‘시청에 가면 일이 힘들어 다들 가기 싫어한다. 9급 시골면서기 출신이라 대접도 못받는다’며 말렸다. 그래도 갈려고 하니 전출의향서를 쓰라고 했다. 서울시청에서 최고 좋은 부서가 어디냐고 물으니 인사과라고 했다. 그래서 인사과를 1순위로 썼다. 그다음 제일 일이 힘든 데가 어디냐고 물으니 행정과라고 했다. 행정과를 2순위로 썼다. 시청에 가니 일이 제일 힘들다는 행정과로 발령 났다.”

-독특한 가치관이다. 시청생활은 어땠나.
“진짜 열심히 일했다. 행정 일은 그때 다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 생활은 여기와는 차원이 틀렸다. 매일 아침 7시 이전에 출근했고 퇴근은 무조건 11시 반 막차(지하철)를 타야했다. 처음 갈 땐 조순 시장이었는데, 98년 고건 시장으로 바뀌었다. 99년 7월 또다시 초스피드로 진급해 6급이 됐고 총무과로 발령이 났다. 총무과에선 고건 시장을 수행하는 의전팀으로 배속됐고, 2년 정도 고건 시장을 최측근에서 수행했다. 막판에는 월드컵 조직위에 파견 나가 1년 정도 일했다. 2002년 7월 MB가 시장이 되면서 인사과로 자리를 옮겼다. 시골 면서기 출신이 서울시 5만명이 넘는 공무원의 인사실무를 담당하는 자리였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역대 인사과 실무담당 최고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때의 인연으로 MB의 눈에 들었는가.
“인연은 있었지만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건 아니다. MB의 서울시장 재임기간은 02년7월에서 06년6월까지다. 퇴임 뒤 대통령 출마를 준비해 이듬해 12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저는 07년초 서울시에서 서초구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유는 06년 서초구청장에 당선된 분이 제가 서울시에서 같이 일했던 상관이었다. 이분이 저에게 도와달라면서 서초구 전출을 요구했다. 그래서 갔다. 물론 그 전에 사무관을 이미 달았다. 서초구청에서 전산정보담당관을 했는데, 그때 지금은 지자체마다 일반화 돼 있는 ‘CCTV 통합관제시스템’을 제가 처음 추진했다.”

-그 시스템을 진짜 처음 만들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지금은 흔한 시스템이지만, 당시 제가 기획해 만들어 낸 시스템이다. 서초구에 처음 가서 부서별 인사를 다니는데, 몇몇 사무실에서 여직원들이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뭘 보느냐'고 물으니, 주차단속 카메라 또는 쓰레기 불법투기 단속 카메라를 본다고 했다. 이런 걸 모아 한곳에서 관리하면 업무효율을 더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래서 경찰청에도 가보고 소방방재청에도 가 봤으나 통합관리시스템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동탄신도시 유비쿼터스' 운용 광고를 보고 ‘아, 이거다’ 라는 생각에 직원을 보내 현장사진을 찍어 오도록 했다. 이 시스템을 약간 변형해 CCTV통합관제시스템 기확안을 내 놓고 난 뒤 실행되는 것을 못 보고 청와대로 가게 됐다. 지금은 이 시스템을 지자체마다 운용하고 있다.”

-청와대로 간 계기는.
“MB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인수위가 출범하면서 인수위 참여 제의가 왔다. 처음엔 안 간다고 했다. 서초구청장이 나를 믿고 불렀는데 의리 없이 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인수위 참여요청은 계속됐다. MB가 저를 잘 알아서 인수위에 부른 게 아니라 주변 참모들이 시청근무 당시 인사업무를 잘 했다는 걸 기억하고 저를 MB에게 추천한 것이다. MB가 어떤 사람인가. 일을 못하는 사람은 절대 가까이 안 둔다. 결국 서초구청장과 의논해 곧바로 인수위에 참여했다.”

 -청와대 생활은.
“청와대 생활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제가 청와대에서 총무·인사팀에 근무했는데, 매일 아침 5시50분까지 사무실에 도착해야 하고, 토요일도 평일과 똑 같이 근무했다. 일요일만 조금 늦게 출근할 뿐이었다. 그걸 5년 동안 계속했다. 사생활이 거의 없는 정말 힘든 생활이다.”

