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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단혈(鵝洲丹穴), 숙가조현(宿加祚縣)[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거제시는 신라 문무왕 17년(677), 처음으로 상군(裳郡)이 설치되어 중앙정부의 통제권에 놓인다. 3속현(三屬縣) 중 아주(鵝洲)는 거로현(居老縣)이었는데 경덕왕 16년(757) 아주현(鵝洲縣)으로 개칭하고 성을 쌓았으며 고려와 조선 초기까지 이어왔다. 아주의 성이 4이니, 신(申)·문(文)·갈(葛)·조(曺)이다. 신라의 거로현으로 청주(진주)에 속해 있을 때, 소성왕(昭聖王)이 학생(學生)들의 녹읍(祿邑)으로 삼았다. 이 일대에는 신라시대 석탑 아양리 삼층석탑이 있고 청동기시대 지석묘와 신라시대 고분이 복합적으로 형성된 아주동 고분군이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조선후기의 북학파 실학자인 성해응(成海應)선생은 지리 풍속 서적 심지어 곤충 금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학문에 진력하였다. 19세기 초기에 방문한 여행기에는, 거제시 아주동의 생활상은 물론, 아주(鵝洲) 전 지역에서 퍼져 자라는 석이버섯을 채취하는 거제민의 모습을 그렸다. 석이버섯이 많이 자라는 절벽을 단혈이라 불렀고 붉은 단사가 많았다. 또한 붉은 바다색으로 인해 해로운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적고 있다. 옛사람들은 석이버섯을 먹으면 백발이 검게 변한다고 했다(醫方謂石耳能令白髮返黑).

1). 아주단혈(鵝洲丹穴) / 성해응(成海應,1760년~1839년).

"거제부 아주에 옛 치소 터가 있다. 아주 남쪽에는 옥순봉(옥녀봉)이 있고 봉우리 서북이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남동은 바다에 임해 있고 백 명의 장골이 지키고 있다. 벽면은 모두 붉고 늘 동풍이 분다. 석이버섯이 퍼져있어 토착인은 절벽을 쫓아, 등에 달고 매어 생업으로 절벽 아래에서 채취한다. 바위 절벽 머리위로 한 자나 되도록 옷이 터지게 돌이 빛난다. 붉은 단사가 그 중에 돌출되어 있고 누에고치나 좁쌀 같다. 빛이나니 금방 알 수 있고, 운모처럼 또렷이 거울에 비치듯 비단처럼 밝다. 10여 일 이후에 다시 찾아가 보니 전과 같이 가득차서 넘쳤다. 그래서 단혈이라 한다. 토착민은 숨기고 알리지 않는다. 봉황이 자라난다는 물가 땅에 물이 심히 붉다. 안개에다 찌는 듯한 더운 기운과 적황색이 한층 더 풍토병을 일으킨다며, 사람들의 근심이 되니 아주 바닷가 기운이 심히 해롭다 전한다. 생각건대, 주사(朱砂,붉은 광물)의 기운이리라."

[巨濟府 有鵝洲故址 洲南有玉笋峯 峰西北連陸 南東臨海 削立百丈 壁色皆赤 每東風至 石茸被之 土人從壁背懸囮而下采以爲業 石壁上頭砑綻尺許 丹砂突出其中 如蠒如粟 輝光鑑人 如雲母 眞鏡面 光明等砂也. 摘後十許日 復往看則充溢如前 盖丹穴也 土人秘而不傳 案産砂之所 水甚赤 烟霧薰蒸之氣 亦赤黃色 尤能作瘴癘爲人患 聞鵝洲海氣甚毒 意卽朱砂氣也]

[주1] 단사(丹砂) : 새빨간 빛이 나는 광물. 수은 화합물인 주사(朱砂), 단사(丹砂).
[주2] 단혈(丹穴) : 붉은 동굴, 옛날 중국에서 남쪽의 태양 바로 밑이라고 여기던 곳. 봉황이 산다는 단혈이라는 곳은 바로 朝陽의 골짜기이며 조양은 곧 태양을 마주하는 길운의 징조를 상징한다.
[주3] 주사(朱砂) : 붉은 빛이 나는 광물로 물감이나 한방약으로 쓰임. 부적을 그릴 때 많이 쓰임.

