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수연 윤원기(수자원공사 거제센터)

진도, 강화도와 더불어 거제는 유배의 땅이었다. 1170년 9월 무신의 난으로 고려 의종은 폐왕이 되었다. 이곳 거제로 쫓겨 와 성을 쌓고 3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 성은 폐왕성지(廢王城址)로 경남 거제시 둔덕면 거림리에 쌓았다.

조선시대 거제는 또한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지금은 다리로 쉽게 건너다닐 수 있지만 당시 거제도는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절망의 땅이었다. 정쟁과 사화 등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귀양을 왔다.

그중에서 이행(李荇, 1478~1534) 이라는 선비가 있다. 조선 중기 연산군, 종종 때의 문신.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응교(應敎)로서 폐비(廢妃) 윤씨(尹氏)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에 유배, 이어 함안(咸安)에 이배(移配)되고 이듬해 거제(巨濟)에 가시나무를 둘러치고 갇혀 사는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같은 시기에 유배 온 선비들과 시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아갔다. 그는 유배의 땅을 은자의 땅으로 바꾸어 갔다. 꽃과 나무도 심고 틈이 나면 개울가를 거닐었다. 작은 정자를 짓고 작은 연못을 파서 물고기가 노닐도록 했다. 그가 지은 소요동기逍遙洞記에 따르면 골짜기를 소요동, 개울을 백운계라 하는 등 그가 살고 돌아다닌 이곳 저곳을 세한정, 성심천, 군자지, 차군정, 운문폭, 신청담, 지족정, 보진당 등으로 이름을 지고 시를 읊었다. 친구들을 모아 자주 시회詩會를 열었다. 九川場으로 놀러 나가기도 했다.

▲ 고려 의종이 무신난을 피해 3년간 머물렀던 둔덕 왕성. 무신들에 의해 쫓겨난 왕이라 해서 일명 폐왕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때 많은 詩들이 짓어 졌다. 거제의 아름다운 산수를 밤낯으로 읊어 내려 갔다.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지고 / 맑은 물은 콸콸 쏟아지네 / 항상 구름이 머물러 있고 / 천년동안 아름다움을 간직하였구나 森森喬木陰 삼삼교목음 決決淸流瀉 결결청류사/常有白雲宿 상유백운숙/ 千年閟壯觀 천년비장관”

먼저 떠난 친구 박은이 보고 싶을 때 산에 올라 바다를 보고 시를 지었다.
“이 사람은 꼭 천상에 있어야 만 했는데 / 속세에 한번 귀양오자 세상이 변했네 / 통곡하노라 광릉곡조 이미 끊어졌으니 / 이생에선 다시 그 노래 들을 수 없겠지 斯人合在白雲鄕 사인합재백운향 一謫塵區海變桑 일적진구해변상 痛哭廣陵今已絶 통곡광릉금이절 此生無復廳無洋 차생무부청무양”

그는 유배 온 거제 땅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짧지만 그 힘든 시기에 쏟아낸 시들은 거제를 사랑하고 노래하고 친구들을 그리워한 작품들이었다. 그의 문집 《용재집》 고스란히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분노와 절망, 외로움과 그리움이 그를 단련시켰으리라. 삶과 역사의 현장에서 내공을 쌓았다. 다시 벼슬길에 나섰을 때 힘이 되었다. 그는 가장 절친했던 벗 박은과 함께 16세기 초반을 빛낸 가장 뛰어난 시인이었다.

유배의 땅에서 문학의 꽃을 피운 선비들의 작품을 찾아 내어 옛글로 거제의 아름다움을 알렸으면 한다. 이행에게서 시를 선사받은 거제는 행복하니까...

▲ 지난 2007년 발굴 복원된 폐왕성 내 집수정. 요즘으로 치면 물을 가둔 우물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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