-거제부시장으로 내려온 계기는.
“솔직히 처음엔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서울생활이 20년 되다보니 모든 인맥이 서울에 집중됐고, 무엇보다 당시 외국공관에 외교관으로 거의 내정단계였다. 그런 와중에 12년 8월 고령(94세)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거제로 내려와 상주로서 초상을 치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인생은 혼자만의 출세가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외국에 가면 최소 3년인데, 애들(당시 중·고등학생)은 좋겠지만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얼마나 외롭겠느냐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거제로 내려가 1년만이라도 어머니와 같이 있자고 마음먹었다.”

-가정사 일만이 직접적인 계기는 아니었을 텐데.
“물론 다른 이유들도 많다. 권민호 시장이 부임한 이후 서울로 출장 오면 늘 청와대를 찾았고, 저와 굵직굵직한 현안을 의논했다. 시 공무원들도 한 달에 3~4번은 찾아왔다. 권 시장은 올 때마다 저더러 거제부시장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그때마다 안 간다고 했다. 청와대에 있는 것이 거제발전에 더 도움이 되고, 거제에 있는 형님(공무원)들이 불편해 할 것이라는 이유도 같다 붙였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초상을 치고 난 후 권 시장에게 ‘예전의 그 제의가 아직 유효하냐’고 물으니 유효하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거제로 오게 됐다. 딸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결과적으로 잘 왔다는 생각이다.”

-공직을 벗어나 선출직에 도전하려면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민주당과 한국당으로부터 동시에 입당요청을 받았고 결국 한국당을 택했다. 이유는.
“딱 부러진 이유는 없다. 처음부터 정치권력을 탐했다면 2년 정도 더 공직에 남아 있다가 국회의원에 도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는 국회의원이 아닌 거제시장에 도전한다. 시장의 역할은 정치보다 행정에 가까운 영역이다. 지방자치와 정당정치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시장에 도전하는 많은 후보들이 지방자치를 외치면서도 정당정치에 스스로 예속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인다. 우리지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엔 무소속 출마도 신중히 고려했었다.
민주당 입당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당과 달리 민주당은 거제에 어떤 실체가 있고 정확한 통로가 어딘지 잘 모르겠더라. 거제정서가 아직은 한국당에 미련이 많다는 판단도 최종결심에 큰 잣대가 됐다.”

-지방자치에 정당정치 개입을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은 정당공천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당은 정당이념과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조직으로 궁극의 목표는 정권획득에 있다. 그러나 시장은 이같은 정당이념과 가치를 실행하는 자리가 아니다. 순수한 생활정치.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더 치중한다. 어느 당에 소속됐다고 그 당의 이념과 가치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당 공천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지방분권과 자치에 중앙당 공천이 개입하는 건 올바른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광역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기초는 전혀 아니다.”

-시장선거 구도가 사실상 확정됐다. 당초 민주당-한국당 후보 2파전 구도에서 대한애국당 박재행 후보가 가세했다. 변광용 후보는 집권여당 후보임을 강조하며 정부예산 확보를 자신의 최고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어떻게 생각하나.
“박재행 후보의 출마소식은 들었는데. 예비후보로 등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변광용 후보가 내세우는 집권여당 후보로서의 예산확보 우위론은 허구에 불과하다. 왜냐. 지금 거제시장을 처음 뽑는 게 아니다.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지금까지 많은 거제시장이 있었다. 집권여당 때 시장을 한 분도 있고, 야당 때 시장 한 분도 있었다. 과거 여당 때 시장 한 사람이 예산을 많이 가져왔나!. 그렇다고 야당 때 시장 한 사람이 돈을 적게 가져왔나!”

-판단이 잘 안 된다.
“YS가 대통령을 할 때 고향 거제에 정부예산이 쏟아졌었나?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 고향이 거제라는 이유로 마치 정부의 예산폭탄이 쏟아질 것처럼 말한다. 이건 현혹이다. 정부예산을 따내는 일은 집권여당이라서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 안다고 돈을 준다면 그것이 제2의 적폐요 제2의 최순실이다. 시에서 기획안을 잘 만들어 정확한 계통대로 실무자와 과장 국장을 설득해 예산을 가져오는 것이다.
여당소속 시장일 때 예산을 많이 가져오고 야당소속 시장일 때 예산을 적게 가져온다는 객관적 통계가 있다면 그 말을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런 통계는 없다. 부시장 하면서 과거 자료를 살펴보니 예산 따내는 일은 시장의 소속정당이 집권당 여부와는 전혀 무관하더라.”