2). 가조현에서 자다(宿加祚縣) / 김종직(金宗直, 1431년~1492년)은 1470년, 함양군수 재직時, 고려 때 피난와서 살다가 조선초기 거제도로 돌아가지 않고 거창군 가조현에 남아 살고 있는, 거제 유민(留民)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지나간 거제민의 역사를 상기하며 읊조렸다.

"가조현은 거창(居昌)의 속현(屬縣)인데, 고려 시대 삼별초(三別抄)의 난이 있을 때에 거제(巨濟)의 관민(吏民)들이 바다를 건너 이곳에 도망쳐 와서 부쳐 살았다. 그러다가 본조(本朝) 초기에 와서는 그들이 옛 고장으로 돌아갔는데, 지금도 이 고을을 거제라 부르고 있고, 또 마을 이름도 아직까지 아주(鵝洲)·송변(松邊)·오양(烏攘) 등의 칭호를 띠고 있다"

[縣屬居昌 高麗三別抄之亂 巨濟吏民 渡海奔逬于此 遂僑寓焉 本朝初 還其舊土 至今號此縣爲巨濟 又村名尙帶,鵝洲,松邊,烏攘等稱]

桑柘人居密 농사짓는 사람이 빽빽히 사는데
空留海島名 공연히 섬의 명칭이 남아있구려
溪山共隱逸 계산은 은거한 선비들과 함께하고
父老說升平 부로들은 태평성대를 말하네.
夜靜豚鳴圈 고요한 밤엔 우리에서 돼지가 울고
簷虛月到楹 텅 빈 처마엔 달이 기둥을 비추누나.
酒醒仍喚燭 술이 깨자 촛불을 찾고 보니
方信俗塵縈 이제야 속진에 얽혔음을 믿겠네.

3). 서울에서 아주까지 기근(飢饉)과 여역(癘疫)으로 읍리가 호젓하고 쓸쓸하다. 슬픈 마음이 들어 짓는다(自京至鵝洲 飢饉癘疫 邑里蕭條 悵然有作) / 신광수(申光洙,1712년~ 1775년).

蕭條南國百村空 쓸쓸한 남쪽지방 온 마을이 공허한데
野哭黃昏處處同 해질녘 들판의 곡소리 어느 곳에나 같구나.
國事敢論貧賤後 나랏일 어찌 감히 가난과 어려움을 나중에 따지겠나,
春光似見亂離中 비록 난리 중이라도 봄빛을 보듯 하네.
桃花不耐淸明雨 복숭아꽃이 청명절에 내린 비를 견디지 못하고
鷰子新來社日風 제비는 춘사일(春社日) 바람타고 새로 오는구나.
冉冉征途愁滿目 여행길에 세월 흘러 눈에 근심 가득한데
秦京西北暮雲籠 서북 서울 쪽 하늘엔 저문 구름 덮었네.

신광수(申光洙)는 조선 영조 때의 문인으로 궁핍과 빈곤 속에서 전국을 유람하며, 민중의 애환과 풍속을 시로 절실하게 노래했다. 특히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향토의 풍물에 대한 애착을 느끼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민중의 애환을 뛰어나게 그렸다.

4). 판옥선을 타고 거제 아주에 도착하다(乘板屋渡巨濟) / 이광윤(李光胤).

溟波無際碧涵空 끝도 없는 바다 물결, 허공에 잠겨 푸른데
百丈危檣引遠風 일백 장골이 먼 바람 끌어 당겨도 돛대가 위태하다.
鼓角一聲蒼靄豁 고각의 한 소리에 푸른 기운 뚫고
魚龍掀舞夕陽中 어룡이 치켜들어 춤추니 해 저물 무렵이네.
龍驤萬斛泛中流 수많은 용이 머리 들고, 바다 가운데 두둥실
楓菊酣霜滿眼秋 단풍과 국화는 서리 맞아 취하니 눈에 가득 가을일세.
今夜片帆何處泊 오늘 밤 조각배를 어디에다 머물꼬,
靑山一髪是鵝州 머리털 하나로 산이 무성한 여기가 아주땅이라지.

[주] 이광윤(李光胤) : 1564년(명종 19)~1637년(인조 15), 조선의 문신. 자는 극휴(克休), 호는 양서(讓西), 이제현(李齊賢)의 후손. 1585년(선조18) 진사(進士)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초서(草書)로써 이름을 떨쳤다. 도승지(都承旨)에 추증(追贈), 인산서원(仁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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