-변광용 후보는 문재인 사람이고 서일준 후보는 이명박 사람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변 후보가 문재인 사람이라는 것은 본인 스스로 문재인 사람이라고 하니, 달리 반론을 하지 않겠다. 다만 저는 고건 시장을 의전팀에서 모셨고, 조순 시장도 모셨던 경험이 있다. 그때 두 분 다 민주당 소속이었다. 최근에는 권민호 시장도 모셨다. 그렇다고 제가 권민호 사람인가, 조순 사람인가. 고건 사람인가.
청와대 근무하는 사람들은 세 종류가 있다. 일반관료·전문가·정치인 그룹으로 나뉜다. 정치인으로 들어온 사람은 MB사람, 노무현 사람, 문재인 사람으로 구분 가능하다. 그러나 관료나 전문가 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분류하지 않는다. 현직 모 장관은 MB정부시절 저와 같이 근무했던 고위공직자였다. 그분을 두고 MB 사람이니 문재인 사람이니 하면서 억지로 구분 짓지 않는다. 그분은 그냥 정부고위 관료일 뿐이다. 평생을 직업공무원으로 일한 사람을 두고 정치인의 편협한 시선으로 억지분류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시각이아말로 청산돼야 할 정치적 적폐다.”

-이해가 된다. 권 시장의 민주당 입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그때는 공무원 신분이었다. 권민호 시장은 공직관료 출신이 아닌 처음부터 정치를 한 분이다. 나름대로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 이해하고 있다. 다만, 그 문제와 관련해 저는 권 시장과 의논한 적이 없었다는 점은 분명하게 밝혀둔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최근의 남북화해 분위기에 각을 세우며 남북정상회담을 연일 폄훼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 정서와도 다소 동떨어진 소리인데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한국당 후보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 최근 뉴스 볼 시간이 없어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설령 그렇더라도 남북이 냉전체제에서 평화분위기로 가는 건 좋은 일 아닌가.
“당연히 좋은 일이다. 거제시장 후보가 북한 핵이나 중앙정당의 정치공방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중앙정치 일은 그들의 몫이고, 지방선거는 시민의 삶의 질 개선에 몰두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지역현안 관련 질문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옥녀봉 풍력단지조성 사업이 다시 추진될 조짐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풍력발전소는 절대 안 된다. 제가 시장이 되면 안할 것이다. 이유가 있다. 첫째 주민들이 절대 동의 안한다. 둘째 풍력발전의 경제성이 검증 안 돼 있다. 셋째, 그렇잖아도 산지훼손이 심한 거제에 생태계 파괴까지 불러오는 그런 사업을 유치할 명분도 약하다.”

-사곡해양플랜트 산단조성과 관련한 분명한 입장은.
“변 후보가 어떤 입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이유는 거제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거제경제가 왜 어렵겠나. 돈은 많지만 돈이 안돌기 때문이다.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다. 왜 돈이 안돌겠는가. 그것은 거제에 희망이 없고 그만큼 투자메리트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투자자들이 자금을 쏟을 수 있는 투자메리트를 리더가 만들어 줘야 한다. 자세한 것은 후일 정책토론회가 진행되면 세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미리 정답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저도 반환과 관련한 입장은.
“지심도 반환은 현재 마무리 된 상태다. 지금까지 지심도 반환이 늦어진 원인 중 하나는 용어선정 오류에 따른 행정접근 착오 때문이었다. 청와대 근무당시에도 권민호 시장과 함께 이 문제로 국방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국방부는 지심도 반환에 대해 긍적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환경부가 반대했다. 2006년 김기춘 국회의원 당시에도 똑 같았다.
제가 거제에 처음 부시장으로 오고 난 뒤, 이 문제로 환경부를 또 찾아갔다. 평소 환경부 담당국장과 친분이 있어 쉽게 면담이 이뤄졌다. 그 때 제가 환경부 국장에게 ‘국방부에서 된다고 하는데 왜 자꾸 환경부에서 지심도 반환에 태클을 거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랬더니 담당국장이 ‘거제에서 관리권을 달라고 하니 못해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제가 ’국방부가 가지고 있으나 우리가 가지고 있으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되물으니 ’국방부는 관리권이 없다‘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한려해상국립공원 관리권을 왜 거제가 가져가야 하느냐. 횐경부에서 관리해야지”라는 말을 흘렸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권 시장에게 현장에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지심도를 가져온다는 게 정확히 뭐냐. 소유권 이전등기에다 국립공원관리권 까지 달라는 것이냐‘고 물으니 권 시장이 ’소유권 이전등기만 하면 된다. 국립공원관리권은 해당사항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제야 저는 용어선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환경부가 생각하는 관리권은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 관리권이었는데, 거제시가 자꾸 ‘관리권 관리권’ 하니 환경부로선 공원관리권 까지 넘겨달라는 것으로 오해해 동의를 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부동산 전문가에게 관리권이 뭐냐고 물었더니 부동산용어에는 소유권 임차권 전세권 지상권은 있어도 관리권이란 말은 없다고 정의해 주더라. 행정용어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이 안 된 상태에서 관리권을 내 놓으라고 하니 환경부 입장에선 지심도공원관리권의 준말로 해석해 줄곧 NO라고 한 셈이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누군가가 지심도 관리권이라 하니 행정에서 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해석 없이 중앙부처와 접촉하면서 지리한 평행선만 달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때 담당국장을 잘 몰랐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관리권 타령만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심도의 소유권은 지금 거제시로 넘어와 있지 않나.
“거제시가 국방부에 대체 부지를 주면서 소유권이 넘어왔다. 그때 제가 환경부 국장에게 ‘오해가 있었다. 소유권만 넘겨 달라는 얘기였다. 국방부든 거제시든 어차피 개발행위를 진행하려면 환경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득했고, 그간의 오해가 풀린 이상 환경부도 NO할 이유가 없었다. 그 뒤 지심도 소유권 이전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지난해 3월 지심도 소유권이 80년만에 거제시로 이관됐다.
저도 반환도 마찬가지다. 반환용어를 정확히 ‘저도 소유권’이라고 해야 한다. 저도 관리권이란 말은 처음부터 틀린 용어다. 저도 소유권이 거제시로 넘어오면 개발행위에 대한 권리도 우리가 갖는 것이다. 다만, 국방부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을 때 땅값 시세나 부지 내 건물 상태 등을 꼼꼼히 따져 뒷일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디테일하게 검증해야 한다.”

-수요예측 실패로 주택공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또 고현항매립지 내에 공동주택 허가가 신청됐다. 항간의 우려가 많다.
“고현항매립지 내 공동주택 건립신청이 설령 서류상 하자가 없더라도 당분간 허가해서는 절대 안 된다. 무조건 보류시켜야 한다. 이유는 굳이 설명안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정동 아이파크 2차 진입로 민원과 관련해 말들이 많다. 해결 가능한 문제인가.
“이미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바로 해야 한다. 저의 시장출마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도시형성은 평지에서 시작해 산으로 올라간다. 항구를 낀 해안도시는 더더욱 그렇다. 평지에서 산으로 갈 때도 평지를 다 채웠을 때 올라간다. 그런데 거제시는 평지를 놔두고 산부터 먼저 올라가 아파트를 지었다. 그리곤 다시 평지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평지 땅값이 너무 비싸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젠 산에서 바다로 가고 있다. 수순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참으로 기이한 경우다.
부시장 재임시절 담당공무원에게 ‘왜 들부터 택지로 개발하지 못했느냐’고 물으니 절대농지들이라 농업진흥지역을 주거지로 풀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농림부에 가서 풀어달라고 해 봤느냐’고 되물으니, 몇 번 갔는데 안 풀어 주더라고 했다. 몇 번 갔다고 풀어줄 것 같았으면 농림부의 존재이유가 없다. 될 때까지 찾아가서 애원해야 한다고 충고한 적이 있다.
왜 그래야 하느냐면 도시라는 건 한번 만들면 없앨 수가 없다.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제가 거제시장에 출마한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들이다. 아파트 짓고 나서 진입로 만들고, 학교 만들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게 다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양정 아이파크 2차 진입로 문제는 개설에 총120억 정도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추경에서 시의회를 설득해 30억을 확보한 뒤 보상을 시작하고, 내년 봄에 본예산 90억을 확보해 다른 사업보다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제가 시장이 되면 이렇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하는 이유가 있다. 주택정책이 실패하면 이렇게 많은 돈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전례를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다음일의 반면교사가 된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거제지역 고교평준화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다. 어떤 입장인가.
“고교평준화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평준화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는 더 우수한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수요층들을 담아낼 학교(특목고 등)가 있어야 한다. 그런 수요층을 거제시 교육시스템 때문에 거제를 떠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대중교통이 활성화 돼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평준화의 의미가 없다.
거제시에서 최고 부족한 게 교육문제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가족이 흩어져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저 같은 경우도 마산으로 유학갔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우수학생이 교육에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은 외지유학 과정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부모의 케어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엄마가 따라간다. 엄마 혼자 케어가 잘 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제에 혼자 남은 기러기 아빠의 생활도 엉망이 된다. 집에 오면 아무도 없고 그래서 혼밥하고 혼술하다 잠들고…. 다음날 직장에 나가 일이 되겠는가. 기업의 생산성에도 큰 차질이 올 수밖에 없다. 때문에 거제시도 이 같은 평준화 전제조건을 어느 정도 갖춰놓고 실행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리 급하게 서둘렀는지 하는 아쉬움이 많다.”

-공감이 가는 진단이다. 서부권 균형개발과 관련한 복안이 있다면.
“조그만 섬 지역에 동부 서부가 어디 있나. 굳이 나누자면 계룡산 터널이 뚫리고 사곡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이 조성되면 상당부분 달라질 것이라 판단된다. 둔덕방향도 언양고개 능성이를 쫌 깎고 도로선형을 조정한다면 10분 내에 도달하는 배후도시 성장이 가능하다.”

-권민호 시장이 7년 여간 재임 중 남긴 숙제들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게 현대산업개발의 입찰제한 경감처분에 따른 70억 상당 공익사업 지원 논란이다.
“전후 내용을 깊이 보지 못했다. 당시 부시장으로서 깊이 있게 관여할 입장도 아니었다. 결국 70억 문제는 시민들의 중지를 모으고, 시민단체와 소통하면서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시장이 되면 어떤 방향성을 갖고 거제를 이끌어 가겠는가.
“우리몸의 신체장기 중 어느 곳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몸이 아플때면 그걸 가장 잘 느낀다. 행정에서도 중요하지 않은 분야는 없다. 리더가 몇 개만 중요하다고 여기면 나머지는 전부 다 사장된다. 시장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기업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시장의 존재이유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데는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관광 등 전 분야를 망라한다. 시장이 어느 것 한 가지를 지향하는 순간 나머지는 부패하고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모든 일을 잘 아울러서 거제전체가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시장의 몫이다.”

-공무원 조직운용에 대한 복안은.
“공무원 조직은 이미 최적화돼 있다. 조직은 운용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가 중요하지 덩치를 키운다고 업무 효율이 오르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조직이 일하는 건 맞지만 조직의 사이즈가 일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리더가 조직과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제시에는 30여개의 부서가 있다. 이들 부서들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때로는 가르치고 때로는 배워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거제시민에게 하고픈 말은.
“거제경제를 살려야 한다. 그렇지만 경제회생은 구호로만 이뤄 지는게 아니다. 희망을 줘야하고 구체적인 실행능력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집권여당의 힘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26만 거제시민의 힘과 뜻을 모아 고향출신 대통령에게 건의하면 되는 것이지 그 건의 대상자가 꼭 집권당 출신일 필요는 없다.
집권여당의 힘을 실어 즐 작정이라면 국회의원을 밀어주면 된다. 국회의원은 당론을 쫓을 수밖에 없으니깐. 그러나 시장은 당론을 쫓지 않아도 된다. 바다가 평온할 때는 선장의 역할이 최소한에 그치지만, 비바람이 불고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올 때는 반드시 유능한 선장이 키를 잡아야 한다. 지금의 거제는 평온한 태평성대가 아니다. 거센 파도가 덮치기 직전의 위기지역이다. 태평성대 때는 아무나 시장을 해도 된다. 허나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행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시민과 소통하며 거제시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지닌 현자(賢者)만이 거제를 구할 수 있다. 누가 과연 그런 현자(賢者)인지 시민들께서 냉철히 판단해 달라."

자유한국당 서일준 후보 선거사무실에게 서 후보와 뉴스앤거제 신기방(오른쪽) 국장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신기방 기자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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